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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연재| 김영식의 하이쿠 에세이⑦/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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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19회 작성일 08-07-1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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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영식의 하이쿠 에세이⑦ 
짧은 시, 긴 울림




1.
책을 안 읽은
하루는 왠지 허전해
저무는 봄날

書を読まぬ一日は寂びし春のくれ
showo-yomanu ichinichiwa-sabisi haruno-kure

봄날의 저녁, 혹은 봄의 막바지. 그는 오늘 어인 일인지 책 한 줄 읽지 않고 하루를 보내버렸다. 휴일의 봄날이 너무 좋아 산으로 강으로 나간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정원에 가만히 앉아 봄날의 햇볕을 쬐며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시간은 금세 흘러 저녁이 되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오늘은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이 있듯 책을 매일 읽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한다. 다음 구와 같이 독서에 빠져 밖의 저녁노을을 쳐다볼 여유도 없다.

저녁노을 한번 쳐다보지 않은 독서인가 
夕立に一顧もくれず讀書かな.

나도 물론 좋아서 책을 읽었지만 어릴 때는 지식 축적의 욕구가 강해서 평생 세 수레니 다섯 수레니 하며 책의 권수에 집착하여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기나긴 책읽기 마라톤에서 뒤처진다는 생각도 하였다. 정신없이 바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독서에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아, 어쩌다 일찍 퇴근한 날에는 저녁을 먹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고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달려갔는데, 그것은 함께 사는 사람과의 대화부족을 초래하여 이기주의자라는 비난도 들었다.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즐기되 기대에 못 미치는 욕구불만형 독서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그러던 것이 나이 사십을 넘기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 삶에 많이 부대껴서일까,  아니면 게을러져서일까? 공자는 나이 사십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불혹이라 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세상의 말에 흔들리지 않은 나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좀 좋지 않은 뉘앙스의 다른 말로 하자면, 가치관이 뿌리 깊게 고정되어 고집이 세진 나이라고 볼 수 있다. 내게 그 굳어진 가치관에의 고집은 불혹에 대한 나름의 의미정립에도 나타난다. 즉, 불혹이란, 나이 사십이 넘으면 더 이상 남의 말에 혹하지 않는 것. 그러므로 남의 글을 읽기보다는 내 글을 쓰고, 남의 인생을 엿보기보다는 내 인생을 살기에 노력하라는 뜻이다.
이제 공부만 하는 나이는 지났다. 화창한 봄날에는 방에 처박혀 책을 읽지 말고 밖으로 나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지내야 할 것이다. 또 소설책의 경우에는 남의 인생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자신이 실제 삶의 주인공이 되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소설을 써서 작가가 되는 것보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사실 더 좋은 것이다. 초라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며 소설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진하는 나이가 불혹이다. 서재의 창백한 작가는 머리로 작품을 쓰고, 열심히 현실을 사는 사람은 몸으로 삶을 쓴다.
요즘은 책 한 권보다 산에 한 번 올라 좋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다. 할 일이 없을 때는 책을 읽겠지만, 화창한 봄날에는 책을 덮고 친구와 산에 오르면 나는 무척이나 행복하겠다.


2.
꽃샘추위에
기침이 멎지 않는 
늙은 인형사

春寒く咳き入る人形遣いかな
haru-samuku sekiiru ningyotukaikana

봄은 왔지만 아직 봄을 맞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거리를 나서지만, 집이 없는 노숙자나 밖에서 온종일 일하는 사람, 그리고 병든 사람은 두꺼운 옷을 벗지 못하고 지낸다. 추운 겨울에 고생을 하다 병에 걸린 인형사人形使는 기침을 하면서 인형을 조작한다.
오래전 오사카 출장길에 시바이(芝居. 노래와 스토리가 있는 전통연극)를 본 적이 있다. 흘러간 연예 스타에 대한 서글픔을 그린 내용이었다. 한때는 빛나는 별과 같았지만, 키운 제자가 혜성처럼 떠오르며 자연히 그는 스러져가는 유성流星이 되어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부초의 삶을 보내게 된다. 이처럼 연예인의 세계는 끝까지 명성을 유지한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대다수가 한때 반짝 빛나다가 곧 스러져간다. 지금도 연예계를 보면 소위 ‘활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방송국에서 부르지도 않는다. 방송국에서 호출이 없는 연예인이라도 전국의 밤업소에서 불러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이 구에 그려진 인형사는 아마 봄날의 추위 속에서 거리에서 작은 인형 하나 움직이는 공연을 하며 기침을 해대는 가련한 노인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많은 관객 앞에서 화려한 손놀림을 자랑하던 때가 있었겠지만, 그는 어떤 사정으로 이곳저곳을 홀로 방랑하며 인형극으로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래서 늙은 인형사를 바라보는 시인은 연예인의 말년을 보는 가련한 마음으로 이 하이쿠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련함 속에 작은 행복을 엿본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임순례 감독)’는 내가 말하려는 ‘담담淡淡’의 좋은 예가 된다. 한때 예술을 하다가 대부분은 돈벌이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정착하게 되지만, 어떤 이는 비록 밤업소를 전전하게 되더라도 끝까지 예술의 길을 걷는다. 이 영화에서 나온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한 음악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남자이다. 룸살롱에서 벌거벗긴 채 노래를 하고, 지방의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남자는 꾸준히 작곡을 하고, 과거 첫사랑의 여자와 해후도 하게 된다. 오히려 과거 한때 밴드를 같이하던 한 친구는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잘살았지만, 독직 문제로 자살을 한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유전인생은 여수에 이르러 첫사랑의 여자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와 연주를 하며 막은 내리는데, 나는 연주하는 남자의 얼굴에서 번지는 담담한 미소를 보았다. 자살한 친구가 죽기 전에 남자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행복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생각습관으로 자꾸만 행복이 무엇인지 구태여 말하려고 하지만, 사실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그런 담담淡淡한 마음이 정답이 아닐까. 큰돈도 벌지 못하고, 오늘도 나이트클럽의 춤추는 손님들을 위해 블루스를 깔아주지만, 그는 음악을 할 수 있어 좋다. 절대적으로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으므로 그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던 것이었다.
늙은 인형사는 병에 걸려 기침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국을 여행하며 담담한 미소와 함께 여생을 보내는 사람이다. 기침의 불행(-)을 가졌지만, 인형의 행복(+)을 가져 결국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의 담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래방에 갈 기회가 있으면 이상은의 노래 ‘담다디’를 부르며 담담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대가 나를 떠나도(-).’ = 0.


3.
울며 지나는
베르테르를 만난
안개 낀 밤거리

泣いて行くウェルテルに逢ふ朧かな
naite-yuku beruteruni-au oborokana

오보로(朧)는 봄날의 따스한 공기로 말미암아 안개가 낀 듯한 밤 풍경을 말합니다. 울며 지나는 청년이 있으니 시점은 아마 늦은 밤, 혹은 새벽의 풍경이 어울릴 듯합니다.
베르테르는 잘 알다시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의 베르테르입니다. 일본에서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若きウェルテルの惱み)’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베르테르도 일본식 발음이니 벨테르가 더 가깝겠지만 굳어져 버렸으니 그냥 씁니다. 우리나라에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는 가곡이 있을 정도로 베르테르는 이루지 못하는 슬픈 사랑에 빠진 청년의 상징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많은 여자의 마음은 설렌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찬란한 봄볕을 받으면 새로운 사랑의 꿈이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약혼자가 있는 로테와 같은 처지의 여자가 그런 봄날의 마음에, 불쑥 주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청년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청년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어느 선 이상으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의 그런 냉정한 이성은 또 오히려 지고한 매력으로 받아들여져 청년은 더욱 괴롭습니다. 고통을 달래고자 매일 술을 먹고, 오늘도 밤거리를 헤매며 여자의 어떤 말 하나 표정 하나를 생각하며 그녀의 마음을 추론하여 보지만 여전히 여자의 애매한 미소는 밤안개가 되어 청년의 얼굴에 차갑게 와 닿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남들이 볼까 저어하지만 밤이니 억제력도 느슨해져 눈물은 그대로 흘러내리고 맙니다. 
작가 오자키 고요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 금색야차金色夜叉를 쓴 사람입니다. 줄거리는 다 아시리라 생각하니 생략합니다만, 원작에서, 마음이 변한 여자를 떠나며 남자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은 1월 17일, 내년 이 날이 되면 내 눈물로 달빛도 흐려질 것이야. 달빛이 흐려지거든 내가 어디선가 너를 원망하며 울고 있다고 생각해줘.”
금색야차의 이 남자 또한 울며 거리를 헤매는 베르테르입니다. 돈에 눈이 멀어 떠나간 여자에 대한 원망, 여자를 잡을 수 없는 초라한 자신에 대한 한탄으로 청년은 눈물을 뿌리며 밤거리를 걸어갑니다. 슬픔의 짙은 안개 속에 달은 희미하게 떠 있습니다. 그를 쳐다보고 걸음을 멈춘 작가 역시 또 한 사람의 베르테르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뿌연 달이 뜬 도시의 밤거리를, 많은 베르테르들이 취한 몸 비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베르테르가/술 취해 지나가는/롯데백화점



김영식∙1962년 부산 출생. 2002년 ≪리토피아≫ 수필 등단. 번역서 모리오가이의 기러기. ‘일본문학취미’ 사이트 운영자.
추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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