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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신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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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린
등나무
지향점도 없이 자꾸만 뻗어갔지요
허공에 구불구불 새 길을 내며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가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지만
알 수 없군요 어디서 출발하였는지
어디로 거슬러 왔는지 무엇 때문에 길을 나섰는지
만 갈래의 길들이 엉켜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군요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푸르건만
새들은 즐거이 지저귀고 바람 선들선들 불어오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가없는 허공에 길을 내고 있어요!
뿌리에서 멀어질수록 뿌리를 향한 그리움은 점점
깊어가고 길을 찾지 못한 시름 깊어만 가는데
수분 마른 외피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는데
나는 오늘도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오리나무
저녁 답에 오리나무 곁에 서 보네
나보다 스무 배쯤 키가 큰 그의 얼굴은
구름 위에 있어 볼 수가 없네
언제나 그의 밑동이나 가지를 보고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할 뿐이네
그는 오리쯤 앞서 가 있고
나는 오리쯤 뒤에서 그의 발자국 따라 가네
혼자 걷는 길은 서럽고 눈물 나지만
눈물 흘리며 걷는 이 길 끝에
그대 서 있을 거라고
산새들 속삭여 주니
마른 낙엽 같은 시간들도 견딜만하네
오리나무를 중심으로 푸르고 둥근 그늘이 졌네
그의 그늘에 깃들어 그를 생각해보는 시간
오리쯤 앞서 가는 그를 만나기는 만날 것인가
오리나무에게 묻고
그는 나를 반겨줄 것인가
또 물으며 혼자 걷는 산길
오리나무여 오리나무여 가만히 그의 이름 부르니
노을만 점점 붉어지네
신채린∙2004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슬픔의 껍질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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