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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최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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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71회 작성일 08-07-1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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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률
철없는 독백 외 1편


능선에 오르니 헉헉 힘이 든다
엊저녁 마지막 뉴스와 일기예보를 들은 후에 잡동사니를 챙겨 담았으니 힘이 들 수밖에 
나의 독백이 혀를 끌끌 찬다

상기된 얼굴을 닮은 단풍나무 아래서 숨을 고른다
김밥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삶의 지층을 우물우물 곱씹는다
뿌옇게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달아난 시간의 뒤에 멈춰서 지나온 에움길을 돌아본다

텅, 텅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돌연 비포장도로를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만 제 몸을 텅 비운 늦가을이 능선 저만치 홀로 걸어가고 있다
계절에 순응하며 한 켜씩 허물 벗으며 오랜 성장통을 겪어온 숲들, 너덜 어둠 속 낮은 소리로 흘러가는 계곡이 보일 뿐이다

텅, 텅, 다시 텅 텅
배낭의 허기가 생각난다 
나목에서 떨어진 태없는 사상의 열매들을 한껏 주어 담는다 
채울수록 배낭이 가벼워진다
초경량 노트북의 가벼움이 이러겠는가 
등줄기를 타고 철없는 즐거움이 세차게 내려간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분명 유쾌한 일이로구나
배낭이 가벼워졌다,고 나의 독백이 실없이 킥킥 웃는다
청설모가 엿들을까보다





직선의 고백


어떤 기준으로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원형으로 된 모든 것들은 나의 성격이 까칠하다고 야단들입니다 물론
내 입 안에는 가시의 송곳니가 있어 제 맘대로 금기의 선을 그어놓은 원을 보면 습관적으로 물어뜯기도 합니다 더구나
풍만한 과녁을 보면 어루만져보지도 않고 이내 화살이 되어 곧바로 꽂힙니다 
아마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선천적 본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 모두들 새살에 상처가 나거나 새순이 꺾일 때마다 뾰족한 손을 지닌 나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가히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떨 때에는 억울하여 잠을 청하지 못하고 수직으로 서 있었던 날들이 숱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대형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원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브레이크장치가 말을 듣지 않아 충돌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웃기는 일은 다음날 웹상에 원도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원뿔까지 나서며 나에 대한 익명의 악플을 올리는 겁니다 그래
나도 상처투성이인 제 몸뚱이를 의심스럽게 만져 보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긴박한 와중에 내가 실소를 하고 말았던 거지요 
그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아마 나의 진실을 똑똑히 보았을 겁니다 
충돌하는 순간 나의 날카로움이 얼마나 둥글어졌는가를 목격했을 겁니다 
나는 늘 순종적인 타원형들의 목숨만큼은 지켜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내 몸의 날카로움을 최소화 했습니다
아마 도로에는 둥그러진 나의 파편들이 반짝 숨을 쉬고 있을 겁니다 



최명률∙2006년 ≪愛知≫로 등단. 광주 문성고등학교 교사.
추천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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