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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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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환상지증후군 외 1편
털모자 달린 검은 외투를 입은 한 노인이 찾아왔다
그를 보는 순간 내 얼굴에도 주름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는 없는 다리와 없는 팔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마음과 없는 사랑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눈과 없는 귀가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슬픔과 없는 증오가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아버지와 없는 아내가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눈물과 없는 바다가 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없는 이별과 없는 죽음이 아프다고도 하였다
살아있는 자들만이 그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을 다스리게 되매 그는 여기 머물지 않을 것이다
유리창
오늘밤에는 유성우가 내린다던가 숲속에 멀리 숨은 불빛 바라보면 서재의 투명한 두 겹 유리창 사이엔 오랜 동안의 生을 다하고 마악 티끌로 잠든 바람이 있다 허공은 흐려져 가는 구름을 이고 느릿느릿 제 욕망에 겨워 꿈틀거리지만 밤새들은 할 일 남은 듯이 저 낮은 곳에서 끊임없이 오락가락한다 사시사철 고정된 이 방의 유리창으로 누가 다녀가셨는지 나도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서 단단히 유리창 되어 내 속을 지나가는 영혼 하나 부여안는다 이제 곧 머나먼 우주에서 유성우의 소식이 도착할 것이다 비의 춤처럼 내 안의 궤도로 공전하는 행성의 돌조각을 우주 밖으로 내쳐버리고 싶다 나의 행동에 따라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존재들이여 사계절 공중누각에서 놀며 지낸들 무슨 대수랴 모든 몸을 善에게 보여주는 惡이 있다면 언젠가 惡은 善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니 투명한 거울의 시간이여 내 몸에 유리 파편처럼 부서지는 미지의 모세혈관을 해독해다오 그리움 같은 것도 점점이 흩뿌려다오 우주 먼지 날리는 운석 같이 늦은 겨울밤이여
김종태∙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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