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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③/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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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687회 작성일 08-07-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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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③ ―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갈가마귀와  아서 고든 핌




―모든 걸작은 신비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다소의 불확정성이 있다.

네버모어(Nevermore)
빈센트 반 고흐의 「네버모어(‘이젠 끝이야’라는 뜻)」란 그림을 본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갈가마귀」를 읽고 그렸다는 그림, 「네버모어」. 
그 그림을 그리며 반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서서 자신의 치명적인 우울 너머 무엇을 보았을까? 포가 산, 포가 평생 동안 살았던, 서리로 덮인, 얼어붙은 창백한 시체 같은, 너무나도 자신과 닮은 그 방을 생각했을까? 자신의 극단적인 고독과 절망 같은. 아님 “네버모어, 네버모어”라고 속삭이는 갈가마귀의 뾰족한 부리를 광포한 붓으로 주저 없이 잘라버리고 싶었을까?
‘네버모어’는 포의 시 「갈가마귀」에 나오는 유명한 후렴구이다. 무려 11번이나 나오는. 
포는 죽기 4년 전에 이 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발표되자마자 경탄할 만한 지배적인 운율과 멜로드라마 같은 감상적인 어조와 독특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인해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폭풍우 치는 겨울 밤, 창가로 갈가마귀 한 마리가 날아온다. 날아온 갈가마귀는 방문 앞에 있는 팔라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와 공예의 여신) 흉상 위에 내려앉는다. 방 안 책상 앞에는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청년은 ‘레노어’라는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다. 사랑의 상실은 세계 도처에 숨어 있던 온갖 절망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하여 방안은 어둡고 침울하고 암울하다. 청년은 갈가마귀를 향해 사랑을 잃은 자신의 고통스런 번뇌와 절망을 호소한다. 그러나 아무리 호소하고 또 호소해도 갈가마귀의 대답은 한결같이 “네버모어”란 단 한마디뿐이다. 참다못한 청년은 갈가마귀를 향해 제발 사라지라며 오열한다. 하지만 갈가마귀는 그런 청년을 그저 바라만 볼 뿐 좀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108행(포는 100행을 목표로 정했다고 하지만)으로 이루어진 이 시 「갈가마귀」의 내용이다. 포는 이 시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 모든 시작 과정을 '글쓰기의 철학'이라는 자신의 시론에 남겨놓을 정도로. 그리고 그 시론에 의하면 포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유일한 전통적 영역이며, 가장 강렬하게 영혼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가장 순수한 기쁨은 아름다움의 관조에 있으며, 그 아름다움에 최고의 표현을 부여하는 색조로서 비애를 들었다. 즉 우수야말로 모든 시의 색조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것이라고 했다. 하여 그는 그의 「갈가마귀」에 ‘한 아름다운 여자의 죽음과 그것에 절망하는 한 청년과 음산한 갈가마귀’를 시적 장치로 놓고, 그곳에다 언어의 청각적인 아름다움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가미하였다. 그런 그를 가리켜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위대한 문학 엔지니어”라 칭하였다. 그만큼 포는 작품 구성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도 우연이나 직관에 의지하지 않고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듯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게 계획해 썼다. 단어 하나하나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소리가 잘 울리는 ‘네버모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게 함으로써, 시를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소리가 오랫동안 귓속에서 메아리처럼 맴돌 수 있게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 그리고 한없는 불행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추억의 상징으로 갈가마귀란 새를 선택했다. 
「갈가마귀」는 발표되자마자 포에게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안겨다 주었으며, 반 고흐를 비롯한 구스타프 도레(그는 포의 「갈가마귀」를 주제로 한 삽화를 그렸다), 오딜롱 르동, 에드먼 둘락 등의 화가들이 이 시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누구든 포를 그려야 할 땐 언제나 그의 상징이 된 갈가마귀를 그의 어깨 위나 곁에 함께 그려 넣었다. 그만큼 갈가마귀는 포의 불변의 상징이 되었으며 또한 고딕 공포물의 표준적인 등장물이 되었다. 

까마귀(Crow)   
까마귀는 검은 새이다. 종류에 따라 털의 일부분이 희거나 갈색이거나 또는 회색, 보라, 초록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까마귀는 검은 색에 속한다. 그리고 그 검은 깃털 때문에 까마귀는 어디에서나 뚜렷하게 눈에 띈다. 반면에 그런 이유 때문에 서로 섞여 있으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검은 색은 땅의 색이자 밤의 색이다. 그래서인지 검은 색은 왠지 신비롭게 느껴진다. 칠흑같이 검은 까마귀가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인 자세로 곧 죽을 사람의 모습(먹이)을 바라보고(노려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섬뜩한가. 그 때문에 까마귀는 죽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리들 속에서의 이 새는 다른 새와 달리 쾌활하고 장난스럽다. 이들은 나무의 잔가지를 물고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뜨린 다음, 재빨리 쫓아가서 다시 낚아채는, 장난을 즐긴다. 알래스카 지방의 까마귀들은 지붕 위의 얼어붙은 눈을 쪼아서 조각을 낸 다음 썰매처럼 타고 내려오는 놀이를 즐긴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또한 까마귀는 새 중에서 신체에 비해 뇌의 크기가 가장 크다(아메리카까마귀의 뇌는 무려 몸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인간의 뇌의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까마귀는 새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새로 불린다.(그에 버금가는 영리한 새로는 까치와 앵무새가 있다).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마도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마귀는 성경을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선과 악의 양극단을 나타내는, 혹은 예언과 지혜, 장수와 관련이 깊은, 신비로 가득 찬 존재다.
그중 갈가마귀는 큰까마귀, 썩은고기까마귀, 아메리카까마귀 등과 함께 까마귀속에 속하는 아주 영리한 새다. 다른 까마귀속 새들보다 몸체는 작지만 뾰족한 부리를 갖고 있으며,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은빛 눈을 갖고 있다. 갈가마귀의 은빛 눈은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검은 깃털과 대조되어 경외스러울 정도로 신비한 빛을 낸다. 목소리 또한 신기하게도 인간의 목소리를 많이 닮아 예부터 마녀들이 즐겨 친했던 동물 중 하나였다. 포는 이러한 갈가마귀의 특성을 잘 살려 그를 지혜의 여신인 팔라스의 흉상 위에 내려앉게 했으리라. 그 모든 것을 보다 명료하고 완전하게 잘 엿들을 수 있도록.  

에드거 앨런 포 
포는 1809년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를 잃고(영원한 가출), 그 이듬해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포는 유랑극단 작업실을 전전하다 할 수 없이 부유한 상인인 숙부 존 앨런의 양자로 들어갔다. 하지만 숙모와 달리 숙부인 앨런은 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살아 있는 내내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켰다.(만약 그때 양부인 앨런이 조금이라도 포를 이해하고 사랑해주었다면 포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조금이라도 달라지긴 했을까?)
포는 버지니아 주와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창시절의 포는 머리가 총명하고 운동을 좋아하는(특히 넓이뛰기) 생각 깊은 학생이었다(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환상단편소설 「윌리암 윌슨」을 읽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곧 퇴학당하고 만다. 그는 불운한 기자생활을 하면서 1836년 열세 살 된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한다. 포에게 있어 그때의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가족이 생겼으며 가정이란 걸 갖게 되었으므로. 그러나 병약한 버지니아는 1847년 결핵으로 죽고 만다. 버지니아의 죽음으로 포의 생활은 다시 최악으로 치닫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쾌락과 고통의 무시무시한 집행자인 아편과 도박과 궁핍이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재기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1849년, 그는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창조 행위였던, 그 짧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끝낸다. 

나는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 모습을 본다. 내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 내 등 뒤의 세계, 다른 누군가의 고통스런 하늘과 땅, 나 자신의 삶이 불가피하게 내지르는 폐쇄적 원한과 분노, 그리고 열병에 들떠 신음하는 목소리들. 그 모습은 마치 공허에 대한 확신 위에서 구성된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처럼 인간 본성의 또 다른 깨어지고 있는 거울이었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1938년, 포는 아서 고든 핌과 어거스터스 바나드라는 두 청년에게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으로의 항해’를 권유했다.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그들은 포가 시키는 대로 맨 처음 ‘에어리언(낭만적인 꿈)’이라는 작은 배에 승선했다. 그러나 그 배는 ‘펭귄(흑과 백이 대립되어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대형 포경선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 그들은 다시 ‘그램퍼스’라는 포경선에 승선한다. 본격적인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위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환상과 공포라는 가장 인공적이고도 의도적인 문학적 서사 양식을 통해. 그들의 여행은 계속된다.

→살의 띤 자신의 충견과의 대립 →망망대해에서 벌어지는 선상 반란 →새 친구 더크 피더슨 →시체들을 가득 싣고 표류하는 범선 →극심한 기아와 고통 속에서 삼키는 동료의 인육 →바다에 수장시키는 병든 친구 어거스터스 바나드 →제인 가이호에 의해 구제되는 두 청년 →모든 것이 검은 색인 살랄 섬에 착륙 →사람들을 생매장시키는 원주민으로부터의 구사일생 탈출 →모든 것이 흰색인 남극에 도착 →무사히 귀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포의 소설 중 장편에 해당되는 소설이다. 포는 이 소설을 흑인 노예 반란의 위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에 썼다. 포는 이 소설을 통해 흑백 문제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아니 궁극적으로는 인간 모두의 보편적 상황 속에 감추어진 추악하고 끔찍한 악몽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핌은 ‘자아’이고, 그의 친구 어거스터스는 ‘초자아’이며, 새 친구 더크 피터스는 ‘무의식(이드)’을 상징한다.” 포는 그들을 통해 밝은 햇빛 속에 노출되어 있는 자아가 아니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또 다른 자아를 찾아내려고 했다. 
이 세상에는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로 풀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판타지를 통해 의식세계의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의 공포, 불안, 잔인, 초조, 강박적인 꿈 등을 파헤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석 없이 멜빌의 '모비딕'을 읽듯이, 아니면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을 보듯이 그냥 해양모험소설로 읽어도 좋다. 그렇게 읽어도 충분히 ‘재미’와 ‘흥분’을 가져다준다. 거기다 ‘공포’와 ‘혐오’까지도. 
포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항해술과 포경에 대한 책들을 탐색해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엔 ‘상상력의 천재’로 알려진 작가의 작품답게 번득이는 천재성이 잘 나타나 있지만 작가의 치열한 노력의 흔적 또한 작품 전반에 깊이 배어 있다. 포는 이처럼 실제 삶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영감을 부정하고 이성과 명석한 지성을 신앙처럼 숭배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포의 최고 백미는 단연 그의 빛나는 단편들이 아닐까?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비롯해 보들레르를 열광시킨 「검정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떠올리게 하는 「윌리엄 윌슨」, 코난 도일과 라캉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 「도둑 맞은 편지」, 「황금충」 등의 60여 편의 단편들. 
그는 그 작품들을 통해 아직도 우리에게 최고의 ‘전율’을 선사하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에게 고도의 지적 게임을 벌이자고 유혹하고 있다. 온갖 모함과 욕망과 공포와 괴기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21세기의 우리를 향해 “네버모어!”라고 한껏 조롱하고, 비웃으며!



김상미∙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박인환 문학상 수상.
추천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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