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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계간평(소설)/오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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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20회 작성일 08-07-1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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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소설

공포의 힘과 반-물리적 세계
오윤호|문학평론가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 2007)
∙듀나, 용의 이(≪북스피어≫, 2007)


“장르로 나눌 수 없는 신종 장르가 등장했다.”
이 도발적인 발언은 지난 계절 한 계간지에 문학 장르의 경계 해체 현상과 새로운 글쓰기를 추구하는 작가들의 움직임을 조명한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취지야 물어보나 마나지만, ‘장르’라는 말이 수용할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을 확대해석한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무엇보다 한 작가가 혹은 한 평론가가 새로운 문학 장르를 선언한다고 해서 그 형식이 당대 사회의 담론적 조건(미학적 사유와 경제적 상황)을 포괄하며 재구축될 것이라고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시대의 문학이 ‘대중적 장르’라기보다는 ‘권위적 전위’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지향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그 어려움은 증폭된다. 낯설고 새로운 자극에 대한 흥분, 심각하면서도 모호한 자의식적 어휘와 과잉된 문학적 감수성에 물든 독선에 휘둘려 문학의 소비주체인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야 한다는 사실, 현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문학 장르 혹은 장르 문학에 대한 사유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우선은 장르의 혼종성과 새로운 장르의 탄생 사이에 어떠한 진화론적이며 미학적인 사유가 담기는지, 멀티 대중문화의 중첩성이 ‘문학’적 글쓰기라는 오래된 사유방식․상상력과 어떻게 교섭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 예술의 장르적 성격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미학적 효과를 내면화하고 있다. 막연히 낯선 기법과 감수성만으로는 ‘장르적’이라는 수식어를 감당할 수 없다. 그것이 소통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다양한 관심과 밀접하게 관련 맺고 있는 것도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즘 영화나 게임의 하위 장르가 잘게 분열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익숙하면서도 낯 설은 경험을 찾는 대중의 취향과 소비심리’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 속에서,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 2007)와 듀나의 용의 이(북스피어, 2007)에 주목한다. 한 쪽이 철저하게 장르소설적 경향을 강조하며 SF을 써내고 있다면, 다른 한 쪽은 일명 순수문학 차원에서 일상과 엽기의 경계를 교묘하게 짜 맞추며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그 차이점 때문에 둘을 묶어 ‘장르소설’이라고 규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소설이 지향해야 가능성을 ‘장르’ 문제와 더불어 논의해 볼만하다. 

진화하는 심리적 공포의 힘_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
공포란 인간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불확실한 세계에 대해 불안과 위협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편혜영 소설은 초기작부터 공포를 주요한 서술전략으로 사용했다. 특히 '사육장 쪽으로'에서 보다 명료하게 공포의 대상과 그것을 인지하는 주체의 분열상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고딕소설의 특징을 반영한 '아오이가든'(2005)에서 기괴한 세계를 그리거나(「아오이가든」의 ‘무섭고 두려운 역병의 기운이 도는 곳’, 「맨홀」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 익숙하지만 괴담이 떠도는 공간(‘저수지’, ‘계곡’ 등)에서 발견되는 시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낯설고 무서운 미래 도시와 음험한 죽음의 이야기로 뒤덮인 자연 공간은 섬뜩한 혐오감을 갖게 만들지만, 결코 불가능한 세계는 아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는 시각적 이미지의 혐오스러움과 신체 훼손이라는 ‘엽기적 추상’이 만들어내는 섬뜩함을 ‘건조하게’ 향유한다. 이때의 섬뜩함은 이해 가능한 낯선 세계를 지시하면서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독자를 그러한 세계에 몰입하게 하거나 현실의 은폐된 진실들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아오이가든'이 감각적 경험의 사실성을 기반으로 현실 이면의 막연한 ‘추악한 진실’에 다가가려 했다면, '사육장 쪽으로'는 내면 심리의 추이를 치밀하게 보여주면서 상투적인 자본주의적 욕망이 처참한 공포의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서술해내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환경오염과 전염병으로 뒤덮인 근미래가 아니라, 대도시의 빌딩으로부터 도시외곽의 고급 주택가와 유원지까지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도시’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익숙함 때문에 도시는 더욱더 적대적 존재가 된다. '아오이가든'에서 욕망이 거세된 체 유령처럼 떠돌던 인물들은 '사육장 쪽으로'에서는 자신의 자본주의적 욕망과 이성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의 공포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감을 즐긴다. 
첫 번째 작품인 「소풍」은 도시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하룻밤’을 꿈꾸며 떠나는 여행 이야기이다. 간절히 원했던 여행이었지만, ‘도시 인근의 바다에서 대하나 잔뜩 먹고 왔으면 좋겠다’는 여자와 ‘도시인들이 가고 싶은 숨겨진 관광명소 1위인 W시에 가야한다’는 남자가 충돌하면서부터 여행은 신경이 예민해지고 불쾌한 ‘행사’가 되고 만다. 게다가 두껍게 내려앉은 ‘안개’와 머리까지 뒤집어놓는 ‘멀미’는 일 때문에 늦게 출발한 두 남녀의 여행을 더욱 복잡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W시는 도시와 일상을 벗어나고자 했던 두 남녀에게는 전도된 이상향이다. ‘도시인’이라는 자격조건 속에서만 욕망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로 여겨진다. 그러한 현실에 질린 ‘여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귀염성 있고 잘 생긴 얼굴’을 가진 탱크로리 운전사를 만나게 된다. 예정된 장소인 W시로의 여행보다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내를 통해 경험하는 기분 좋은 충동이 여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안개에 휩싸인 고속도로에서 탱크로리와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W시로의 여행이라는 욕망’과 ‘낯선 사내에 대한 욕망’은 모두 깨어지고 만다. 탱크로리는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으면서도 도시를 혐오하며 떠나려 하는 소시민의 욕망’을 비웃는 도시의 잔인한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존재하지만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탱크로리는 섬뜩한 공포를 통해 여행을 떠나는 소시민의 욕망을 잘게 부셔버린다. 두 남녀의 여행은 W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끝나고 만다.
편혜영 소설에서 ‘도시’는 단순한 소설적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욕망이 집약된 꿈의 공장이면서 생존의 전장이기도 하다. 「사육장 쪽으로」와 「분실물」의 경우 중산층 가장이 꿈꾸는 자본주의적 삶과 좌절된 욕망을 다루고 있다. 두 가장에게는 도시에서 한 회사의 직원으로 살아남는 것만이 자신이 속한 가족을 위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유지하는 행복한 상황은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균열된다. 「사육장 쪽으로」는 파산선고를 받은 가족이 겪는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개에 물려 병원을 찾아 ‘사육장 쪽으로’ 향하는 다급한 상황으로 끝난다. 파산 통지서의 배달과 아이가 개에게 물리는 일은 더 이상 정상적인 가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족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두 사건 사이에서 가장은 지속되는 팽팽한 긴장감과 좌절된 욕망 때문에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현재의 상황만 모면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분실물」에서도 승진을 바라는 한 집안의 가장이 지하철에서 회사의 기밀문서가 담긴 가방을 잃어버리면서 전개되는 심리적 갈등과 존재의 상실과정이 첨예하게 서술된다. 분실된 가방을 되찾지 못하는 동안 ‘박’은 차츰차츰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상사인 ‘송’에게 분실 사실을 통고한 후 ‘박’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 없는 존재들과의 공존은 주체 그 자체의 망각과 상실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도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동물원의 탄생」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이 작품은 그 도시로 도망친 시베리아산 늑대의 이야기이고, 그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 늑대들의 이야기이다. 보험회사 사무원인 ‘사내’는 시골에 있는 병든 노모와 늘어만 가는 회사 업무, 구차하기만한 반 지하 자취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야생성을 간직한 늑대가 동물원을 탈출해 사람을 죽이는 동안 다른 늑대 사냥꾼처럼 사내도 늑대를 잡기 위해 도시를 배회한다. 늑대는 「소풍」에 나오는 ‘탱크로리’처럼 도시의 폭력성, 혹은 소시민들의 상투적 욕망을 전유한 상징이다. ‘몸 위에 시꺼먼 빌딩의 그림자를 업고 있는 거대한 짐승’을 발견하고 사내는 방아쇠를 당긴다. 

사내의 총알이 검은 그림자의 몸을 관통했음이 분명했다. 사내는 그제야 자신이 바라던 것이 늑대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내는 겁에 질려 쓰러진 그림자 곁으로 다가갔다.
쓰려져 있는 것은 털가죽옷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사내는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늑대처럼 털가죽옷을 입고 네발로 기어서 구릉을 내려가던 남자였다. 그 남자가 아닌지도 몰랐다. 도시에는 털가죽옷을 입은 사내들이 아주 많았다. 비슷한 디자인의 털가죽 때문인지 그들은 모두 닮아 보였다.(「동물원의 탄생」 중에서)

늑대를 잡겠다는 욕망은 ‘털가죽옷을 뒤집어쓴 남자’를 총으로 쏴 잡고 말았다. 이 황당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털가죽옷을 뒤집어썼다’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 속의 사람들이 모두 늑대를 잡고 싶다는 욕망은 곧 그 모두가 늑대가 되고 싶다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 속에는 보험외판원으로서 도시를 배회하는 모습을 도망친 늑대가 도시를 배회하는 것으로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사람이 늑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늑대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늑대가 살생을 통해 야생의 본능을 되찾듯 인간도 살인을 통해 야생의 욕망을 되찾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은 도시라는 공간을 야생의 공간으로 전유함으로써, 현실에 짓눌린 일상의 공포를 전복하고 있다. 
'사육장 쪽으로'에서는 폭력적 공포에 빠져드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적대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죽음과 시체에 대한 두려움, 존재의 분열을 경험하는 자의식의 환각 등은 현실의 사실성이 해체되는 순간이며 공포가 감각적 경험으로 구체화하는 순간이다. 특히 공포 효과의 조건이기도 한 ‘억압되고 은폐된 것’을 자본주의 세계의 욕망과 균열로 구체화하면서 그것이 내면화하고 있는 모순과 폭력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육장 쪽으로'는 세련된 공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반-물리적 세계의 영원성_듀나의 '용의 이'
서구의 SF문학이 그 나름의 소비 시장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하위 장르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에 비한다면, 우리 문학에서 SF적 상상력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미적 효과나 사회문화적 성격을 서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듀나가 보여주는 있는 일련의 작품 활동은 문학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장르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듀나의 '용의 이'는 문명비판이나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복잡한 문학적 논리로 치장하지 않고, SF 소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장르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거울 너머로 건너가다」에서 ‘바바야가 Ⅳ’이라는 외계 행성의 생명력과 염력을 가진 ‘정글’이나, 「용의 이」에서 ‘별의 문’을 통해 우주선을 빨아들이는 표준형 행성 등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공간들이다. 또한 살해되어 우연히 황토땅에 묻힌 아버지가 좀비가 되어 되살아나 다른 사람들마저 감염시키는 「너네 아빠 어딨니?」나, 인간의 영혼을 수집해 영체에 집어넣는 기술을 개발하는 내용을 다룬 「천국의 왕」은 ‘삼X동’과 ‘목동’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독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한 동네라고 동일시하지 않는다. ‘좀비’와 ‘영혼을 모으는 기계’ 등 비현실적이고, 괴기스러운 상황들이 전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독자는 ‘현실의 사실성’보다는 ‘SF적 가능성’에 더 매료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용의 이'는 매우 주관적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담화 전략을 통해 SF가 갖추고 있어야 할 ‘과학적 합리성’은 희석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의 인과율 역시 파괴되고 있다. 듀나의 소설이 탈장르적 성격을 갖게 되는 것도 SF 소설의 서술전략을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가) 그러니 그건 그냥 넘어가고. 이쯤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리의 주인공 이름은 새별이야. 황새별.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엔 초등학교 육학년이었고 삼X동 판자촌에서 같은 학교 일학년인 동생 새봄이 그리고 아빠와 함께 살았지. 앞의 문장에서 난 새별이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냈어.(「너네 아빠 어딨니?」 중에서)

나) 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내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삼십팔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따분한 편견과 얼굴 없는 집단의 무덤덤한 악의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받은 여자의 이야기를. 그러나 여러분은 아마 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엔 부당한 고통을 받은 선한 사람과,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어버린 초라한 악당과, [중략] 사생아가 등장한다.(「거울 너머로 건너가다」 중에서)

두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본격 문학의 영역에서 외부 세계와 내적 주체의 갈등을 드러내는데 사용했던 ‘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의 서술자는 새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객관적인 위치에 존재하면서도, 새별이의 주관적인 시선과 지각을 통해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의 서술자 역시 ‘나’로 지칭되는 일인칭 서술자가 인물이 지각하고 경험한 세계를 재현한다. 주관화된 목소리임에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세계나 상황에 대해서 매우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 SF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데 점에서 보면, 이렇듯 주관화된 서술자의 목소리는 SF의 기본적인 성격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남은 이야기가 있나? 음…… 대충 다 이야기한 것 같아. 이 정도면 본론에 들어갈 준비가 됐어.”와 같은 발화를 통해 시작이 명료하지 않은 이야기, 끝이 해피엔딩인지 비극인지 모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SF는 작품 내에 시공간적 세계인식, 우주의 질서를 과학적 인식론으로 새롭게 이해한다. 여기에서 과학적 인식론이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의 다른 표현이다. '용의 이'에서 좀비 호러 이야기를 다룬 「너네 아빠 어딨니?」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반-물리적 세계에 대한 강박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천국의 왕」은 사람은 죽은 직후 그 영혼을 채취해서 보관할 수 있는 영체 개발을 둘러싼 사람과 영혼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으며, 「거울 너머로 건너가다」는 바바야가 Ⅳ의 나무들이 정글 형태로 뭉쳐 서로와 연결되면서 거대한 뇌와 같은 시스템을 형성해서 지구인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를 허구적으로 형성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용의 이」는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어있는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조작하여 새로운 기억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원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 허구 세계를 구축하는 나무들의 뇌, 조작되는 기억 등 과학적 인식을 넘어서 대상들은 제시된 이야기 세계를 전개시켜나가는 가장 중요한 서사적 장치가 된다.  
'용의 이'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을 디스토피아적 우주관·세계관 속에서 풀어놓는다. 물리적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는 좀비들로 넘쳐나고(「네 아빠 어딨니?」) 지구에서의 삶이 외계행성의 나무가 꾸는 욕망보다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거울 너머로 건너가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지만 표준형 행성에서 만난 오래된 유령과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생활이 되기도 한다.(「용의 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고,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에 대한 동경은 현실의 삶, 지구적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극적 비젼 이면에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 충족된 세계상이 펼쳐지고 있다. 영원한 삶, 세상 모든 것과의 소통, 우주적 존재로서의 단독자 등 현실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로 제시되고 있다. 
이렇듯 듀나의 '용의 이'는 소설이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성의 강박’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간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속에 반영하고 있다. 형식과 이야기 전개에 있어 작위적이고 서툰 면모가 보이기도 하지만, 주관적 시선이 갖고 있는 편협함이 이야기 전개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든 허구적 세계든 ‘세계’에 대한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상상력의 조건들을 되묻게 만든다. 



오윤호∙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저서 현대 소설의 서사 기법, 깨어진 역사 비평적 진실. 평론 「그림자 사나이의 틈에 대한 악몽」 외. 서강대, 서울예대 강사.
추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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