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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연재| 김영식의 하이쿠 에세이⑥/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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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영식의 하이쿠 에세이⑥
짧은 시, 긴 울림
1.
말 못한 사랑
하얀 산에 또 눈이
내려 쌓이고
告げざる愛雪嶺はまた雪かさね (上田五千石)
tsugezaru-ai setureiwa-mata yuki-kasane
사랑을 이루었어도 산에는 눈이 내리고 이루지 못하였어도 산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산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존재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과 입장이 달라 산이 달리 보일 뿐이다. 이룬 사랑은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여도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눈 내리는 산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자연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사랑을 잊은 사람은 눈 내리는 산이나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본 적이 오래되었을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였다 해도 과거의 사랑을 그리워할 뿐이라 해도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사랑을 이룬 순간은 짧고 사랑을 갈구하는 순간이 더 길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완성된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의 상태가 아닐까. 그리하여 시詩라는 형태로 승화되는 발기력發氣力은 짝사랑이 더 강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랑은 자연의 요구이다. 자연의 생명은 사랑에 의한 잉태로 영원히 이어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순간에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워질 뿐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다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으니, 사랑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은 바로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의 마음은 세상의 추함을 흰 눈으로 아름답게 덮어버리고 다시 또 그 위로 눈을 거듭 내리게 한다.
2.
황량한 들판을
걷는 내 마음에
푸르른 호수
枯野ゆくわがこころには蒼き沼(木下夕爾)
kareno-yuku waga-kokoroniwa aoki-numa
‘겨울바람의 끝은 있다네 바다의 소리’에서, 나는 비무장지대의 황량한 들판이 내게 준 아름다움(荒凉美)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이 하이쿠에서의 마른 들판은 황량미(荒凉美)와는 거리가 있는 그저 삭막하기만 한 들판이다. 바라보는 풍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들판 그 속으로 들어가 보고 느끼는 상태로, 그야말로 모든 식물은 말라버리고 동물은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황량한 들판이다.
현대인에게 황량한 들판은 바로 내가 생활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땅은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풀 한 포기 돋아날 틈이 없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길은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흙길이었는데, 어느 날 동장을 비롯한 어른들이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온 동네의 흙길을 시멘트로 싹 다 포장하였다. 행정구역상 서울로 편입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골 풍경이 많이 남아있던 변두리 동네 중화동이 비로소 서울답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 앞에 서 있던 수령 백여 년의 큰 느티나무에는, 몸 둘레로 둥그렇게 시멘트로 쉼터도 만들어져서, 새마을운동이란 게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사람뿐 아니라 지나는 행상들도 그곳에 앉아 땀을 식히고 갔고, 평소 거의 밖에 나오지 않는 새침한 부잣집 여학생도 무더운 여름 저녁에는 그곳에 나와 앉아 있어 주니 나는 좋았고, 친구들과 그곳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의 새마을운동, 발전이라는 것은 그저 좋기만 하였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오랜만에 찾아간 그 동네에 느티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무가 시들어가더니 결국 죽어버렸다고 한다. 지금 내 생각에는 나무 몸 둘레 조금만 남겨놓고 온통 시멘트로 덮어버렸으니 주위로 빗물이 새어들 구멍이 어디 있었겠는가. 숨구멍을 막아버리고 살아가라고 한 셈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삶이 고되어도 숨 쉴 구멍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 당시 발전한 새마을은 사실 지금같이 삭막한 도시로 가는 도중에 얻어진 순간의 안락함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문명의 이기는 지금 사람에게 달콤한 안락함을 선사하면서 계속 나타난다. 그것을 맛보고 다시 새로운 쾌락을 찾고 있지만, 어느 날 되돌아보면 느티나무가 잘려버리듯이 우리 마음속의 자연은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외형적인 도시의 모습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도시라는 욕망의 도가니는 끓어오르고, 사람은 끓는 거품처럼 튀어 오른다. 차로 출근하면서부터 경쟁은 시작되고 집에 돌아와도 대낮의 갈등이 남긴 앙금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해야 하고, 아이는 더 좋은 대학으로 보내야 하고, 도시에서의 노후생활을 생각하면 적어도 십억 이상은 벌어야 한다고 말들 한다.
도시라는 황량한 들판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줄 수 있는 호수가 간절하다. 외형적으로는 교외로 나가 사는 것도, 전원주택에 사는 것도 좋고, 주말에 자연을 찾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으로 도시 안에 살아도 푸른 호수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리라. 허나 그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나는 오랫동안 종합상사에서 각종 물품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은행잎도 약품의 원료로 보일 정도로 풍경이 돈으로 보이기도 하고,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거래상대방의 설득작업 등을 거듭하며 도시의 거리에서 헤매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느티나무를 하나 둘 잃어버렸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고, 도시 속의 사람은 비록 원치는 않지만 다들 나처럼 마음속의 순수가 하나씩 베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새로운 나무를 심지 못한 게으름은 질책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도시에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차피 인간욕망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오늘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지 않으면 삶이 허무해 견딜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 세상은 앞으로도 가능한 한 오래 생명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푸른 호수는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나무는 자랄 것이다. 또, 누구에게는 예술이나 종교가 그것이 되리라. 도시의 황량한 들판을 걷는 내게는, 문학이 바로 내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푸른 호수가 되어, 가능하다면 나뿐 아니라 남에게도 푸름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즉,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라고 언제나 노래할 수 있기를…….
3.
무엇을 구하려는가
바람 속을 걸어가다
何を求める風の中行く(三頭火)
naniwo-motomeru kazeno-naka-aruku
바람처럼 살고 싶고 바람처럼 사라지고 바람 따라 새처럼 떠나고 싶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바람처럼 떠나지 못하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풀잎, 바람에 몸을 돌리는 풍향계같이 살고 있다. 그래도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고 무심하게 고착된 풍향계도 많으니,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쳐다볼 수만 있어도 떠나지 못하는 삶 그래도 위안이 된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풍향계를 보면 잠시 착각을 하게 되는데, 풍향계의 화살이 가리키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은 화살이 가리키는 쪽에서 불어온다. 내가 바람 속으로 날아가도 되지만, 바람이 내게 와도 나는 바람 속을 날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진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꿔보는 순간에 위안을 얻듯, 바람은 저기서 불어온다고 가리키며 폼 멋있게 잡고 있으면 날아가는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이나 이 하이쿠의 작자 산토카는 실제로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며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 열망을 가슴에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의 멋진 풍향계로 살아가면 된다. 오히려 아예 바람 따라 날아가 없어져 버리면 순간적으로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계속 붙어있으니, 공간을 날지 못하더라도 시간 속으로는 더 오래 안전하게 날아갈 수 있다. 몸은 날리지 못해도 마음은 날아간다. 태풍이 불면 부르르 한바탕 몸을 떨어보고, 사방에서 난풍亂風이 불어대면, 정신없이 휙휙 몸을 돌리며 음악에 몸을 싣는 무정형의 댄스를 즐겨라. 우리 삶은 실제로 바람 따라 방랑을 하여도,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풍향계처럼 돌아가도, 결국 인생이라는 바람 속을 걸어가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적극적으로 바람 그 자체가 되어 세상을 떠돌지 못하지만, 가만히 서서 소극적으로 세상의 바람을 맞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산토카(種田山頭火, 1882~1940)처럼 계어나 음율에 구애받지 않는 하이쿠를 자유율의 하이쿠라고 한다. 그는 삶에서도 자유로웠지만 하이쿠에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으로 인해 사회적 인간이 되지 못하고 고독한 인생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산토카는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11세 때 어머니는 우물에 투신자살, 방탕한 아버지 밑에서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고, 본인도 대학 때부터 술을 즐겨 결혼 후에도 술 때문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45세에 처자식을 떠나 탁발승이 되어 방랑의 길로 나섰다.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다 암자에서 58세에 사망. 워낙 술을 좋아한 사람이었기에 山頭火라는 술 브랜드도 있을 정도이다. 술을 좋아해 사고도 많이 쳤다고 하나 다행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인간성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산토카의 다른 작품 몇 개를 소개한다.
しぐるるやしぐるる山へ歩み入る
늦가을 찬 비 내리는 산속으로 나는 걸어가네
酒をたべてゐる山は枯れてゐる
술을 먹고 있네 산은 말라 있네
ほろほろ酔うて木の葉ふる
비틀비틀 취해 나뭇잎은 떨어지고
老ルンペンと共に草をしいておべんたう分けて食べて右左
늙은 룸펜과 풀밭에서 도시락을 나눠먹고 헤어졌네
鴉啼いてわたしも一人
까마귀 우는데 나도 혼자
-호사이(放哉)-
산토카와 비슷한 운명의 동시대 사람으로 호사이(大崎放哉.1885-19
26)가 유명하다. 동경대 법학부 재학 중 사촌여동생과 결혼하고자 하였으나 친척들이 유전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때부터 주벽이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취직한 동양보험에서 계약과장까지 올랐으나 주벽으로 퇴사. 다시 지인의 소개로 조선생명보험회사의 경성 지점에 취직하였지만 금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다시 퇴사. 만주로 가서 재기를 시도하지만 늑막염에 걸려 귀국하였다. 부부 사이에 아이도 생기지 않은 탓인지 호사이는 1923년 홀연히 가출, 산사를 전전하며 빈곤과 고독 속에서 많은 하이쿠를 짓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마지막 거처가 된 가가와현 쇼도시마(香川県小豆島)의 암자(南鄕庵)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그린 전기 ‘海も暮れきる’(바다도 완전히 저물다. 요시무라 아키라(吉村昭). 강담사)를 읽어보면, 암자에서 호사이는 나름대로 근신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결국 지인과 후배들에게 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동네에 내려가 술을 먹고 추태를 부리는 등 여전히 속세의 모습을 다 버리지 못하였다. 폐병이 심화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대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암자에서 조용히 바다와 함께 저물어 갔다. 아래 왼쪽 사진은 조선생명보험회사 경성지점 근무 때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뒷줄 왼쪽이 호사이. 오른쪽은 결혼사진이다.
咳をしても一人
기침을 해도 혼자
こんなよい月を一人で見て寝る
이렇게 좋은 달을 혼자서 보고 자다
入れものがない両手で受ける
넣을 것이 없어 양 손으로 받다
‘기침을 해도 혼자’는 이렇게 짧은 것도 하이쿠라는 좋은 예로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것이다. 산토카의 ‘까마귀 우는데 나도 혼자(鴉啼いてわたしも一人)’는 바로 이 구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둘은 평생 만난 적이 없는 철저한 고독 속의 개인들이었지만 산토카는 ‘나도(me too)’ 라는 단어로 호사이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도 혼자였지만 나도 혼자이고 당신도 혼자, 우리 모두가 혼자이다. 위의 두 사람은 우리속의 ‘혼자’를 극명하게 보이고 있으며 우리의 혼자는 끝없이 누군가와의 화和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식
1962년 부산 출생. 2002년 ≪리토피아≫ 수필 등단. 번역서 모리오가이의 기러기. ‘일본문학취미’ 사이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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