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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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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35회 작성일 08-07-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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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닻을 놓는다 외 1편


울산 조선소 지나 방어진 가는 길 오늘 50미터 배 위에서 떨어졌다는 하청 노동자의 죽음이 찢어진 선거 벽보 속 환히 웃는 얼굴처럼 가벼웁구나 플래카드를 잔뜩 부풀리고 지나가는 바람이 내게 속삭인다 닻을 내려라,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내가 내게 중얼거린다 닻을 내려라, 우당탕 아픈 굉음을 질러대며 불꽃 다시 튕기며 닻을 놓아라, 뭔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것만 같은 내가 내게 속삭인다 쇠사슬을 풀어라,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묶여야 했던 수인의 밧줄을 풀고 지금은 진창 바닥에 도끼날을 꽂을 때 노도와 같은 질주를 멈추고 이제야말로 바닥의 심중에 닿아야 할 때 

닻을 놓는다, 바람과 햇빛에 말라붙은 흙과 벌건 녹 지난 시간의 잔해 산산이 토해 내며 갯벌 속으로 처박히는 칼날이여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참으로 요지부동하기 위하여 너는 얼마나 흙칠갑을 해야 하는가 그 고요한 정지를 위하여 닻이여 너는 또 얼마나 속 깊이 들어가야 하느냐 진흙뻘 깊이 처박혀 한 바닥에 골똘히 나를 부리고 기나긴 배밀이를 견딘 다음에야 우리가 스치고 지나가 버린 밑창을 들여다보게 되리라 우리가 건너온 아픈 바다의 심중을 들여다보게 되리라 





동행
-데드 슬로우․3

빙판길 경복궁역쯤에서 우연히 뒤따르던 일행 중 한 남자의 왼손이 목발을 짚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잠시 공중에서 펄럭거리는 바지 속, 끝내 착지하지 못하는 비어 있는 발목을 힐끔거리며 뒤따라 걷는데 문득 동행하는 젊은 여자가 딴 이야기를 하는 듯 능청을 떨며 그의 오른팔을 살짝 잡는 듯했다 지나가는 가게를 기웃거리는 듯 딴전을 피우며 잡은 듯 안 잡은 듯 슬쩍 남자의 손에 걸쳐진 그이의 팔목은 한 걸음 뗄 때마다 몹시 출렁거리는 남자 몸의 일부가 된 듯 편안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 또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척 딴청을 부리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어느 샌가 목화만한 눈송이들이 춤추듯 공중을 떠돌다 앞선 이들의 어깨 위에 죽을 만치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김해자∙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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