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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신작시/박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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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우
동물 해방운동
― 2047년 동물 해방운동 선언문에서 발췌
사십년 전까지는 색인표라는 것이 있어서
가나다 순서로 만든 축사에서
동물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색인표는 없어지고 검색창만 남아
동물들은 실시간으로 검색창에 불려나와
오늘 먹은 음식은 무엇이며
몇 킬로그램을 먹었으며
음식의 구입처와 가격을 말해야 하고
심지어 대소변의 횟수까지 세상에 알려야
온전한 목숨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동물로서의 기본적인 삶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런 사태는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하며
신속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
가장 비동물적인 행위인 검색창을
시급히 폐쇄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동물 해방의 그날까지
동물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모든 비동물적인 것들과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리얼리스트의 부활
손가락을 물고 있는 입술과
입술에 물려 있는 손가락은
입술과 손가락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되지 않는 입술과 손가락에는
서로의 영토가 없다
손가락은 입술의 바깥쪽이고
입술은 손가락의 안쪽이다
구분되지 않는 입술과 손가락의 영토는
동시에 나타난 후
동시에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그녀의 입술과 나의 손가락은
황홀한 부활을 기다린다
박강우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병든 앵무새를 먹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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