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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권두칼럼/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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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7년의 경험, 7년의 실패, 그리고 7년의 미래
먼저 ≪리토피아≫의 7년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리토피아≫는 7년 전, 그러니까 2001년 봄호를 첫호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원고를 청탁하고 수거하는 방법을 몰라 고생하기도 했다. 많은 청탁자들이 원고를 제 때에 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신의를 지키지 않은 청탁자들로 인해 회한의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지역 잡지가 되기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숱한 편집회의에서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세상에는 이미 무수한 문학잡지가 있고, 또 그 잡지들은 나름대로 역사와 명망을 자랑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태생적으로 해당 잡지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정해져 있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세상의 모든 잡지들이 나누어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생 잡지 ≪리토피아≫는 고민해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7년 동안 우리 잡지는 그 고민을 떨쳐 버린 적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힘이자 자랑이다. 변명 삼아 말하자면, 이 세상의 많은 잡지들은 점차 그 고민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믿어 왔던 그래서 항상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문학잡지들이 그 목표를 잃고 방향 없는 길 위에서 실망스럽게 헤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이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지고하고 거창한 목표만을 문학잡지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목표이며, 원고를 청탁하고 이슈를 정하고 어떤 주어진 지점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가장 작은 이유이다. 그 이유가 있을 때에만 우리는 문학을 한다고, 적어도 문학잡지를 만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 1년 동안은 그 목표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구사해 보았다. 1년의 특집을 미리 정하고 앞서 청탁하는 기획을 실천해 본 것이다. 봄호는 ‘악마성’, 여름호는 ‘돈’, 가을호는 ‘형이상학’, 겨울호는 ‘스펙터클’이었다. 어찌 보면 매 호 사이의 연관성은 희박해 보였다. 또 시의성을 담아내기에도 적당하지 않아 보였다. 문학잡지의 생명은 매 분기 발생하는 각종 사건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계획은 무모해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며 2007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2008년.무엇을 할 것인가. 이 혼탁한 시대에서 문학과 사회의 정화를 외치면서 주목받는 주장들을 토해낼까. 아니면 대중의 미련함을 빌미로 어렵고 복잡한 글들을 모아 아카데믹한 잡지를 만들어볼까. 신인들을 대거 양산해서 문학계의 섹트를 만드는 일도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 문학은 욕심이라는데, 우리도 주목받는 일들을 해볼까.
내가 여태까지 바라본 세상에서 가장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은 결국 그 외침으로 인해 세상이 혼란해질 것을 바라는 이들이었다. 진정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또 세상의 안녕을 원한다면, 자신의 소리를 낮추고 꼭 필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힘과 인내를 비축하는 지혜를 먼저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우리 ≪리토피아≫는 적어도 당분간은, 세상에 불필요하게 휩쓸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 같다. 우리들로 인해 더 복잡한 세상이 되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양심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더 크고 그럴 듯한 목소리를 원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아주 낮고 고요하게 잡고 싶었다.
2008년의 첫 번째 특집은 ‘연애’이다. 최근 개화기와 근대 초창기를 중심으로 한 미시사 연구가 국문학 연구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근대’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기존의 학적 체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우리의 근대’를 발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만, 학문도 하나의 시류이자 유행처럼 여기고 별다른 생각 없이 이 부류에 휩쓸려 드는 연구자들을 볼 때마다 그 피해도 적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연애’에 대한 연구는 그 어느 분야보다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문학과 사회의 태동기에 새로운 연애관이 함께 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신봉하며 그 사실을 절대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상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진정성을 갖춘 이들도 상당하겠지만, 확대해석과 기본적 방향 설정 착오로 인해 수많은 오류가 양산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음을 간관할 수 없다. 이전의 근대 연구가 그러했지만, 연구란 나름대로의 주관과 확신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표해본다.
따라서 우리의 특집은 새로 대두된 ‘연애’의 개념으로 현실의 문학, 즉 우리와 시간적으로 동시대권의 문학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에 주력하고자 했다. 한 연구자의 말대로 개화기 무렵 “사랑이 ‘연애’라는 어휘를 통해 새롭게 표상되면서, 성리학적 유교 윤리를 지배적 삶의 원칙으로 삼았던 우리 사회는 성․사랑․결혼을 둘러싼 인식과 관계에 총체적인 전환의 계기를 맞았”던 것처럼, 90년대 이후의 사회에서 달라진 ‘연애’관은 삶과 문학과 정신세계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고 널리 알리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집을 위해 우리는 관계 전문가들을 초빙했고, 우리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주문을 했다. 하지만 워낙 지난한 과제였기에 독자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성공으로 받아들일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애쓴 필자들에게 감사드리며, 그 밖의 책임은 ≪리토피아≫의 편집진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우리는 7년 동안 크고 작은 실패를 겪어 왔고, 이에 대해서도 항상 책임을 동감해 왔다. 어떤 경우에는 특집이 현실에 맞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목소리에 일관성을 잃은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더 좋은 선택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역부족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7년 동안 경험해 온 실패이다. 하지만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그 실패가 곧 우리의 7년이었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겠다.
그 다음이 7년 후 우리의 미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걸어온 만큼 걸어 갈 ≪리토피아≫의 장래이다. 장식적인 말로 7년의 계획을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7년 동안 겪어 온 실패만큼 묵묵히 가겠다는 것만 말해두기로 하자. 세상에 눈을 돌리면 우후죽순처럼 문학잡지들이 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 나름대로 창간 이유가 있고, 존립 이유가 있다. 그런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치 있는 실패’를 두려움 없이 해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번호에도 많은 필자들이 ≪리토피아≫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신작시를 기고한 분들도 있고, 젊은 시인 조명에 이름을 허락해주신 분들도 있다. 매월, 매분기마다 시와 소설과 비평의 경향을 탐색하시고 ≪리토피아≫를 위해 글을 써주시는 기고가들도 적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이를 읽고 감상하고 공감하고 때로는 질책하거나 격려해주시는 독자들이 있다. 그 모든 분들께 ≪리토피아≫는 이후에도 한 층 가치 있는 실패를 해나겠으며, 두려움 없이 이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이것이 8년째의 문을 여는 우리 ≪리토피아≫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2008년 신년 벽두에
편집위원을 대신해서 김남석(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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