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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문화산책/안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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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스크린독과점을 방지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안효원|컬처뉴스 기자
1.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 잔인한 ‘스크린독과점 2007’
2007년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일까. <밀양>의 여주인공 전도연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한국영화 점유율이 40% 초반으로 급락한 것?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스크린쿼터가 현재유보 돼 향후 스크린쿼터를 늘릴 수 없는 것? 한국영화사 사상 최초로 100편의 작품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흥행 참패한 것? 영화노조와 제작가협회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 아니면 최근 3대 멀티플렉스 중 하나인 메가박스가 호주 자본에 매각된 것? 이밖에도 개별 관심에 따라 저마다의 이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지만, 필자는 앞서 언급된 그 어떤 것보다도 ‘스크린독과점 2라운드 시작’을 꼽고 싶다.
이슈라는 것은 그 파급력이 크면 클수록, 그 영향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또 그에 대한 논쟁이 뜨겁고,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될수록 ‘핫 이슈’가 된다.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주주연상 수상은 단기간에 큰 관심을 모았지만 금방 사라졌다. 한국영화의 위기나 스크린쿼터 축소는 이미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논의됐던 것으로, 올 상반기 새롭게 등장한 이슈는 아니다. 메가박스 매각은 관객 입장에서 볼 때 별 영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핫 이슈’로 꼽기는 어렵다. 반면에 ‘스크린독과점 2라운드 시작’은 ‘핫 이슈’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 스크린독과점은 개봉한 다른 모든 영화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와이드릴리즈식 개봉의 인프라가 구축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앞으로도 스크린독과점은 계속될 전망이고, 배급 주체(극장)와 제작 주체(제작자, 감독 등)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스크린독과점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이 필자가 스크린독과점을 올 상반기 가장 큰 이슈로 꼽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상반기에 나타난 스크린독과점의 양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5월 1일 개봉한 <스파이더맨3>는 전국 617개 스크린에서 개봉됐고, 주말인 5일에는 전국 816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또 5월 23일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는 전국 670개 스크린에서 개봉됐고, 주말에는 전국 912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최근 600만 관객을 돌파한 <트랜스포머>(6월 28일 개봉)도 최대 907개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며, 7월 11일 개봉한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 또한 현재 834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처럼 <스파이더맨3>를 필두로 시작된 스크린독과점은 3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다. 단지 ‘1등 영화’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나머지 영화가 설 곳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잠깐 한국의 극장 상황을 알아보자.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가입된 스크린 수는 1700여 개다. 한 주에 5편의 영화가 개봉된다고 가정하고, 그 중 한 편이 900개 스크린에서 개봉된다면, 남은 4편의 영화는 나머지 스크린을 잡기 위해 정말로 ‘박 터지게’ 싸워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경쟁자’는 비단 같은 주 개봉한 영화들만이 아니다. 지난주 혹은 3주 전 개봉한 영화들이 여전히 스크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개봉한 영화 5편,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 5편, 그리고 그 이전에 개봉한 영화 5편 이상 등 총 15편이 스크린 확보를 위해 경쟁한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가 900개 스크린을 장악한다면, 남은 14편은 남은 800개 스크린을 골고루 나눌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각 영화는 평균 60여 개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중 덩치가 좀 더 큰 놈이 있다면, 나머지 영화들의 스크린 수는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개별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은 특정 영화가 멀티플렉스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목격해야 한다. 10개 스크린이라고 한다면, ‘1등 영화’ 5개관 이상, ‘2등 영화’ 2개관, 나머지 2, 3개관에서 4, 5편의 영화가 교차상영된다. 또 영진위 통합전산망 관객점유율을 보면 ‘1등 영화’들이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는 5월 말 전체 극장 관객의 71.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흥행 2위를 차지한 <밀양>은 3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 9.6%의 관객점유율을 기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열 명 중 일곱 명이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를 보고, <밀양>은 단 한 명이 본 셈이다. 이것이 관객의 선택이라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관객의 선택이 아니라 단기적인 흥행을 노리고 벌이는 배급, 극장업자의 횡포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크린독과점에 대한 논의를 펼쳐보기로 한다.
2. <괴물> VS ‘스크린독과점 2라운드’
스크린독과점 논란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영화는 지난해 7월 27일 개봉한 <괴물>이다. 당시 <괴물>은 전국 620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한편에서는 ‘다른 영화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당시 김기덕 감독을 비롯한 영화관계자들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시 온라인상의 누리꾼들은 “스크린독과점에 있어 <괴물>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다를 것이 뭐가 있냐”며 스크린쿼터가 스크린독과점을 해결 못하고, 문화다양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축소되어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린독과점과 스크린쿼터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 보호의 최소한의 장치인 반면, 스크린독과점 논란에서 한국영화가 보호될 필요는 없다.
<괴물>로 촉발됐던 작년의 스크린독과점과 올해의 스크린독과점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선 스크린 수가 다르다.(뭔가 거창한 차이점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조금만 인내하고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괴물>과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는 각각 620:816:912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비율로 따져보면 약 30% 내외의 차이가 난다. 30%, 숫자로만 보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면 200과 300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산술적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60개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잠깐 7월 2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나타난 영화별 스크린 현황을 살펴보겠다. 총 51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80개 이상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단지 9편이다(물론 1위는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으로 834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9편 이외의 영화들 중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가 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밀양>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 두 자리 수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는 거의 없다. 대부분 5개 이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 300개 스크린은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여기서 중소배급사의 영화나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이들은 적게는 단관개봉에서 많게는 1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과 300의 차이를 단순한 숫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객을 만날 수 있는가 없는가의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기술의 발달, 즉 디지털 기술의 확대 보급으로 디지털 상영이 지난해보다 늘어났다는 것이다. 디지털 상영은 필름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극장의 서버에 파일을 입력하고 상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디지털 촬영과 상영 기술이 발달하면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필름 카메라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를 찍어서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디지털 상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2007년 상반기 디지털 상영의 혜택을 받는 것은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가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들이었다.
디지털 상영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갖는 가장 큰 장점은 프린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으로 한 벌을 프린트하는 데 드는 비용을 200만 원으로 가정하고 900개 스크린에서 상영한다면 프린트 비용만 1억 8천만 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중 30%만 디지털 상영을 한다면 6천만 원의 경비를 줄일 수 있다.(한 번 사용된 프린트는 대개 폐기된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복제와 배급이 수월해지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그 덕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개봉한 한 독립영화의 제작자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하기로 계약이 끝났는데, <300> 디지털 파일로 서버가 가득해 돈 내고 서버를 임대 상영을 한 적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세 번째는 극장의 상영신고의무가 폐지되면서 극장 프로그램의 유동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상영신고의무 폐지는 영진위가 극장의 통합전산망(http://www.kobis.or.kr)에 가입을 유인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당근’이었다. 극장의 상영신고의무는 개봉 전 관할 관청에 가서 향후 극장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하는 의무였다. 예를 들어, 종로의 서울극장 등은 종로구청에 가서 상영신고를 해야 했다. 상영신고의무는 스크린쿼터 준수 감시를 위해 생겨난 규칙이다. 극장이 1년 동안 한국영화를 몇일 상영했는지 확인해볼 수 있으며, 한국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면서도 외국영화를 상영할 경우 적발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9일 상영신고의무가 폐지되면서 사전 신고제는 사후 보고제로 바뀌었다. 극장은 신고와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단기간의 흥행성적을 기준으로 교차․부분상영, 상영관 교체, 조기 종영 등의 행태들이 만행하게 되었다. 통합전산망에 가입한 극장은 발권 시스템에 영화와 티켓 정보만 입력하면, 상영 준비를 마치게 된다. 기존에는 교차상영을 하기 위해서는 교차상영을 하는 영화만큼 2배, 3배의 서류를 만들어야 했고, 시간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변경서류를 새로 제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고 의무가 사라진 지금은 자리에 앉아서 프로그램에 입력된 정보만 수정하면 된다. 결국 극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극장의 프로그램 운영 계획은 단 한 가지, 즉 ‘현재, 관객이 많은 영화’가 됐다. 누구도 작품이 갖는 가능성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돈이 될 법한 영화에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한다. 이 와중에서 900개 스크린을 장악하는 영화가 생기는 반면, 개봉 전날까지 스크린을 잡지 못하거나, 처음부터 교차상영 되고, 개봉 3일 만에 극장에서 사라지는 영화가 생기고 있다.
3. 스크린독과점, 흥행의 마법사인가?
앞에서 간간히 언급했지만, 스크린독과점은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돼버린 ‘양극화’를 영화계에 전파할 ‘씨앗’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스크린독과점이 만연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영화 문화 다양성’ 등의 당위성으로 접근했다가는 ‘자율경쟁’이라는 철퇴에 맞고 쓰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크린독과점이 관객들에게는 영화를 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극장에는 극대화된 수익을 보장한다면 굳이 스크린독과점을 문제 삼을 필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입장에서 스크린독과점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개별 영화의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한 영화가 80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초기비용이 든다. 또 프린트 비용뿐 아니라 개봉 규모에 비례해 홍보비가 증가한다. 단기간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 투입하는 20억에 가까운 홍보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린트 비용과 홍보비 상승은 그만큼 위험요소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의 ‘질’과 상관없이 무작정 다수의 스크린에서 개봉한다는 것은 제작비뿐 아니라 프린트비, 홍보비 등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스크린독과점이 ‘흥행 기대작’에도 유리하게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2007년도 상반기 흥행한 <스파이더맨3>나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위험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화들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되었기 때문에 비주얼적인 측면은 보장될 것이고, 전편들을 통해 검증받았기 때문에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다. 게다가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의 경우 한국에도 많은 매니아 관객을 이미 확보하고 있지 않았는가. 얼마나 흥행하기 쉬운 조건인가? 두 영화 공히 초반 흥행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파이더맨3>는 개봉 당일 50만 2천명을 동원해 지난해 <괴물>이 세운 전국 45만 명의 기록을 깼다.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는 개봉 5일 만에 관객 271만을 동원, <괴물>이 같은 기간 세운 263만 명의 기록을 깨뜨리며 흥행돌풍을 이어갔다. 이들의 초반 기세는 두 영화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1000만 관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종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관객 증가가 거의 없는 7월 초(7월 10일)에 <스파이더맨3>와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가 기록한 관객수는 각각 464여 만 명과 454여 만 명이다. 이 두 영화와 비교해 볼 영화 한 편이 있다. 지난해 5월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3>다. <미션 임파서블3>의 전국 스크린 수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의 절반 수치인 465개였다. 하지만 최종 성적은 574만명으로 두 영화를 앞섰다. 그렇다고 <미션 임파서블3>를 국내 관객들이 유난히 좋아했다거나, 이 영화가 유난히 대중성을 많이 갖는 영화라고 분석할 수만은 없다. 관객들에 따라 <스파이더맨3>와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를 더욱 재밌게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800, 900 이상 스크린에서 상영하지 않아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파이더맨3>와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모두 드롭률(관객 감소율)이 큰 영화였다. 이들 영화는 개봉 2주차부터 1주의 반으로 관객이 줄었다. 결국 두 영화 모두 전편에 비해 2배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했지만 흥행 성적은 비숫하다. 결국 한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관객은 대체로 한정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봉 초반의 관객몰이가 단기간의 흥행성적을 좋게 보이게 할 수 있으나, 이것이 곧바로 영화의 수익 극대화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스크린독과점과 개별영화의 수익 극대화간에는 정밀한 정비례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다음은 관객에 입장에서 살펴볼 차례이다. 사실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스크린독과점의 폐해가 가장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크린독과점이 ‘관객들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이 등장하고, 한국극장가는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멀티플렉스가 가진 최대 장점은 많은 스크린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극장이 시내 중심가에서 아파트나 주택단지 근처까지 파고들면서 멀리 시내로 나가지 않고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매력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멀티플렉스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했지만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측면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후퇴했다. 와이드릴리즈 개봉이 유행하게 되면서 이제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절반이 한 영화로 채워지기 일쑤이다. 더 이상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는 단지 상영관의 문제만이 아니다. 멀티플렉스는 소위 1등 영화에 관객들이 많이 드는 프라임 타임을 제공한다. 이처럼 한 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한 영화의 상영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한번 스크린독과점을 한 영화의 경우, 이미 한정된 관객을 모두 동원됐기 때문에 3주 이상 스크린에 걸릴 이유가 없다. 반대로 애초에 경쟁에서 밀린 다른 많은 영화들은 관객들과 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새로운 영화에게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3>의 경우를 살펴보자. 용산CGV11는 지난 5월 1일 <스파이더맨3>를 전체 스크린의 2/3에 가까운 7개관에서 상영했다. 하지만 개봉 3주차인 5월 24일 <스파이더맨3>를 상영하는 관은 아이맥스(IMAX)관 단 1관뿐이었다. 그것도 교차상영으로 프라임 타임은 다른 영화에 양보하고 하루에 단 3번(오후 5시, 밤 11시, 1시) 상영됐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CJ CGV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영화의 상영주기가 짧아지고, 초반의 흥행이 영화의 생명을 결정짓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이 2주의 스크린 수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초반 흥행을 하지 못한 영화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 스크린 수는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 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을 비롯한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머지않은 시기에 전국 스크린 2,000개를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이 많아져도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기에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스크린독과점이 과연 극장에 ‘수익 극대화’를 가져다주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잠시 앞서 언급한 개별영화의 수익에 관련한 논의를 살펴보자. 아무리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 영화가 갖고 있는 최대치가 분명 존재한다.(물론 <괴물>, <왕의 남자> 등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들도 있지만, 108편 중에 단 두 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상황에서 이들을 모델로 삼아 사업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의 수입은 개봉 초기 극대화 되는 것이지, 3~4주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득이 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그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극장은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 사례를 눈앞에서 이미 목격한 바 있다. 바로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태풍>과 <중천>이 그 예이다. 100억 이상 투입된 이 둘 영화는 모두 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영화이기도 하다. CJ엔터테인먼트는 와이드릴리즈 개봉을 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투자비용을 조기 회수하기 위해 상영 부분의 또 다른 기회비용을 투여했지만 그 기회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극장은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영화를 시험해볼 수 있는 영화들을 스스로 포기한다. 한 영화에 ‘올인’해서 나머지 영화에 대해서는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결국 자기 스스로 단 한편의 영화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가 단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괴물>과 같은 소수 영화에 그치지는 않았다. 한국 극장가가 점점 한 방향만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언젠가 <번지점프를 하다>, <가을로>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은 “다양한 영화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도배를 하다가 관객들이 질려 떠나면 한국 극장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문하기도 한다.
만약 스크린독과점이 전체 관객 수를 향상시킨다고 한다면, 극장에 입장에서 스크린독과점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스크린독과점이 심했던 2007년 상반기 극장을 찾은 관객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CJ CGV가 발표한 「2007년 상반기 영화산업 분석」에 의하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7201만 53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089만 5996명에 비해 10.8% 감소했다. 주목할 것은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 끝에서>, <슈렉3>, <300>,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 5편의 할리우드 영화가 상반기 전체 관객 수의 27.9%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2007년 상반기 총 상영작은 200편 이상으로, 5편은 전체 영화의 약 2%를 차지한다. 결국 소수영화의 흥행이 전체 관객수를 늘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관객들에게 ‘싸구려 극장’의 이미지만 갖게 할 수 있다.
4. 명확한 출구, 힘든 발걸음
지금까지 2007년 상반기 한국영화계를 강타한 스크린독과점 2라운드의 양상과 그 문제점을 살펴봤다. 스크린독과점에 대한 문제인식은 단지 필자의 고민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영화인들이 현장에서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고민할 것이다. 또 극장을 찾은 관객들 또한 자신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못 보게 된 상황에서 불쾌함으로 문제인식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모두 다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주변부에서 한국영화계를 바라보고 있는 필자는 영화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자신들의 사활이 걸려 있어 쉽게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제작자나 배급업자의 경우 자신들의 영화가 스크린독과점의 수혜자(?)가 된다면 누가 그 치명적인 유혹을 거절하겠는가. 비록 다음번에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필자가 몇 가지 제안을 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먼저 제작가협회, 영화인회의, 영화노조 등 한국영화계 제 단체들이 극장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중심으로 스크린독과점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위축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영화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이기주의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스크린독과점에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구분이 없다. 규제를 한다면 모든 영화가 대상이 돼야 한다. 이런 접근 방법이 그동안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혹은 원상회복을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 부분이다. 다양한 영화가 상영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영화를 선보일 뿐 아니라, 그들의 투자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차승재 제작가협회 회장은 400개 스크린이 적당한 개봉 규모라고 언급한 적 있다. 이를 시작으로 스크린독과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의 움직임도 필요하다. 쉽게 말해 수동적인 관객에서 능동적인 관객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극장의 선택 기준이 카드할인이어야 하는가. 카드할인을 미끼로 영향력을 확대해 온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투자․제작․배급․상영을 수직계열화 시킨 대기업들이 스크린독과점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극장을 가면 똑같은 영화를 여러 관에서 하는 것이 질린다면 다른 극장을 선택하면 된다. 스크린독과점에 일조하는 극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듯 관객이 스크린독과점을 거부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관객의 선택’에 의해 스크린을 늘린다는 극장측의 항변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새로운 관객 운동이 필요하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중심으로 한 극장측은 문화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제공하는 행위이다. 사람의 감정을 티켓으로 환산해 계산하고자 한다면, 좀 더 수익률이 높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10명의 관객 중 7명에게 같은 영화를 만들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실 필자는 일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운영하는 인디영화관이니, 저예산영화 상영이니 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다. 수백 개 스크린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껏 1, 2개 스크린에서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상영한다고 해서 그들을 문화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들의 문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스크린독과점 문제 해결이다. 그러한 자존심을 갖고 스크린독과점이 극장의 수익을 극대화시키는지에 대한 주판알을 튕겨볼 것을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첫주 스크린 제한’을 제안한다. 지난해 천영세 의원실을 중심으로 ‘멀티플렉스 규제’를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 극장협회와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자율경쟁을 저해한다며 즉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때 스크린 제한에 대한 논의는 단지 ‘찬성’, ‘반대’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은 구체적인 논의 없는 찬반논쟁으로 끌고 가기에는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제는 왜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둘 사이에 해결점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첫주 스크린 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이다. 사실 이 제안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논의의 핵심에 서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첫주 스크린을 제한함으로써 극장은 각 영화의 적정 개봉규모를 산출할 수 있다. 이 통계는 극장의 안정적인 운영의 기본 자료가 될 수 있다. 또 개별 영화에는 초기 투여자본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과다한 P&A 비용을 줄임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실행할 주체는 과연 어디인가? 바로 영진위다. 하지만 영진위는 그동안 스크린독과점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스크린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는 늘 “현재 연구 중”이라는 답변만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영진위가 나서야 한다. 당장 한국영화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크린독과점의 이익을 볼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영화들이 감당해야 한다. 1천억을 투여해 영화 제작을 하면 무엇하는가. 그것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수익 악화만을 반복하는 현 상황에서 말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향후 5년간 4,000억 한국영화산업에 지원키로 했다. 그런데 <스파이더맨3> 제작비가 3억 달러(약 2,700억)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경쟁을 하기 위해 4,000억으로 영화 몇 편을 만들 수 있겠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배급망에 대한 재정비인데, 그것이 영진위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현재 영진위, 제작가협회, 영화노조가 참가하는 영화계의 산학협력위원회가 꾸려진 상태이다. 이들 단체가 중지를 모아 스크린독과점 문제에 대해 조속히 논의를 시작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안효원
서울시립대 국문과 졸업. <컬처뉴스> 영화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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