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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최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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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국수를 말다 외 1편
택배로 관棺 하나가 배달되었다. 삼 킬로그램의 진혼곡을 개봉한다. 잘 건조된 미라들, 사각의 종이수의 안에 빼곡히 몸을 눕히고 있다. 손에 집히는 시신 몇 구를 끓는 물에 던져 넣는다. 수장이다. 물에서 났으니 물로 돌아가라. 아득한 남해 바다 죽방렴의 기억이 은빛 지느러미를 꿈틀거린다. 쉴 새 없이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출렁거리는 삶의 파도소리를 실토한다. 한참을 뼛속 깊이 뜨거운 절망 속에서 펄펄 끓었을까. 한 방울의 비린 심연까지 다 쏟아내고 거품으로 끓어오르는 주검을 건져낸다. 얼마나 오래 영혼을 우려내며 국수발처럼 살아야 하나. 남의 생의 내력에 잔치국수를 만다. 멸치국물에 국수를 잘 말던 그를 우려낸 연못에 그 해는 유달리 큰 연꽃이 피었다.
카르페디엠
어제는 부도수표
지나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휴지쪽이다
내일은 약속어음
만기는 돌아오지만
불확실한 약속이다
오늘은 현찰
부자도 빈자도
같은 몫을 받았다
빌려 쓸 수도
저축할 수도 없다
어떻게 쓸 것인가
최정란∙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여우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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