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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권두칼럼/임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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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28회 작성일 09-01-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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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의 한국문학, ‘土地’의 작가 박경리로부터 신생을 꿈꾼다


지난 5월 5일 오후 2시 45분, 작가 박경리 선생님이 타계하셨다.그 소식을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을 때, 내 머리 속에서는 책이나 TV를 통해 마주치곤 했던 작가 박경리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시골의 여느 나이 든 아낙네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원주의 텃밭을 일구고 있는 작가의 그 모습. <土地>의 작가 박경리는 그런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우리 곁에 늘 머물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라면 작가 박경리는 결코 죽음에 든 것이 아니다. 그의 존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살아있다.

내가 진정으로 작가 박경리의 죽음과 대면하게 된 것은 그 소식이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앞에 되돌아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운명의 바로 그 날, 작가 박경리의 타계 소식은 각종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놀라운 것은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부음이 내걸리자마자 사회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내노라하는 저명인사들이 앞 다투어 당신이 잠들어계신 빈소를 찾았고 그 많은 조문객 중에는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도 있었다. 당신의 죽음에 바쳐진 추모의 형식과 규모가 놀라운 것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신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전생애를 글쓰기에 바친 작가였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이 땅에서는 수많은 문인들이 생멸을 거듭해왔지만 그 삶과 존재가 박경리 선생의 경우처럼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추모의 대상이 된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작가 박경리는 그런 추모의 형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승인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인물로 거듭 태어났다.

물론 우리는 작가 박경리의 죽음이 사건의 의미를 띨 수밖에 없는 까닭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박경리가 <土地>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 박경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써낸 장편 대하소설 <土地>의 다른 이름은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이다. <土地>는 경남 하동 평사리와 먼 이국땅 간도의 용정을 무대로 삼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시기의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그린 거대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는 평사리의 지주 최씨 가문과 마을 농민들을 중심으로 당대인의 삶과 역사를 장강과도 같은 유장한 흐름으로 펼쳐 보여준다. <토지」의 연재는 1969년에 시작되어 그로부터 25년의 시간이 경과한 1994년의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처음 완간된 <土地>의 규모는 전체 5부 16권(솔출판사) 분량이었다. 4만장의 원고지 분량에 300여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土地> 완간본은 한국 문학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바 있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언어와 풍속 등을 정리한 <토지 사전>(1997)이 출간되기도 했다.

2008년 오늘의 한국 사회는 자신의 삶을 글쓰기에 바친 한 개인, <土地>의 작가로 살았던 박경리에 대해 ‘위대함’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게 되었다. 작가 박경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의해 한국 문학사에서 ‘문인’의 존재와 ‘글쓰기’ 행위는 최고의 사회적 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글쓰기라는 인간적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로서 문인의 존재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해온 자에게 있어서라면, 이 순간은 가슴 벅찬 장면이 아닐 수 없다.

<土地>의 작가 박경리의 죽음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에서 출발하여 100년의 전통을 이룩한 오늘의 한국문학과 그 미래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토지> 2부가 씌어지고 있을 무렵,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의 중요성을 “오늘날 우리 문단과 사회에 가득 차 있는 모든 종류의 안일주의에 대하여, 모든 약삭빠르고 얄팍한 문학에 대하여 하나의 심대한 타격”(염무웅, 「역사라는 운명극」, 1973)을 의미한다는 데서 찾아냈다. <土地>의 의의에 대한 염무웅의 선언적 판단이 내려진 시점으로부터 30여년의 시간이 경과한 2002년 무렵, 새로 출간된 신판 <土地>의 책머리에서 작가 박경리는 자신의 심경을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인商人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土地1>, 나남출판, 2002)고 토로한 바 있다. 비평가와 작가에 의해 행해진 이 두 개의 선언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때, <土地> 완간을 가능하게 했던 고유의 문학적 이념과 작가 정신은 현재의 한국문학에서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작가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에서 일본 근대문학의 종말을 읽어내고 있는 <근대문학의 종언>의 저자 가라타니 고진의 관점에 선다면, <土地>의 작가 박경리의 죽음은 한국에서 ‘근대적 문학’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土地>와 작가 박경리의 삶으로부터 한국문학의 신생을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土地>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의 미학과 생명 사상은 ‘근대 이후’의 인간상 혹은 세계상에 대한 작가의 전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아포리아에 직면해있는 오늘의 한국문학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土地>의 세계와 작가 박경리가 살았던 삶의 한복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2008년 5월

임영봉(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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