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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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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쓸쓸한 부록 외 1편
열매는 나무의 부록이다
금방 휴지통으로 날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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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끈질기게 감나무 끝에서 버티는
농경시대의 유물이 있다
감나무의 뾰족한 주둥이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벼랑 끝에서 허우적이는
오갈 데 없는 자의 손끝에서는
절규가 고압전류처럼 터진다
혹자는 절체절명의 야수가 으르렁거린다고 말한다
거품 물고 죽음과 대적하던
시퍼런 눈빛
지금 허공으로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물고 버르적거린다
유목의 발을 잘라내고 공장 구석에 둥지를 튼
몽골 사내
온몸이 까치밥이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여섯 달 만에 이방의 휴지통에 버려졌다
초원의 바람이 새똥처럼 떨어뜨리고 간
첨부파일 한 장
여러 날 뒤적여도
사라진 손목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구름마을 사자의 서
검은 얼굴을 열고 까마귀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까마귀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날렵한 시간의 혓바닥도 근접하지 못하는
살아 춤추는 미라가 늘어났다
아침부터 새가 머릿속을 날아다니며 콕콕 쪼아댄다
전생의 어미가 찾아온 거라고
티베트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머릿속에서 잔소리하는 어미가 날아가지 않는다
여러 겹의 생을 방패처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골목 끝으로 멀어진다
발가락을 만지며 설산을 본다
싱싱한 날것, 꿀꺽 목으로 넘긴다
먼지 자욱한 골목길
버터차를 마시며 목구멍을 들락거리던 곤고한 기억들을 지운다
아직도 먼지 알갱이로 뒹구는
수천 년 전 피톨들
잘 있었느냐
운동화 뒤끝을 졸졸 따라다니며 겹겹의 생을 중얼거린다
강물이 웅얼웅얼 흐른다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을 강가 보리수나무에게 전하며
한 겹의 생을 벗겨내는 것이다
뒤척이며 허물 벗는 강물
사원의 지붕 위에
인간의 몸을 벗은 구름 몇 점 한가로이 걸려 있다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른 생은
서늘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화장터 가까운 민가에
복주머니꽃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홍일표∙1988년 ≪심상≫으로 등단.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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