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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신작단편/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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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사막 새우
김혜정
찬은 쾌속정의 이물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집을 나서면서 바닷가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배를 탈 생각까지는 없었다. 부두에서 망연히 바다를 보고 서 있는데 이작도행 쾌속정 출발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봐. 해적들이 숨어 살았대서 이적도였는데 지금은 이작도라고 불러. 점쟁이 노파의 말이 떠올랐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매표구로 향했다.
“아저씨, 조금만요. 저쪽으로…….”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가 연신 사진을 찍어대면서 찬에게 눈총을 보냈다. 찬은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비켜섰다. 아직도 모르겠어? 일주일 전 아내가 집을 나가면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자기 삶에서 비켜 달라는 듯이. 그때부터 줄곧 찬은 귀울음에 시달렸다. 통증을 수반한 이명은 응급실을 향해 달려가는 구급차의 싸이렌처럼 내내 불안하게 했다. 아내가 낯선 사내와 여관에서 나오는 사진을 보낸 사람은 사내의 아내였다. 사진 속의 아내 얼굴이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줄기차게 따라오던 갈매기들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무렵 배가 속력을 줄였다.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찬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을 맞을 때처럼 가슴이 설렜다. 그것도 잠깐, 괴물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후벼댔다.
어부와 중간상으로 보이는 사람들, 관광객까지 얼크러져서 생선박스가 즐비한 선착장은 장터처럼 술렁였다. 흥정을 막 끝내고 돌아서는 여자의 목에서 휘날리는, 미역줄거리 같은 스카프가 찬의 눈길을 붙들었다. 어쩌면 휘날리는 것은 스카프가 아닌, 그녀의 몸인지도 몰랐다. 여자의 모습이 멀어져 갈수록 여자가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초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서 있어? 네? 비아냥대는 노파의 목소리에 찬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노파는 물론, 여자 또한 간 곳 없고 멀어져가는 배와 파도뿐이었다.
어느새 늘어서 있던 트럭들이 저마다 손님들을 태우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노파의 말이 맞았다. 버스는 읎서. 트럭이 자가용이지. 클클. 노파는 말끝마다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안 그래도 퀭한 노파의 인상은 음충스럽기까지 했다.
트럭이 모두 떠나버린 선착장은 썰렁했다. 그물을 깁는 장년 남녀와 찬뿐이었다. 하오의 빛을 밟으며 나는 바닷새들이 그려내는 나선형의 원무가 그들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찬은 그 잔상을 쫓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제대 후부터 고시에 매달려온 세월이 십 년 남짓 되었다. 곧 비상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건만 고작 담벼락에 머리를 들이박고 있다는 걸 깨달은 새처럼 맥이 빠졌다. 아예 포기하면 삶이 조금은 덜 고단하겠지 했는데 복병처럼 드러난 아내의 외도에 망연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삼 년 가까이 근무해온 병원에서는 무더기 정리해고로 인한 노조와 병원 측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신변에 위협이 가해졌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찬은 걸음을 멈췄다. 게 한 마리가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갯벌을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망태기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딴에는 곧바로 인간의 먹잇감이 될 운명을 감지하고 탈출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맨땅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더욱이 한껏 성이 난 햇볕이 놈을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듯 놈이 촉수를 세우고 부지런히 옆으로 기어갔다. 찬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게가 기어가는 모습을 눈길로 좇았다.
바람이 한 차례 거친 포말을 일으켰다. 찬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갯내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갯내를 좋아했다. 저항할 수 없는 기운이면서 동경의 시원 같은 것이라고 할까. 큰 배를 타고 대양을 항해하는 선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열세 살에 고향을 떠나온 뒤로는 바다마저 멀리 했다.
마흔 살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건장한 뱃사람이었다. 태풍이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승선을 말렸다. 물때를 놓칠 수 없다며 기어이 배를 탄 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만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스쿠르에 그물이 걸렸는데 느 아버지가 끊으러 물 속으로 들어갔어. 말렸어야지요? 어쩔 수가 없었다니까. 느 아버지 성질 알잖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디 잘못 하다가는 배도 배지만 몰살당할 뻔했다니까 그러네. 고기를 건질라고 아버질 못 건진 거 아니구요? 쬐끄만 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리 비켜. 선주의 입 꼬리에 교활한 웃음이 매달렸다. 찬은 그에게 살의를 느꼈다. 그것을 눈치 챈 어머니는 서둘러 찬의 손을 잡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일랑 돌아보지도 말아라. 찬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삶의 곡진 굽이를 돌 때마다 어김없이 고향이 떠올랐다. 고향이 아닌, 바다가 떠오른 것인지도 몰랐다.
찬은 상념을 털어내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툭, 소리와 동시에 휴대폰이 나뒹굴었다. 액정에 간 금이 찬의 가슴에 파장을 남겼다. 이건 아닌데, 하며 황급히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먹통이 된 휴대폰은 신호음조차 나지 않았다. 찬은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무했다. 어차피 아내와의 관계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거였다. 병원 파업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찬은 바닷물 속으로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가슴이 쏴 해지면서 쾌감이 폐부를 찔렀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찬은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몰라서 물어? 아내는 결혼 후 줄곧 찬을 뒷바라지했다. 찬이 공무원시험까지 떨어지고 나자 아내는 장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했다. 찬은 동의해 놓고도 좀처럼 고시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융자한 돈을 들고 점포를 물색하던 중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는 뉴스에 솔깃해서 그 돈을 모조리 주식에 털어 넣었다. 단기차액을 얻는다면 일 년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전지식도 없이 뛰어든 주식이 깡통계좌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 사무장으로 있는 대학 선배에게 사정하다시피 해서 원무과에 취직을 했다. 자네. 몸 사려야 할 거야. 선배의 충고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조를 결성하려는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에 대한 무더기 해고 조치가 있었다. 찬은 황당했지만 가까스로 입사한 신입사원 처지인 데다 나설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노조의 대대적인 파업 조짐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 이유도 없이 영양사를 대거 해고하고 용역업체에 넘겼을 때 이미 불씨는 당겨진 거였다. 찬은 병원 측의 부당한 처사에 마땅히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 챈 선배가 은밀히 불렀다. 어설프게 가담했다가는 자네도 끝장이야. 나만 믿고 명단이나 빼주게. 신축 건물에 사무장 필요한 거 자네도 알고 있지? 선배도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자네, 세상물정 모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 같군 그래. 선배의 말보다 더욱 치욕스러웠던 것은 자신을 벌레 보듯 하는 선배의 눈빛이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하고 살다간 평생 지지리 궁상을 못 면할 게 뻔해. 그 전부터도 신통치 않았던 물건은 아예 발기조차 되지 않았다. 비뇨기과에라도 좀 가 보든가. 아내의 말이 또 중압감으로 다가왔을까. 아내를 안으려고 안간힘쓰면 쓸수록 몸은 더 시르죽었다. 난 석녀가 아니라구. 수시로 아내의 목소리가 귓전에 쟁그랑거리면서 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선착장에는 여전히 그물을 깁고 있는 남녀뿐이었다. 꼼짝도 않고 그물만 깁고 있는 남녀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함께 지내온 시간만큼 쌓였을 신뢰의 부피가 저렇듯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어냈을 거였다. 찬은 가슴에 묘한 파문이 이는 것을 느꼈다.
“혹시 이 섬에 회충굴이라고 있습니까?”
사내가 찬을 힐끗 쳐다보았다.
“있긴 있는데 여기가 아니라 저기 작은 섬에 있수.”
해적들이 살았던 굴이 있다는 노파의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굴이 있다니까 기분이 야릇했다. 큰 섬 작은 섬이 형제처럼 나란히 있다는 것도 새삼 기억이 났다.
“저길 가려면 어떻게……?”
“수시로 배가 다니는데, 시간 정해놓고 다니는 건 아뉴. 급하면 민박집에 가서 부탁해 보슈.”
찬은 난감했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하룻밤 묵어가면 될 거였다.
“그럼 부아산은 어딥니까?”
“저기 보이는 큰 마을을 지나 고개 넘어 왼쪽으로 올라가슈.”
찬은 사내가 일러준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등산로 입구가 보였다.
아기를 업고 있는 모양의 산세가 푸근할 뿐 아니라 여기저기 야생화들을 넉넉하게 품고 있었다. 찬은 상긋한 냄새에 취해 천천히 산에 올랐다. 왜? 산삼이라도 한 뿌리 캐 볼려구? 어림도 없지. 노파가 찬의 옆구리를 툭 쳤다. 예? 노파가 사라진 자리에 붉은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정상에 닿아 있는 다리를 건너면 왠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흔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현기증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멀리 작은 섬들, 섬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이 눈 시리게 푸르렀다. 썰물 때만 나타나는 모래섬이 있어. 풀치라고. 풀치요? 그래, 갈치 새끼 몰라? 부아산에 올라가서 보면 풀치 떼가 몸을 휘어서 바다를 헤엄쳐가는 것 같거든. 음력 보름하고 사리 때 제일 크게 나타나는데 그것도 딱 세 시간뿐이야. 물이 밀려오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구. 시한부 섬이지. 모래가 얼마나 보드라운지 솜이불 같어. 거기 한 시간만 누워 있으면 시들시들한 영감들 거시기도 벌떡 일어선다는구먼.
삼 년 전, 책을 보아도 글자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찬은 집 근처 자유공원에 오르곤 했다. 공원으로 오르는 언덕배기에 후줄근한 점쟁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입성이 추레하고 눈빛도 흐릿해서 운명을 점치기는커녕 말을 섞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 날은 그들 중 유난히 피부가 까맣고 눈이 대꾼한 노파가 찬을 불러 세웠다. 사주에 불이 많아 고승이 될 팔잔데……. 올해는 파가 들어 되는 일이 읎서. 안 그래도 의기소침해 있던 찬은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후년에나 귀인이 나타난다느니 어쩌고 하는 노파의 말을 건성으로 듣다가 꽁무니를 뺐다. 그 후로 가끔 먼발치에서 그 노파를 보았지만 못 본 척하고 지나쳤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노파를 본 것은 한 달쯤 지난 후 주점에서였다.
고시공부를 접고 7급 공무원시험을 보았건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아내 앞에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술기운이라도 빌어야지 했는데 술이 술을 먹었다. 소주 두 병을 거의 다 비우고 한 병을 더 시켜놓은 참이었다. 그때 노파가 들어섰다. 늙고 쪼그라든 몸피에 퀭하니 패인 눈자위가 혐오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노파가 다가와 껌을 내밀었을 때 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노파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양 가지 않고 뭉그적거렸지만 찬은 외면했다. 노파가 절룩거리며 주점을 나간 후에야 찬은 그 노파가 공원에서 점을 치던 노파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정이 지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찬은 마시다 남은 소주를 들고 주점을 나왔다. 취기가 머리끝까지 올라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자유공원까지 올라갔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 으슥한 데를 찾아 소변을 보는데 뒤쪽 벤치에서 인기척이 났다. 민망해서 황급히 달아나려는 순간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어찌 그리 되는 일이 읎냐. 그렇게 시작된 노파의 사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참 듣다 보니 점괘라기보다는 궤변에 가까웠다. 해적의 후손이야. 네? 아, 해적도 몰라? 찬은 하필이면 해적인가 싶으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회충굴이라고, 그 굴을 찾아가. 찾아가서요? 가 보면 알아. 무조건 가 봐. 자기가 누군 줄은 알고 살아야 할 거 아닌가?
찬은 다리가 후들거려 나무둥치에 기대어 앉았다. 풀치에 누우면 푸근할 것 같았다. 저기 한번 가 볼 텨? 노파가 예의 그 웃음을 흘리며 찬에게 물었다. 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가 이끄는 대로 바다를 훌쩍 건너 모래섬에 당도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우뚝 솟은 모래섬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새 노파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찬은 사구의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멀리서 달려오는 파도는 곧 사구를 삼켜버릴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모래먼지가 얼굴로 달라 들었다. 미세한 시간의 퇴적층, 조류를 따라 움직이던 모래가 바다 밑에 이렇듯 거대한 사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구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물체가 보였다. 찬은 그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발을 성큼 내딛었다. 아차, 하는 순간 발이 밑으로 쑥 빠졌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사구는 무섭게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다.
‘빨리 돌아와요. 어서요. 곧 물이 찰 거라니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찬은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입 안 가득 모래가 들어차고 눈까지 따끔거렸다. 찰박찰박 몸을 때리는 물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서서히 몸이 가라앉으면서 몸속으로 물이 들어찼다. 물풀이 몸에 달라붙는 감촉을 느끼며 찬은 눈을 감았다.
여기서 잠이 들면 어떻게? 노파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찬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모래섬은 흔적도 없고 수평선 아득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바람이 센 탓인지 파도소리도 컸다. 아, 회충굴은 안 갈 건가?
찬은 터덜터덜 산을 내려왔다. 꿈이었다지만, 물 속으로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여전히 물 속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래언덕을 거닐다 하염없이 바다 속으로 잠기는 것이 죽음이라면 생사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 찬은 아무리 강한 햇볕에 몸을 말린다 해도 내내 몸이 젖어 있을 것만 같았다. 발걸음이 무거운 탓인지 부옇게 먼지가 오른 구두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이작도 횟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횟집 앞에서 찬은 잠시 망설였다. 몹시 허기졌지만 식욕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여자가 심드렁하게 찬을 맞았다. 한쪽에서는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이 요즘 정세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찬은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보는 아저씬데, 어디서 오셨어요?”
여자가 컵을 내려놓으며 찬을 훑어 내렸다.
“예. 인천에서 왔습니다.”
“낚시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무슨 조사 나오신 거예요?”
“아, 아뇨.”
“요즘 풀치 모래 퍼 가는 사람들 때문에 조사 나오는 사람이 많아서요.”
뭍사람들은 다른 데 많은 모래를 놔두고 하필 풀치 모래를 퍼 가느냐고, 그 때문에 풀치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며 여자는 연신 툴툴거렸다.
“그럼 왜 오셨어요?”
“그냥 이 섬이 좋다고 하기에.”
“하기야 한 번씩 왔다 가는 사람한테는 좋을 수도 있겠네요.”
나른한 표정을 짓던 여자는 재바르게 술과 밑반찬을 내왔다. 찬은 우선 소주부터 마셨다.
“보기보다 성질이 급하시네요.”
찬은 여자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잔을 거푸 비웠다. 빈속이어서 그런지 취기가 빨리 올랐다.
“아저씨, 혹시 실연당했어요?”
“예?”
“안 그러면 뭐 하러 이런 섬엘 다 오신대요? 그것도 남자 혼자.”
“…….”
“어머, 이 아저씨 진짜 그런가 보다.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찬은 여자에게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속이 불편했다.
“아따, 쟤는 남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실없는 수작 걸지 말고 여기 술이나 한 병 더 갖고 와. 어여.”
여자가 호르르 자리를 떴다. 낯선 사람의 눈에도 자신이 초라하게 비치는가 싶으니 찬은 모래 씹은 기분이었다. 여자가 보이지 않는 새를 틈타 탁자 위에 돈을 얹어놓고 도망치듯 횟집을 나왔다.
찬은 다시 선착장으로 나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담배를 꺼내 무는데 배 위에서 닻을 올리던 사내가 손짓을 했다.
“회충굴 간다고 하지 않았수?”
그물을 깁던 사내였다.
“예.”
“그럼, 빨리 타요. 내 볼 일이 있어 작은 섬 가는 길이니까.”
얼떨결에 배를 탔지만 찬은 곧 후회가 되었다. 몸이 축축 늘어지고 만사가 귀찮았다.
“근데 회충굴엔 왜 갈라고 하슈? 가 봐야 볼 것도 하나 없는 델.”
“그냥요.”
“젊은 양반이 싱겁게시리 이유도 없이 그런 델 갈라고 하슈?”
“해적들이 살았던 굴이라기에…….”
“허허 참, 그런 말을 믿수?”
“아닌가요?”
“아뉴. 그런 소리가 있기는 합디다만, 난 당최……. 괜한 걸음 하지 말고 낚시나 하슈. 낚싯대 필요하면 내 빌려주리다."
섬 가까이에 이르자 여기저기에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원래부터 섬과 함께 그림 속의 한 풍경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찬은 자기만 그 그림에서 불거져 나온 이물 같았다.
“요즘 농어가 한창이라 재수가 좋으면 사람 팔뚝만 한 것도 잡을 수 있수.”
무뚝뚝하게 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사내는 자상한 구석이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찬에게 회충굴에 가는 것보다 낚시가 낫지 않겠느냐고 다시금 타이르듯 말했다.
“거, 굴에 가도 너무 늦기 전에 나오슈. 몇 해 전에 한 사람이 거길 들어갔다가 살아나오지 못했수…….”
노을이 사위자 빠르게 어두워졌다. 찬은 거무스름한 길의 윤곽을 따라 걸었다. 어둠은 찬이 남기는 발자국을 곧바로 메웠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찬은 마치 이 섬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안선을 따라 아름드리 소나무와 모래사장, 물비늘이 반짝이는 검푸른 해수면, 모든 것이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섬을 감싸 안았다. 수평선 아득히 기이한 열기를 동반한 해무가 피어올랐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열기가 가슴 가득 들어찼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외줄기 길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별안간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낯설었다.
찬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해안선을 따라 자갈밭이 펼쳐졌다. 자갈밭 끄트머리쯤에서 불빛이 보였다. 동굴 가까이 왔지 싶으니 사뭇 가슴이 설렜다. 멀리서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가 음산한 분위기를 돋우었다. 찬은 심호흡을 하며 그 불빛을 따라 걸어갔다.
동굴의 입구는 생각보다 더 습하고 음침했다. 느낌만으로도 동굴의 내부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알 것 같았다. 찬은 손으로 벽의 표면을 더듬었다. 감촉이 섬뜩했다. 어디서 새어 나오는 것인지 가느다란 불빛이 보였다. 불빛 아래 기괴한 형상이 드러나고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쉴 새 없이 박쥐울음소리 같은 것이 났다. 찬은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곧 갈라질 것처럼 불안하게 움직이는 바닥, 천장에서 작은 물체들이 투둑 떨어졌다. 갑자기 불빛이 사라지면서 동굴 안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다. 찬은 무언가에 완전히 포위당한 느낌이었다. 방향을 틀어 몸을 돌리는 순간 앞쪽에 흐릿하게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 길을 타고 까맣고 작은 형체들이 우글거렸다. 그것들이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아 찬은 소름이 끼쳤다. 진저리를 치며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멩이며 나무판자, 쇠 조각이 발에 챘다. 앞으로 나아가면 출구로 통하는 길이 있을까 했는데 통로는 더욱 좁아졌다. 몸을 비틀어 간신히 통로를 빠져나오자 웅덩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웅덩이 건너편에 사다리가 보였다. 다행히 웅덩이는 깊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앞이 훤하게 뚫려 있었다. 바람까지 들어왔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다시 바위벽이 버티어 서 있었다. 벽을 더듬어 오른쪽으로 가자 이번에는 갈림길이었다. 덩치가 커다란 날짐승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몇 해 전에 거기에 들어갔다가 송장이 되어 나온 사람이 있수. 귀신이 있다는 말이 있으니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마슈. 찬은 사내의 충고가 떠올랐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찬은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허방이었다.
짙은 감색으로 기울어가는 빛을 받아 망루가 검은 그림자를 드러냈다.
“당장 저 놈을 잡아라.”
망루 뒤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은 누구요? 대체 누군데?”
갑옷 차림의 사내 몇이 찬의 앞을 가로막더니 곧 찬을 포박했다.
“왜 이러는 거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갑옷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난 그저…….”
“안 그래도 살기 어려워 난리인 판에 노략질을 하다니…….”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해적들을 모조리 소탕할 기회라며 호기에 넘친 목소리로 연신 무어라 지껄였다.
“난 아니요.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소.”
놈들이 찬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찬은 느낌이 이상해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단도와 도끼를 찬 채 낡은 가죽옷을 입은 모양새가 영락없이 해적이었다. 얼떨떨해 있는 찬을 비웃으며 놈들이 한바탕 웃어재꼈다.
“웬 소란이오?”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여자가 장검을 찬 채 모습을 드러냈다. 호령소리가 위엄이 있는데다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용모였다.
“그 악명 높은 여선장인가 보군.”
“그 만큼 착취했으면 됐지 또 뭘 갈취해 가려는 게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배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 빼앗기고 두 척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것까지 내놓으라니 인두겁만 썼지 짐승만도 못하군.”
“왕의 명령이다.”
“그건 섬사람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오. 죽어도 내놓을 수 없다고 왕한테 전하시오.”
“이놈을 살리고 싶으면 당장 배를 내놓으시지.”
갑옷이 찬의 목에 칼을 들이대자 여자가 막아섰다.
“내 남편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당신들이야말로 물고기밥이 되는 줄 아시오.”
찬은 화들짝 놀라 여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누가 여자의 남편이라는 것일까. 동굴 안에 남자라고는 자신과 갑옷들뿐이었다. 여자와 갑옷들이 한바탕 칼싸움을 벌였다. 찬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휘두르는 청동 칼의 반사광에 눈이 부셨다.
여자가 중심을 잃고 비틀, 하는 사이 갑옷의 칼이 여자의 턱 밑에 닿았다. 찬은 단도를 빼들고 갑옷을 향해 달려갔다.
“안 돼, 안 돼.”
자신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의식하며 찬은 벌떡 일어섰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데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투성이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으로 들어가고 콧잔등에서도 땀이 떨어졌다. 대체 여긴 어디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찔할 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찬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담장에 빙 둘러 피어 있는 해당화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불빛이 보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찬은 필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렸다.
“계십니까?”
안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가까이서 파도소리만 들려왔다. 찬은 다급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저, 안에 누구 안 계세요?”
역시 아무 기척이 없었다. 아무래도 쉬어갈 만한 곳은 아닌가 보다 싶으면서도 찬은 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담장을 돌며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쉽게 열렸다. 찬은 마당 안쪽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안채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 찬은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예, 저…….”
“영업 끝났는데요.”
약간 쉰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찬은 혹시나 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었다. 허탈감에 싸여 돌아서 나오려는 순간, 여자가 나왔다.
“무슨 일로?”
“예. 저, 하룻밤 묵어갈 수 없을까요?”
“민박은 안 치는데요.”
“그럼 근처에 민박은?”
“여기서 한참 나가야 돼요.”
여자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듯한, 어둠의 잔해마저도 빨아들일 듯한 눈빛이었다. 찬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름한 얼굴에 짧게 커트한 머리, 오뚝한 코, 쌍꺼풀 없이 가늘고 긴 눈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눈 바로 밑으로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왔다. 그녀 역시 입을 꼭 다문 채 찬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잠시 놀란 빛이 스쳤다. 아니, 찬은 여자가 낯익었다.
“시장하시면 식사나 하고 가세요.”
돌아서는 찬을 여자가 불러 세웠다.
“예?”
“식사 안 하셨으면…….”
“괜찮습니다.”
“이 근처엔 식당도 없어요. 민박집에 가도 시간이 늦어서…….”
주근깨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 보았을 때의 강퍅한 인상과는 달리 여자의 얼굴은 귀염성이 있었다.
매운탕과 곁들여 여자가 내온 밑반찬들은 모두 정갈했다. 여자의 손끝이 얼마나 야무진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찬은 음식보다는 술 생각이 간절했다.
“저, 술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내왔다. 청동으로 만든 술병은 근육질의 남자 몸을 본뜬 형상이었다. 여자가 찬에게 술을 따라주고는 자기 잔을 찬 앞으로 내밀었다.
“혼자 마시면 술맛이 없잖아요.”
살짝 열린 문으로 서늘하고 촉촉한 바람이 들어왔다. 찬은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함석지붕을 흔들어대는 소리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우연히 여자의 가슴께에 눈길이 갔는데 유두가 비쳤다. 찬은 눈길을 어디다 둘지 몰라 허둥댔다.
“식기 전에 드세요.”
여자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을 가리키며 말했다. 찬은 술잔부터 들었다. 여자가 건배를 청했다.
은은한 호박색이 예사롭지 않다 했는데 술맛은 더욱 그만이었다. 시고 떫은맛이 어우러진 데다 뒤끝이 쌉싸래한 것이 무슨 약초 맛 같았다.
“이거, 귀한 술 같은데요.”
“해당화로 담근 술이에요.”
“예에.”
“해적들이 즐겨 마시던 술인데…….”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강정제로 좋다고 했다. 특히 귓병에 좋다며 여자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하필이면 강정제에 귓병까지 다스리는 술이라니, 찬은 석연치 않았지만 곧 혀끝에 달라붙는 술 맛에 취하고 말았다. 반주로 한두 잔 하려고 했던 것인데 정작 밥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술 맛도 술 맛이려니와 동굴 속에서의 일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해적으로 몰아세웠던 관군들의 험악한 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해적 여선장이 나타나 자신을 남편이라며 비호했던 장면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되었다. 더 이상한 것은 지금 마주앉아 있는 여자가 꿈속에서 본 해적 선장 같다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찬이 술잔을 비울 때마다 여자도 술잔을 비웠다. 여자 역시 한동안 무엇엔가 깊이 침잠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찬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사람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닌 여자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찬은 여자가 마치 몸에 감기는 바람처럼, 비껴갈 수 없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찬은 그녀로부터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삶의 어떤 심연 속에 내재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모험심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나락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발을 내딛게 될 때의 기분이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여자가 말문을 열었다.
“새우 떼가 오고 있어요.”
여자의 눈빛은 무엇엔가 홀린 듯했다.
“예?”
“저 소리, 안 들려요?”
여자의 무심한 표정에 귀기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찬은 몸이 오싹 하면서도 묘한 흥분을 느꼈다.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 바다 속에 사막이 있거든요.”
“풀치 말인가요?”
“네. 풀등이라고도 부르죠. 거기에 새우가 묻혀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요.”
여자가 미닫이문을 활짝 열었다. 섬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듯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모래바람이에요. 한번 불기 시작하면 며칠 동안 계속 돼요. 이 해안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죠.”
“무덤이요?”
“네. 새우 무덤이요.”
찬은 여자에게 이끌리다시피 해서 바닷가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도 해안에 점점이 흩어진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아산 정상에서 꾼 꿈에 본 것과 흡사했다. 설마 했는데, 새우였다. 그것도 모두 죽은 것들이었다.
“사막에도 몇 십 년 만에 한 번은 아주 큰비가 내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사막도 호수처럼 변하는데 불과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예요. 알 상태로 몇 십 년을 기다린 새우들이 그 짧은 동안 부화해서, 짝 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데…….”
다시 햇빛이 내려쬐면 이미 알에서 깨어난 새우들은 하얗게 말라죽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라죽은 새우들이 모래바람을 타고 쓸려오는 거라고.
여자가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과 동시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물이 발등에서 철벅거리는 감촉을 느끼며 찬은 여자를 따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물이 여자의 종아리까지 밀려와 있었다. 여자가 두 팔을 벌린 채 계속 걸어갔다. 여자의 몸이 해초처럼 흔들렸다.
“그만 나와요.”
찬이 소리쳐 부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는 앞으로 걸어갔다. 찬은 여자를 향해 달렸다. 별안간 여자가 깔깔대고 웃었다. 그 웃음에 찬은 가슴을 베인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여자보다 더 크게, 미친 듯이 웃어대며 여자를 뒤따랐다. 드센 물살이 얼굴을 덮쳤다. 어느새 찬은 방향을 비껴 여자를 앞지르고 있었다.
“위험해요. 그만 돌아와요.”
귓가에 웅웅대는 여자의 목소리, 찬은 이미 여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점점 거세지는 파도가 여자의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대신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과 난 함께 살면서도 각자의 고치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거야. 이제 그 잠에서 깨어난 거라구.
멀리, 바다 속 사막에서 잠을 깬 새우 한 마리가 파도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찬은 앞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걷고 있다기보다 발이 절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수록 세상과 괴리되는 느낌, 알 수 없는 희열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허벅지에 닿았던 물이 허리께까지 차오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찬은 더 크게 웃으며 뛰다시피 했다. 몸이 둥둥 뜨면서 물살의 저항을 받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찬은 앞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있는 힘을 다해 자맥질했다. 어느 순간,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바다 속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사방은 먹물을 흩뿌려놓은 것 같은 어둠이다. 거대한 뻘밭이 불규칙하게 흔들거린다. 반나절 이상을 걸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등대는커녕 불빛 하나 보지 못했다. 어쩌면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숨은 이미 턱에 차 있다. 물이 밀려오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뻘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쉼 없이 꿈틀거리는 뻘의 기복, 찬은 숨을 고르며 앞을 향해 다리를 길게 뻗는다. 다리를 뭉텅 베어 빨아들일 듯한 흡입력, 서서히 몸이 뻘 속으로 묻힌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또렷한 영상이다.
세찬 빗소리에 찬이 눈을 떴을 때 곁에 여자가 그림처럼 엎드려 있었다. 그것도 알몸인 채. 풍만한 유방과 비대한 상체에 비해 여자의 다리는 몹시 가늘었다. 찬은 절로 여자의 다리에 손이 가고 입술이 갔다. 여자의 몸이 해초처럼 흐느적거리고 피부는 미끈거렸다. 찬은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마득할 뿐이었다. 아니, 너무 뚜렷해서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여자와 위험한 장난을 했던가. 거대한 파괴력을 동반한 외로움에 휩싸였고 그 외로움이 광란의 섹스로 이어졌다. 뻘밭 같은 흡반, 찬은 속수무책으로 여자에게 빨려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빗소리로 인해 방안 전체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찬은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났다. 입술을 물며 몸을 일으켰다.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기는 몇 년 만에 처음이에요.”
현실로부터 도망치듯 한 시간, 찬은 이 섬에서의 삶만이 명징한 것이고 그 이전의 시간들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섬 밖의 것들을 깡그리 잊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돈과 명예, 사랑과 욕망, 싸움과 화해의 진저리나는 일상의 반복……. 비록 생존을 위해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라고 해도 찬은 거부하고 싶었다.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자신을 더욱 비루하게 만들었다.
“가실 건가요?”
찬은 다가온 위험을 감지한, 교활하고 병든 짐승처럼 몸을 웅크렸다.
“…….”
“난 알아요. 조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신 숨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아요.”
“…….”
“맨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그 바다가 날 감싸는 것을 느꼈을 때 바다를 증오했어요. 그런데…….”
여자는 찬을 처음 본 순간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같았다며 흐느꼈다. 찬은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아랫도리에서 욕망의 불씨가 터지고, 몸 전체가 불기둥이 되어 뻗쳐올랐다. 불길은 삽시간에 여자에게로 옮아붙었다. 찬은 여자와 함께 깊은 어둠이나 해저 속으로 침몰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아울러 어쩌면 이 짧은 시간을 위해 그렇게 긴 세월을 에돌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섬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나가면 영원히 이 섬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여자의 몸에서 바람 우는 소리가 났다.
“엄만 무당의 딸이라는 게 싫어 뭍으로 나갔대요. 태어난 지 한 달 된 핏덩이를 안고 섬으로 들어와 할머니에게 맡기고 다시 떠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요. 할머닌 돌아가시기 전에 엄말 찾아야 한다고 뭍으로 나가셨는데 그만…….”
찬은 자신이 여자와 술을 마시는 순간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 예감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할머닌 정말 용감한 분이었어요.”
“…….”
“해적의 후손이거든요.”
“네?”
“제 말, 믿어지지 않으시죠?”
“아, 아닙니다.”
여자는 담담하게, 그러나 찬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섬, 원래는 무인도였는데…….”
여자의 이야기는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왜구에게 쫓겨 숨어들어온 난민들이 이 섬에 정착하여 새 터전을 일구었다고 했다. 섬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도 풍부해서 섬은 평화로웠다. 그것도 잠깐, 수시로 관군이 들이닥쳐 식량을 약탈하고 배를 몰수해 가는 바람에 나날이 황폐해졌다. 관군들과 맞서 싸운 섬 주민들은 스스로를 해적이라 부르면서 섬을 지켰다는 거였다.
“그럼, 섬 주민 모두가 해적의 후손이란 말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관군한테 시달리다 못해 굴복한 사람이 더 많았대요. 결국 의협심이 강한 사람들만 해적이 된 셈이죠 .”
여자는 해적이 영예로운 이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랑 같이 싸우실 거죠? 지난번에 해고된 동료들도 모두 동참하기로 했어요. 하루 열다섯 시간 혹사시키면서 새 병원 지을 때까지만 고생하자더니 하루아침에 무더기 해고가 말이 되냐구요. 절규 섞인 영양사의 눈물을 떠올리며 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곧 대규모 집회가 있을 예정이에요. 지부장님은 삭발까지…….
“해적의 피를 받은 사람은 피가 뜨겁대요. 그래서 삶이 곤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운명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여자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점쟁이 노파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
“할머닌 늘 제가 해적의 후손을 만나야 된다고 하셨어요. 관군의 횡포로 섬이 초토와 되었을 때 남자들이 다 죽고 말았어요.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인데…….”
결국 그의 위용으로 인해 오늘의 이작도가 있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였다.
“제가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그 사람이 구해주었대요.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그와 저는 부부의 연이…….”
찬은 머릿속이 실타래가 엉킨 듯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만나겠죠.”
찬은 쫓기듯 말을 갈음하면서도 여전히 미궁을 헤매는 것 같았다.
비가 그치고 서서히 해가 떠올랐다. 햇빛을 받은 해수면이 반짝였다. 새들은 긴 대열을 지어 날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새들이 남긴 자국마다 바다로부터 기다란 빛기둥이 솟구쳤다. 그것이 곧 불꽃이라도 낼 듯 맹렬한 기세로 뻗쳐올랐다. 그 파장으로 섬 전체가 온통 빛의 결정체가 되어 출렁였다.
여자는 열린 창문 앞에서 침묵을 지키며 마치 미라가 된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등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두 팔을 포갠 채 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앉아 있을 것 같은 자세였다. 여자가 빛이 드는 곳으로 약간 몸을 돌렸다. 햇빛이 여자의 몸 위로 잘게 부서져 내렸다. 찬은 여자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언가 자꾸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쩍 벌린,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 같기도 하고 해골의 움푹 파인 눈 같기도 한 동굴의 입구뿐 해당화가 둘러진 담장도, 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죽은 새우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말라죽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렸으니까요. 여자의 목소리가 모래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찬은 선착장을 향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김혜정
1962년 전남 여수 출생, 1996년 <문화일보>로 등단.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받음. 제15회 서라벌문학상(신인상) 수상. 장편소설 달의 문門,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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