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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초점/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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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21회 작성일 08-07-1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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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 혹은 국가보안법을 넘어서는 한국문학*
고명철|문학평론가


1. ‘문학의 불온성’에 의한 국가보안법의 죽음

우리는 오늘 작가의 명예를 걸고 증언하고자 한다.
국가보안법이 문제 삼는 것은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폭발물에 의한 테러, 국가기관의 기능마비를 가져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먼 거리에 있는 무형의 것을 심판한다. 그런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이고 주장이요, ‘위험성을 유발할 위험성’이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이 남긴 업적이 있다면 비열한 색깔공세와 불법연행, 장기구금, 고문과 조작이었으며, 그것이 국민에게 경험시킨 것이 있다면 우리의 의식을 심층에까지 내려가 억압하고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통제장치의 기능이었다. 그것은 정말 얼마나 무서운 인간성에 대한 침탈이며 민족성에 대한 학대인가!
― 「민족문학작가회의 성명서: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라!」(2004. 10. 9) 중에서

이 땅의 양심적이며 진보적 민족지성인 작가들은 단호하면서도 엄숙하게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라!” 우리들은 너무나 또렷이 알고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꿈꾸는 작가들의 그 순정한 언어가, 반공주의 이념에 기반한 국가보안법의 폭압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찢겨졌다는 것을. 
한반도에서 국가보안법은 초헌법적 위상을 가지며,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국가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억압해왔다. 국내외의 양심적 시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급변하는 시대와 현실에 매우 부적합한 악법 중의 악법이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해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갈구하는 작가들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반도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분단과 관련된 일체의 구조악構造惡과 행태악行態惡을 일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그들의 언어는 분단체제 아래 뿌리 뽑힌 자들의 삶과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분단을 고착하고자 하는 그 어떠한 부정한 것들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언어는 한없이 연약하고 가녀리지만, 그들의 언어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에 의해 결코 스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언어는 절망과 환멸의 현실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희망의 꿈을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하위체제로 작동하는 분단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비롯한 인류의 평화를, 바로 이곳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문학적 실천을 지속하고 있기에 그렇다. 
다시 한 번, 아니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작가들은 ‘지금, 이곳’에서 거듭 천명한다. 분단체제로부터 배태된 크고 작은 부정적인 것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문학의 불온성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죽음을 현실화시킬 것이다. 하여,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을 갈아엎기 위해 문학의 불온성은 전복적 힘을 통해 분단체제와 연루된 일체의 비루한 일상을 용인하지 않고, 그 일상의 뿌리를 근절하는 데 모든 문학적 역량을 투사할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이란 역사적 현실에 대해 작가들은 청맹과니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분단의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는 데 대해 분노하고 슬퍼한다. 때문에 그들은 혀끝에 고인 언어를 내뱉는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분단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루빨리 냉전적 적대 시각을 일소하고, 더불어 함께 아름다움의 가치를 공유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급변하는 국내외의 정세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구체성이 탈각된 극우보수주의의 경화된 역사 감각이 아니라, 남과 북으로 나뉜 민족 구성원이 공존하며 상생하는 신생의 역사 감각을 지닐 수 있기를. 작가들의 이러한 순정의 언어가 더 이상 수구 냉전주의자의 비현실적 이성을 합리화시키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짓이겨지지 않기를.

2. 국가보안법의 탄압과 한국문학의 응전 
한국문학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탄압은 정권안보 차원에서 문학이 갖는 고유의 반성적 성찰의 기능을 철저히 압살한 반지성적․반예술적․반인문적 폭거에 불과하다. 그동안 한국문학에 가해온 국가보안법의 폐해는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여기서 일일이 그 폐해 사례의 구체적 내용을 증언할 수는 없되, 주요한 탄압의 몇 사례(주요 필화 사건과 출판 및 문인 탄압)를 상기해보기로 한다. 

1) 정권안보에 의한 필화사건
남정현의 단편 「분지」는 월간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발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 1965년 7월 8일자에 전재되어, 작가는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다. 그 후 남정현은 반공법위반 혐의자로 입건되어, 1967년 6월 2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 당시 검찰의 공소장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① 계급의식과 반정부의식을 고취
② 반미감정을 조성
③ 북괴의 대남전략에 동조

검찰의 공소장대로라면, 「분지」는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작가가 국가권력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된 직접적 계기는 다름 아니라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에 실렸다는 점이다. 「분지」가 발표될 무렵에는 작가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간섭이 없다가 이 작품이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에 실린 후 전격적으로 작가에 대한 국가권력의 억압을 가해온 것이다. 즉 「분지」의 필화 사건은 이처럼 작품 내적인 이유가 직접적 계기로 작용한 게 아니라 박정권의 체제 유지에 조금이라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작품에 대한 철저한 정치적 탄압에 연유한다. 특히 박정권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동하는 것들 중 하나가 북한과의 체제경쟁을 통한 국가권력의 행사에 있다는 점은 「분지」의 필화 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말하자면 「분지」의 필화 사건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민주적 정통성이 부재한 박정권의 통치권력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에 의해 기획되었던 것이다. 
이 필화 사건을 통해 한국 문단은 그 당시 치열히 진행되고 있던 순수/참여 문학 논쟁과 맞물리면서 문학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인식 지평을 넓히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필화 사건을 통해 이 작품이 담지하고 있는 현실 문제의식이 전면화되면서, 한국문학은 박정희 시대의 암울한 역사에 대한 저항의 싹을 틔워, 이후 민족문학의 값진 성과를 낳게 된다. 
여기서 1970년대의 주요한 필화사건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김지하의 「오적」 필화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오적」의 경우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되었는데, 김지하는 이 시에서 기층민중 장르인 판소리 사설의 특장特長을 절묘하게 창조적으로 섭취하여 반민족적 작태를 일삼는 다섯 부류의 타락한 인물(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전형을 매섭게 풍자한다. 
그런데 김지하의 「오적」 필화사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이 시의 비판적 풍자의 대상이 필화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기보다 그 당시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이 시가 다시 발췌되어 실리면서 필화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필화사건이 단순히 문학적 차원의 문제로만 협소하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기실 잡지에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시인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다음 풀려나왔으며, 그 잡지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무마되어 필화사건과는 관계가 없었다. 문제는 「오적」이 야당의 기관지에 수록되었다는 것, 이는 곧 야당의 정치적 투쟁에 활기를 불어넣을 소지가 있었으며, 그리하여 1969년 9월 10일 통과한 ‘3선개헌안’에 토대를 둔 장기집권의 행보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개입되면서 김지하의 「오적」은 필화사건을 맞은 것이다. 즉 「오적」은 당시의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되면서 유신체제의 민족문학운동의 맨 앞자리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남정현과 김지하로 대표되는 국가보안법과 연루된 필화사건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한국문학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철저한 탄압은 반공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가운데 국가의 지배권력에 대한 철옹성을 구축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2) 분단체제 극복의 문학활동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탄압
한국문학사에서 필화사건은 한국문학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이와 함께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국가보안법의 독소 조항으로 인해 한국문학과 관련한 출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물론, 분단체제를 극복하고자 한 문학인의 활동들을 철저히 억압해왔다는 사실이다. 우선,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하여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도서, 유인물) 목록 중 주요 문학 도서 목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 명,                 저자,       편자,      발행사,     년도,    비고
갑오농민전쟁       박태원                                 90        확정
노동의 새벽         박노해                                 94        확정
노동해방문학(창간호~91년 1월호)     노동해방문학사 91-92(3심) 확정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노동문학사 90(2심) 확정
노둣돌(창간호)     황석영                                 93(3심)  확정
녹두서평(1,2,3)                                               93        확정
녹슬은 해방구(2~6)권운상                                94-95    확정
머리띠를 묶으며     박노해                                93         확정
문학사회사            김현                                   93         확정
민들레처럼            박노해                                94(2심)  확정
빨치산의 딸           정지아                                91         확정
백두산                                           실천문학사 90(2심)  확정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황석영                                91         확정
삶의 문학(6, 7)                                대전          92         확정
아리랑                                                           85         확정
압록강                  최하수                                95         미확정
오적                     김지하                                71/74(2심)확정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박기평                   93(2심)   확정
울지않으련다                                                  79/80(3심)확정
일류사회                                                        79/80(2심)확정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 황석영              93           확정
지리산                                                           88-89(2심)확정
참된 시작                                                       95            확정
태백산맥                김달수                               89(2심)     확정
합정                                                              78(2심)     확정

(법원․검찰,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도서, 유인물) 목록」, 1997 중에서)

위의 목록은 국가의 공안통치 기관에 의해 압수된 도서 목록 중 법원에 의해 국가보안법에 위배된다고 확정 판결을 받은 문학 도서 목록이다. 위의 목록을 보면서, 한국문학이 무지몽매한 국가의 공안통치 기관에 의해 얼토당토아니한, 얼마나 터무니없는 반문학적 탄압을 받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확정 판결을 받은 도서들은 민족민주운동의 일환으로 민족구성원의 참다운 행복과 평화를 갈구하며,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진 분단의 어둠을 걷어내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문학인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언어들을 국가의 공안통치 기관은 초법적 위상을 갖는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으로써 옭아매었다. 
하지만 양심적이며 진보적 민족지성인 작가들은 결코 국가보안법의 폭력과 위협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비록 국가권력은 지속적으로 작가들의 언어를 국가보안법으로 해체시키고자 하였지만,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작가들의 민족민주운동의 역사적 정당성과 문학적 실천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다음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가들의 국가보안법 입건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성명       직업          일자                연행, 구속사유             
고규태    시인          1991. 2. 17        북한원전 출판(국가보안법 위반)
강태형    시인          1991. 3. 27        북한원전 출판(국가보안법 위반)
신경림    시인          1991. 3. 27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현기영    소설가       1989. 3. 27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김진경    시인          1989. 3. 27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고  은     시인          1989. 3. 27        1989. 4.  1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관련(국가보안법 위반)
백낙청    평론가       1989. 3. 27        1989. 4. 12 남북작가회담 관련 남북작가회담 관련
김규동    시인          1989. 3. 1          범민족대회
황석영    소설가       1989. 4              북한방문(국가보안법 위반)
문익환    시인          1989. 4. 13         북한방문(국가보안법 위반)
김사인    시인          1989. 5. 26         1990. 1. 15 '노동해방문학' 관련 '노동해방문학' 관련
임규찬    평론가       1989. 5. 26         1990. 1. 15 '노동해방문학' 관련 '노동해방문학' 관련
도종환    시인          1989. 6. 26         전교조와 관련
윤재걸    시인          1989. 7. 3           서의원 사건(국가보안법 위반)
이승철    시인          1989. 7. 6           북한원전 출판(국가보안법 위반)
김이구    소설가        1990. 12. 4        황석영 북한방문기 계간 ≪창작과비평≫ 게재 관련
김명식    시인           1990. 7. 11        시집 '제국의 굴레' 출판 관계(국가보안법 위반)
손지태    평론가                               '노동해방문학' 관련
박노해    시인           1991. 3. 10         사노맹 관련(박원순, '국가보안법 연구' 2, 역사비평사, 1992, 194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례 하나하나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작가들의 민족민주운동의 지속적 실천을 탄압해왔다. 여기서 작가들의 문학적 실천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온갖 반민족적․반민주적․반인류적 폭압에 대해 작가들은 침묵할 수 없다는 점이며,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우두망찰 방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남과 북의 대립 갈등을 넘어 한반도의 아름다운 평화 공동체를 꿈꾸는 작가들의 염원이 구체적 행동으로 가시화된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을 위한 결단은, 작가들의 작품 창작만이 아니라 문학 활동을 통해 분단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출이다. 이것은 황석영과 문익환의 북한 방문을 이해하는 데도 결코 소홀히 간주할 수 없는 맥락이다. 가령, 황석영은 1989년 3월 20일 평양을 방문하기 앞서 발표한 ‘북을 방문하는 나의 입장’이란 글을 통해 그의 순정한 결단을 드러낸다.

저는 정치가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이념을 따르고 있는 사람도 아닌,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작가입니다. 따라서 저는 분단시대 남한의 작가로서 통일을 절실하게 바라며 또한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에서 같은 땅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 대중의 편이며 미국에 반대하는 아시아 대중의 편이며 무엇보다도 반세기 동안이나 헤어져서 피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편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네 조국 강산은 봄입니다. 봄꽃은 우리나라 남쪽 끝의 한라산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이 휴전선 철조망을 넘어서 북의 백두산 기슭에 피어납니다. 저와 저의 동료들과 민중들은 우리나라의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여린 풀꽃들을 눈물이 나도록 사랑합니다. 바로 저들의 재생력이야말로 이 무렵이면 우리 국토를 뒤덮는 외국군의 탱크와 미사일을 이겨낼 위대한 힘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북으로 향합니다.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황석영의 순정은 정치적 이념의 공간을 훌쩍 넘어 북녘의 동포들과 산야를 만나도록 하였던 것이다. 비록 황석영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지만, 황석영의 이 순정한 결단은 모든 부정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갈등과 대립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는 작가의 정치적 행동이며 분단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윤리 그 자체다. 하여, 국가보안법의 위협과 두려움을 넘어서서 문학의 위대한 불온성을 드러낸, 분단체제를 전복하는 문학의 힘을 드러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한국문학은 국가보안법의 지속적인 탄압을 받고 있되, 문학의 저 아름다운 순정의 결단을 실천하는 도졌程 속에서 국가보안법을 내파內破하고 있다.

3. 분단체제를 넘어선 혹은 국가보안법을 내파內破하는 문학운동
그렇다. 한국문학은 그 특유의 역사적 응전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균열시키고 해체한 지 오래다. 국가보안법이 한국문학을 탄압하면 탄압할수록 그 탄압의 빈도와 강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낮거나 약하지 않은 응전의 힘을 보여 왔다. 그것이 바로 한국문학이 살아있다는 증좌다. 
최근 한국문학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낡고 구태의연한 국가보안법을 갖고는 급변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섬세히 읽고, 그 미래를 읽어내는 한국문학의 행보를 더디게 할 수 없다. 물론, 1990년대 이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문학의 행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소 심하게 얘기한다면,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문학운동의 노력이 구두선口頭禪에 머무른 감이 없지 않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가 진행될수록 ‘분단체제론’으로 불리는 고도의 추상화된 이론이 정립되어간 반면, 정작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문학운동의 구체성은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분단체제론이 문학운동으로서의 실천성을 내실 있게 보증해내지 못하였다고 할까.
그러던 문학운동은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2005. 7. 20~25. 이하 ‘민족작가대회’로 약칭)를 계기로 획기적 전환점에 들어선다. 민족작가대회는 남과 북을 비롯한 해외 작가들이 만났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국어를 통해 민족문학에 정진해온 작가들 사이의 내면의 교류를 나눔으로써 모국어의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남과 북은 휴전선이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정치적․생활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경계를 단숨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모국어를 함께 사용한다는 대전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의 토양 위에서 세계를 인식하며, 민족의 정서를 형상화화 내는 문학이야말로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평화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문학운동의 근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작가대회를 통해 합의한 것 중 ‘6.15민족문학인협회’를 설립하고 협회의 기관지인 '통일문학'(가칭)을 발간하기로 한 것은 모국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 성과물이다. 이 기관지를 통해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문학적 성과물이 자리를 함께 하는 가운데 민족지성의 내면의 교류와 소통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민족작가대회 이후 이러한 후속조치의 내실화를 통해 남과 북으로 나뉘고, 해외까지 흩어져 있던 모국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역사役事가, 분단체제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분단체제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어떤 동력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하자면 모국어 공동체의 회복은 분단으로 인한 남과 북의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데만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해결을 위한 평화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여기서 모국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의사소통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문제를 서구에 의존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게다가 한반도를 포괄한 동아시아의 의사소통 능력을 온전히 회복하는 일은,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민족의 화해․상생․평화의 길을 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의 비약적 성장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음을 고려해보건대, 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우리 민족의 언어에 관심을 갖고 한반도의 언어 공동체와 원활한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은, 중화민족주의의 팽창을 막아내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학운동의 또 다른 일환으로 '겨레말 큰사전'을 남북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겨레말 큰사전' 작업을 위해 남북은 공동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해외에까지 우리 민족이 분포되어 있는 곳을 두루 답사하면서, 모국어의 존재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장구한 역사歷史/役事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기획이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 과정을 통해 모국어 공동체는 온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회복되어 가는 모국어 공동체는 자연스레 분단체제를 동요시킬 것이고, 급기야 분단체제가 해체되는 민족의 경이적 순간을 우리는 맞닥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국어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데에는 바로 이와 같은 민족의 현실적 이유들이 존재한다. ‘6.15민족문학인협회’의 기관지를 통한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민족문학인들의 실질적 문학교류의 활성화, '겨레말 큰사전'의 남북공동 편찬 작업 등은 지금까지와 다른 문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다. 무엇보다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움직임이 추상적 이론의 층위에서만 맴도는 게 아니라, 그 구체적인 문학운동의 실천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21세기 민족문학의 갱신을 새롭게 궁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최량의 민족문학적 성과가 남북 모두 반쪽 자리 국민문학의 성과로서 자족했다면, 이러한 모국어 공동체 회복 운동을 통해 남과 북, 그리고 해외를 포괄하여, 지금보다 한 단계 고양된 명실공히 최량의 민족문학적 성과를 통해 ‘참다운 세계문학’의 또 다른 경지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분단 60여 년 동안 레드콤플렉스와 반공주의에 기반한 국가보안법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걸어온 문학운동의 행보 속에서 그 실체가 휘발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문학에 의해 분단체제가 동요되고 극복되어가는 또 다른 움직임을 소개해보면, 민족작가대회 이후 후속 조치를 실행하기 위한 것 중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을 준비하는 게 그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한국문학을 옥죄었던 국가보안법과 연루된 모든 분단의 억압들은 조금씩 해방되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5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실무회담을 하면서 분단체제가 관념이나 이론이 아님을 남과 북의 현실 속에서 뚜렷이 목도하였다. 무엇보다 서로 겨레말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문학적 이념과 그 표현에서 명확히 다를 수밖에 없는 데 대한 이해의 과정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쉽게 체념을 하거나 포기하지도 않았다. 협회를 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성 과정에서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게 바로 남과 북의 통일을 실천하는 문화적 과정이라는, 소중한 진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욕심을 크게 내지 않았다. 작은 것부터 확인하고,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들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때로는 허탈해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였다. 가령, 협회의 규약을 검토하는 과정에는 서로의 문학적 입장이 첨예히 부딪치기도 하였다. 남측 문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협회의 규약은 남측 문학의 정서와 동향에 부합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북측의 정치적 구호가 완전히 걸러지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북측 역시 협회의 규약은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유약하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조직의 틀 속에서 강화된 규약을 생활화해온 북측의 문인들에게 협회의 규약은 그 강화 정도에서 그동안 낯익은 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남측 문인들은 대승적 입장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규약의 문안을 남북 양측이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쌍방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였으며, 간혹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고, 서로의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기도 하였다. 남북의 문학인들은 이 모든 갈등의 과정이 번거롭다며 회피하지 않았다. 이 과정을 인내하고 슬기롭게 극복하는 게 바로 남북 문학 지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며, 협회 결성 후 문학인들이 문학적 실천을 통해 분단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를 추구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협회 결성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걱정을 하고 있다. 앞으로 협회는 <통일문학>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고, <6.15통일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하였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협회를 결성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어쩌면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더 많이 부딪치고, 더 많이 갈등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고, 더 많이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언어를 질료로 하는 문학인만큼 남과 북의 언어에 깃든 문학적 실재와 표상은 이제야말로 한데 뒤섞이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결성식을 치른 후 가진 ‘문학의 밤’에서 남측의 이재무 시인은 “북에서 흘러온 물과/남에서 흘러온 물이/연대와 결속의 한 몸으로 스끄럼을 짜/어기영차 한 바다 향해/힘차게 행진하는 것을 보아라/조국의 바다, 조국의 미래가 멀지 않다/조금만 더 힘을 내어라, 조금만 더 수고하여라,/흐르는 물은 쉴 수가 없다”(「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이제부터 조금만 더 힘을 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남과 북의 통일은 자연스레 우리들 곁에 와 있을 것이며, 호들갑을 떨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레 남과 북은 평화로운 사회를 살 수 있을 터이다. 또한 그러다보면, 남과 북의 뒤섞인 문학은 그동안 우리에게 낯익은 서구 미학의 전횡적 질서를 넘어서서 참다운 세계문학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 보일 수도 있을 터이다. 협회 결성 과정에서 어려운 순간도 있었으나, 남과 북이 모두 그 특유의 낙관적 희망의 저력으로써 난관을 헤쳐 왔듯이, ‘6.15민족문학인협회’가 조급하지 않게 넉넉한 품새로써 이와 같은 민족적․미학적 문제들을 좀더 높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요컨대, 한국문학은 이렇게 더디지만, 결코 더디지 않은 문학운동의 행보 속에서 분단체제를 넘어서고 있으며, 외형적으로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을 슬기롭게 넘어서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꿈꾸는 문학의 저 활달한 행보를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4. 단호하게 말한다:“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라!”
최근 한반도의 남북 관계는 6자회담의 순항과 2차 남북정상회담의 실시로 인해 화해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수구 냉전적 시각을 완강히 고집하고 있는 극우보수주의자들은 예전에도 그렇듯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대북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대다수 양심적 주민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립과 반목으로 인한 적대적 공존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며, 평화와 상생의 길을 슬기롭게 모색하는 것만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불식시키고, 민족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할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8개 항목 중 두 번째 항목에서 남북의 정상들은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출석하여, “북한도 노동당 강령이나 규약 그리고 형법 조항을 개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남한도 이에 상응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바,(낙관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국가보안법은 예전의 틀을 지닐 수는 없을 터이다. 
국가보안법이 한반도의 남측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활용되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여, 참여정부는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정리, 사학개혁, 언론개혁)’을 추진한다고 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하였지만, 다 알다시피 국정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고사하고 이렇다할 개정도 못한 채 국가보안법을 존속시켰던 셈이다.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의 개폐정 작업이 수월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문학은 국가보안법의 개폐정 작업을 무색케 할 정도로 남과 북의 문학교류 속에서 모국어에 드리워진 휴전선을 걷어내고,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소통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개폐정 작업을 뒤로 미루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남과 북의 관계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과감히 정비해나갈 때 통일은 구호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의 남과 북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뿌리내릴 것이다. 이제 더는 멈칫해서도 안 되고, 지레 포기해서도 안 된다. 너무나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예술의 창조적 가치로서의 위엄을 갖고, 단호하게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법률로 존속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은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며, 이제 한국 사회는 이 늙고 추한 악법의 굴레를 걷어내고 화해와 평화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한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다시 한 번 시급하고 강력하게 반문화․반인권․반민주 악법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화예술인 선언문: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억압하는 반문화․반민주․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2004. 9. 22)
중에서


고명쳘∙1970년 제주 출생. 문학평론가.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저서로는 논쟁, 비평의 응전, 순간, 시마에 들리다, 칼날 위에 서다,비평의 잉걸불, 1970년대의 유신체제를 넘는 민족문학론, 공저로는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한국현대시문학사, 제주인의 혼불, 땅은 글이 되고 물은 시가 되고 등 다수. 고석규비평문학상 및 성균문학상 수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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