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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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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49회 작성일 09-01-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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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④ ― 잉게보르크 바흐만 그녀, 
잉게보르크 바흐만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걸.(세네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아무도 나를 모를 때, 나 자신조차도 나를 모르고, 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를 때, 그녀는 내게로 다가와 시 한 편을 내밀었다.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시가 아닌 무엇으로도 나를 불러낼 수 없다는 것도. 

한때 나는 나무였고 묶여 있었죠.
그 뒤 새가 되어 풀려 나왔고 자유로웠었지,
무덤 속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파열하며 튀어나와 더러운 알이 되었어요.

어떻게 나를 견딜까요? 나는 잊었어요
어디서 내가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나는 많은 생명들에게 넋을 앗기고 있지요
매서운 가시 하나와 도망가는 노루 한 마리.

오늘 나는 단풍나무 가지의 친구이며 
내일은 줄기로 옮겨가고……
언제 죄는 그 윤무를 시작했는지요?
내가 씨에서 씨로 헤엄쳐 다니는 그 윤무를.

하지만 내겐 아직도 시작이 노래를 하고 있지
―혹은 종말이― 그리고 내 도주가 저지된다오.
나는 이 죄의 화살에서 벗어나겠어요
모래알과 물오리에게서 나를 찾은 그 화살.

아마 언젠가는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한 마리 비둘기가 돌멩이를 굴린다는 것을……
한마디 말이 빠졌군요! 다른 말로 하지 않고서 
어떻게 나를 불러야 할까요? 

나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는 새 그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 잉게보르크 바흐만. ‘요정’과 ‘올빼미’라는 별명을 지닌, 평균 이상의 지적 여성. 이마가 넓고 눈이 서늘하고 웃으면 온몸이 함께 웃는 듯한 여성. 정신 없이 산만하지만 아주 이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인간의 사랑을, 특히 남자들의 사랑을 전혀 믿지 않았던 여성. 시인이 되기 전에, 문학에 미치기 전에, 미리 「나」라는 시를 써서 자신의 입장을 굳건히 한 여성. 끊임없이 줄담배를 피워대며 자신의 복합적인 성격을 끝없이 달랬던 여성, 독일어권의 전후문학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며, 신비스러운 그 외모만큼이나 신비스러운 언어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여성, 잉게보르크 바흐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로마행 비행기에 오른다.  
에리히 프롬이 ‘영광의 땅’이라 칭하고, 카르타고의 무적의 한니발이 끝내 정복에 실패한 땅,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천상에 온 것 같은’느낌을 받았다는 곳. 성 베드로 성당이 있고, 바티칸 박물관과 미켈란젤로의 대작 「최후의 심판」이 걸려 있는 시스티나 성당이 있고, ‘진실의 입’이라 불리는 트리톤(바다의 신)의 얼굴이 있는, 로마.
그곳에서 담뱃불이 침대에까지 옮아붙어 수수께끼처럼 의문사한 그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로마로 간다. 
로마에서 만난 그녀는 심한 화상으로 인해 아직도 혼수상태였다. 살아남을 가망성 제로인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돌린다.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   
나는 1926년 오스트리아의 남부인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은 드라이랜더에크(세 나라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라 불리는 국경 지대였어요. 나는 그곳에서 슬로베니아인, 이탈리아인, 그리고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인들과 함께 살았어요. 내 꿈은 오로지 빈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것뿐이었죠. 그러다 11살(1938년) 되던 해, 나는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면서 전쟁이 일어났거든요. 히틀러의 수많은 군대가 클라겐푸르트로 진군해 오는 모습은… 그 야만성만으로도 숨막힐 듯 강렬하고 두려웠어요. 그 모습은 처음으로 내게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스멀스멀 피부 밑으로 기어드는 듯한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어요. 나는 그 전쟁으로 인해 내 어린 시절이 산산 조각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어요. 

몸서리치는 전쟁이 끝나고, 1948년, 나는 드디어 빈으로 가게 되었어요. 금발에다 날씬하고 예쁜 나는 미모보다 지성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었지요. 그리고 내 가방에는 처음으로 쓴 나의 시 「나」가 자랑스레 들어 있었어요. 

노예 상태는 견디지 못한다 
나는 항상 나다 
어떤 것이든 나를 휘게 하려 한다면 
차라리 나는 부러지겠다. 

냉혹한 운명이 닥쳐오거나 
또는 인간의 힘이 밀려오면 
여기에, 이렇게 나는 있고 이렇게 나는 머무른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하여 머무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직 하나이다
나는 항상 나다
올라간다, 그렇게 나는 높이 올라간다 
추락한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추락한다. 

나는 빈에서 철학, 심리학, 독문학을 공부하면서 1950년, 「마르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 대한 논문으로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러나 그 논문은 하이데거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반대하는 내용의 논문이었죠. 나는 하이데거의 비합리적이고 모호한 철학보다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이고 명확한 실용주의 철학을 더 선호하고 좋아했거든요. 천성적인 수줍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빈에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문인들이 많이 모이는 카페에서 ‘47그룹’의 작가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내 시와 글들을 낭독했어요. 그리고 그 글들을 '린케우스' 잡지에 싣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나의 글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남성적인 서술 관점에서 씌어졌다 하여 나를 ‘남자 바흐만’이라고 비웃기도 했지요. 그러나 내심 모두 놀라는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내 글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한탄, 사멸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근원적 존재에 대한, 날카롭게 깎여진 인식과 쓰디쓴 동경 같은 게 가득 묻어 있었거든요. 그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언어로 ‘독일 서정시의 산’이라는 찬사까지 받아냈거든요. 
게다가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을 만났어요. ‘파울 첼란’이라는 시인. 그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시로 썼으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지요. 그가 쓴 「죽음의 푸가」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나는 그를 만나러 파리로 가곤 했지요. 우리는 서로 참 마음이 잘 맞았어요.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그에게 나는 인간으로서 진실한 사랑을 느꼈어요. 우리는 서로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지요. 그가 1970년, 센 강에 투신자살할 때까지 우리들의 편지는 계속되었어요.(그와 함께 나눈 편지는 지금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유족들에 의해 2025년까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다.) 

  첫 시집 '유예된 시간'
나는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빈에 있는 미군 수비대 비서실에 취직을 했어요. 그곳에서 방송국 일을 하면서 방송극도 썼어요. 그리고 ‘47그룹’멤버가 되어 시 낭독에 참가했어요.  그러다 1953년, 나의 첫 시집 '유예된 시간'이 나왔어요.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그 시집으로 ‘47그룹상’을 받았어요. 정말 뿌듯했지요.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이후부터 내 중심거주지를 로마로 옮겼어요. 그 당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였어요. 나는 그와 음악과 관련된(가극) 작업을 함께 했어요. 그 이듬해, 나는 '슈피겔'지의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지요. 그 커버스토리 때문에 ‘바흐만 신화’라는 지울 수 없는 이미지도 얻게 되었지만.  
그렇게 나는 빈과 로마를 오가며 열심히 작업에 몰두했어요. 빈은 내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로마는 내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었지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사적인 사람이었어요.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비밀들이 많았죠. 
내가 두 번째 시집 '큰곰자리의 외침'을 출판했을 땐, 나도 놀랄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요. 물론 상(브레멘 시 문학상)도 받았지요. 나는 정치적인 모임에도 가담해 열렬히 서독의 아톰 무기화에 저항했어요. 일각에선 그런 나를 비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정치성 강한 내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지요. 내게 있어 정치적 현실 밖에서의 글쓰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때 쓴 시가 「이른 정오」라는 시예요. 한번 들어볼래요?

벌써 파편 더미 속에서는 
동화 속 새의 혹사당한 날개가 솟아나고 
돌팔매질로 일그러진 손은 
돋아나는 곡식 속에 묻힌다.

독일의 하늘이 대지를 검게 물들이는 곳에서 
목을 베인 천사가 증오를 묻을 무덤을 찾고 
그대에게 심장이 담긴 접시를 건넨다. 

칠 년 후 
시체8안치소에서 
어제의 형리는 
황금 술잔을 비운다. 

  죽음의 방식, 그리고 말리나 
1958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해였지요. 그해 7월, 나는 파리에서 막스 프리쉬를 만났지요. 우리의 사랑은 수년간 계속되었으나 결국은 헤어지고 말았지요. (그들의 사랑은 문학사에서 가장 슬픈 사랑 중 하나로 남았다.)  내가 쓴 방송극 '맨해튼의 선신'에서처럼 “사랑이란 이 세상의 어두운 면에 속하며 범죄나 이단보다도 더 해로웠어요. 사랑 자체는 죄가 없지만 결국은 파멸을 가져오니까요.” 그 후유증으로 나는 약물중독자가 되어 갔어요. 하루에 먹는 약이 100알 정도나 되는 극심한 중독 상태로 빨려들어 갔어요. 그 즈음 나는 시 쓰기를 그만두고 소설에 매달렸어요. 발터 벤야민의 지적 성향인 ‘놀라움의 자세( 놀라움 속에서 글쓰기)’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죠. 
나는 단편 산문집 '삼십 세'를 발표해 독일비평가협회 문학상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드디어 1971년, '말리나'를 출간했어요. '말리나'는 내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요. 나중에 그 책은 「프란차의 죽음」과 「화니 골드만을 위한 레퀴엠」과 함께 ‘죽음의 방식’으로 묶이게 되었지요. 나는 '말리나'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살인자’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전쟁이나 강제수용소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아니라 평화로운 가운데 일어나는 살인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인간 사회의 공동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그 살인자는 언제나 어떤 사람이 되는……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일 수도 있고, 대중일 수도 있는……. 그것을 진술하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말리나'에선 그것을 내 안에 있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특성의 내적 혼란과 갈등으로 구성해 ‘여성임으로 인한 죽음’의 방식을 표현했지요. 그러나 결국 나는 ‘죽음의 방식’ 3부작 중 「프란차의 죽음」은 다 완성시키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군요. 내가 죽고 나면 많은 말들이 회자하겠지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유일하게 자전적 소설인 '말리나'를 읽으면, 어느 정도 나를 이해하게 되겠지요.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자”는 비트겐슈타인의 테제처럼. 대신 나를 묻을 때 '말리나' 중에 나오는 이 문장과 함께 묻어주세요… 꼭!

“이제 나는, 내가 그냥 예전의 내 모습을 되돌려 받는다는 생각을 가끔 해. 내가 모든 것을 가졌던 시절, 명랑함이 제대로 된 명랑함이었고, 내가 좋은 종류의 진지함으로 진지했던 시절, 그 시절을 아주 즐겨 생각해. 그러다가 모든 것이 파손되고, 상하고, 사용되고, 이용되고, 결국에는 파괴되었었지. 천천히 나는 개선해 갔고, 갈수록 부족해져 가던 것을 보완했어. 그러고 나니 내가 치유된 듯이 느껴져. 이제 나는 거의, 다시 예전의 내 모습이야. 그렇지만 그 길은 무엇을 위해 좋았던 것일까?”

잉게보르크 바흐만, 그녀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미완으로 남아 있는 그녀의 삶처럼, 그녀의 작품처럼. 그토록 언어의 상투어(관용구)를 경멸하고, 새로운 언어의 보행법으로 작품에 임하고자 했던 그녀.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모든 사람들이 까만 황금빛 눈을 가지고, 더러움과 모든 짐에서 해방된, 그들이 생각했던 자유로부터도 자유로운, 그 측량할 길 없는 자유 속으로 떠난 것일까? 아님, 훨씬 더 모진 날들로 이루어진 저 ‘유예된 시간’너머로?


김상미∙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박인환 문학상 수상.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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