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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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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심야 고속도로 외 1편
1.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당신은 빛이 있는 쪽으로 걷지 않나요? 그 불빛을 당신의 장례식장으로 정했다고 해서 내 여행이 죄스러울 건 없겠죠 당신이 뱉어낸 가래침으로 밤의 이미지를 만들어 봐요
2.
전조등을 끄세요 새들은 은신처로 돌아가고 까마귀가 요절처럼 올라앉은 산등성이 위로 달콤한 달이 떠올라요 근육질의 아스팔트 위로 두려움을 감지한 자동차가 떨려요 나는 비명을 지르는 당신의 손톱을 잘라 버릴 꺼에요 당신은 영원히 안 보일 수는 없어요
3.
길 위에 밤이 잘게 부서져 내려요 한밤의 도로는 빛의 산란장이에요 살아있는 것이 되기 위해 연습 중인가 봐요 딱정벌레 같은 것들이 굴 입구를 향해 올라와요 나는 갓길에 앉아 한 마리씩 잡아 양미간과 가슴팍을 때려 눕혀요 눈 깜짝할 사이 거세된 빛이 살아나요
4.
발가벗고 몸을 구부려 봐요 빛의 알을 품어요 분홍빛 젖꼭지를 물려요 허공을 떠다니는 두 몸의 격투 두 개의 육체, 두 개의 세계, 두 개의 태양
5.
당신은 어느 길에 잠들었나요?
드라이한 수술기
무릎을 가슴까지 올리고 항문에 힘을 빼세요 하나, 둘, 셋하면 수술대 위에 빨리 엎드리세요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 당신의 등뼈에다 마취제를 주사할 거예요 자, 심호흡을 하세요 이제부터 괄약근 밖으로 나온 내장을 자르겠어요 너무 오래 매달고 계셨군요
무슨 음악을 좋아하세요? 대중가요, 클래식, 종교음악…… 베에토벤 교향곡 7번이 들려요 비올라와 첼로가 주 멜로디에요 슬픈 감정이 올라와 울부짖어요 운명, 감정 같은 건 참을 수 없는 건가 봐요 주체를 못하고 터져 나와요 7번 악장 이건 소음이 아니라 음악에요
드드득 드드득 …… 환청처럼 들리는 전기칼 소리 닥터 조, 롤러코스터를 타 봤어? 어제 대공원에서 떨어져 사람들이 죽었어요 난 지구가 도는 줄 알았어요 다시 교향곡이 흐르고 드드득 드드득 …… 닥터 조, 오늘 점심 뭐 먹었어? 깍두기 국물에 밥 비벼 먹었어요
바이올린 소리가 비오듯 쏟아져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들려요 여러 악기가 흩어지네요 이건 소음이 아니라 음악이죠? 자, 이제 끝났어
이 은∙200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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