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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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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43회 작성일 08-07-1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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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안흥항 외 1편


가랭이, 연개, 갈음이, 신진도
부엌도, 단도, 궁시도, 마섬…… 

가만히 중얼거려보면 
입 안에서 푸른 물빛이 고이는 지명들

두 개의 등대가 서로 마주보고 먼 데 불빛을 비추고 있는 
안흥항,

물빛이 짙어간다
물빛이 하늘과 같아지는 시간

저녁은 물과 하늘을 뻑뻑하게 마구 휘저어놓고 
항구의 여기저기를 헐렁헐렁 돌아다닌다 

갈대들이 서걱서걱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자라난다

밤에만 자라나는 것들의 
헐한 힘으로

검은 기름 위에 떠 있는 흰 배들이 
야금야금 삭아가는 안흥항,

새벽비가 폐선처럼 적막하게 
지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혼자 도배를 하다


저 목소리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우물 속에서 길어 올린 듯
웅웅 울리는, 
아슬아슬한 평온함이 불안을 느끼게 하는
그 목소리를  

오래 전 이른 아침 손을 더듬으며 받은 
어떤 목소리, 잠이 싹 물러나고 
뒷목이 서늘해지는 그 낮은 소리를 
눈을 감고 들은 그날 이후 삶은 비루해졌다

혼자 이사를 하고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도배를 하고 
철마다 수건을 받치고 장롱을 옮기고
            
혼자 하지 못하는, 
천장의 벽지만 
누렇게 바랜 지난 옷을 입고 있는
오랜 독신녀의 방
오늘 그의 목소리가 죽은 이의 음성과 
배추흰나비의 날개처럼 겹쳐진다 

사방연속무늬의 넝쿨은 천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누군가 넝쿨을 걷어 올려주어야 하는데
그가 누우면 갈 곳 몰라 허공을 헤매는 
넝쿨손들이 보이겠지

그 넝쿨손들의 허전한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데
버팀목이라도 세워주어야 하는데
몸을 누이면 
하늘로 뻗지 못하는 넝쿨의 손가락뼈들이

마디마디 다 보일 텐데
사방을 올라온 벽지의 棺은 
어쩌면 뚜껑을 덮지 못할 텐데
오늘 누가 혼자 도배를 했다


조용미∙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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