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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신작시/김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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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규
일어서는 화성華城* 외 1편
―정조의 울음
저 산 하나 넘지 못해 휘어진 낮달은
허리 끊긴 장안문에 더운 날숨 이어간다
지지대*, 대살진 곳에서 꽉 움켜진 젖은 흙
사도세자 용서마저 무릎처럼 꺾인 그 후
서둘러 빗장 걸고 단단히 묵언黙言 쌓는데
새돌은 선왕의 무게로 어근버근 더해지고
성문 밖 갈기 세운 울음이 몰려온다
썰물진 시간들로 낡은 깃발 흔들어보지만
뒤주 속 충혈된 그림자 밤새 앓던 달빛인가
눈 가려 울던 기억 눈썹 밑을 밝히면서
이 악문 탕평책 뭉툭하게 돌을 깎아
마음에 빙 둘러 세운다 화성을 일으킨다
*화성華城 : 17세기 조선 정조대왕은 왕권강화와 경제 신도시를 만들려는 계획으로, 친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이장한다. 화성華城은 그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성곽으로 장안문은 서울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선 첫 번째 성문이다.
*지지대遲遲臺 : 수원과 의왕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로서 서울 쪽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으로, 정조는 이 고개에서 사도세자의 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슬퍼하여 행차를 지체하였다 하여 지지대遲遲臺라 일컫는다.
길 만드는 노인
저만치 적막조차 물러선 어스름에
맹인 할아버지 길섶을 떠듬떠듬 찍고있다
등뼈 휜 어둠의 무게 교차로에 길을 내고
바튼 숨 쿨럭이며 허공을 둘레거릴 때
직립의 지팡이 날이 바짝 들어선다
헛짚어 발목 삔 세상도 서릿발을 일으킨다
실그러진 뭍살까지 온몸으로 끌고 가나
한 땀씩 손끝으로 덧대은 길 위의 길!
신새벽 그 길을 따라 돋을볕을 도두밟는다
김남규∙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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