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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신작시/이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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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률
내 인생의 2부, 속편이 아니면 좋겠다 외 1편
한 권의 책을 읽듯이 너는 나를 읽는다.
지난 줄거리 꿰차고 비스듬히 앉아
나도 가끔은 너처럼 나를 읽고 싶다.
내 앞에 놓인 길 거침없이 가고 싶다.
그런데도 난 몇 년째 197쪽 둘째 줄이다.
네가 보기엔 너무 빤한 내 삶
따지고 보면 삼류 소설이다.
기억에 없는 페이지 다시 들려줘야 할 만큼
난 벌써 지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번번이 머뭇거리고 재는 삶
이쯤에서 일단락 지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싶으면 휙 집어던져도 괜찮은
내 인생의 2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삶이 삐걱거리고 흔들릴 때
1년에 8만 원인 주말농장
거름 주고 씨앗 뿌리듯
이 세상에 임대 아닌 것 없다.
직장을 임대하고 이웃 임대해서
한평생 소출하고 품앗이하는
나이만큼 빌려 쓴 몸 그렇고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 되어 있을
잊혀진 사랑이 그렇다.
올려주는 임대료 없이
두 발 딛고 선 지구처럼
고맙고 미안한 삶
전에 없이 삐걱거리고 흔들릴 때
임대한 지 10년 된 아내 얼굴
찬찬히 들여다본다.
눈가 주름살 기미 사이로
주인 노릇 하는 나 없는지
프러포즈하던 날 떠올려본다.
이성률∙2004년 ≪리토피아≫ 신인상.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시집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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