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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특집/김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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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화된 도시와 예술
김만석|영화평론가
1. 일상화된 축제와 도시
축제의 연속이다. 일상은 일상답지 않게 이벤트와 각종 사건들로 북적거리고 일상은 매번 쇄신되어 이제 일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삶이 여전히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 통증을 망각하게 할 만큼 화려한 축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아프거나 소리 높여 구호를 내질러야 할 때조차 축제에 참여하여 구질구질한 삶 따위는 잊어버리는 게 상책인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나 ‘불꽃축제’를 한다고 난리 ‘굿’을 벌이고 있으니, 큰 행사 때나 보던 불꽃축제도 그리 새롭지는 않은 것이다. 아니, 그것은 정말로 ‘굿’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모종의 그 무엇인가를 ‘푸닥거리’함으로써 서둘러 도시에서 ‘그것’을 쫓아내려는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진술이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광안리에서 세 번이나 개최된 ‘부산불꽃축제’를 보면 축제가 곧 ‘굿’이라는 사실을 절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단 이틀 동안 8만발의 폭죽을 사용하여 15억에 이르는 비용으로 진행되는 ‘불꽃축제’에 참여하는 순간 ‘광안대교’가 가로막아놓은 ‘바다’를 전혀 그리워할 수 없게 되니, 그것이 ‘굿’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굿’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대도시의 행정관의 기획으로 이루어지는 이 무지막지한 ‘축제’가 현실의 압력을 넘어서도록 만드는 ‘해방의 기획’일 수 없고 다양한 삶을 스펙터클 안으로 봉합하려는 ‘억압의 기획’임을, 그리하여 어떤 삶은 원칙적으로 배제시키는 행정적 제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데에 있다.
김성연, 「불꽃놀이」, 단채널 비디오, 2006 일부김성연, 「불꽃놀이」, 단채널 비디오, 2006 일부‘불꽃축제’를 가장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포착한 비디오작업인 김성연의 「불꽃놀이」가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휘황찬란한 불꽃이 광안대교 위와 아래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장면을 장엄한 사운드로 제시하다가 불꽃이 솟아오르는 소리를 총소리와 대포소리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광안대교 아래에 잠겨 있는 바다 밑에서 저개발 장소가 떠오르도록 배치함으로써 ‘불꽃놀이’가 정작 대도시가 해결해야 할 갖은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적 이미지를 제시한다. 더군다나, 자연적 경관을 지우고 하늘과 바다를 불꽃놀이와 레이저 영상으로 대체해버림으로써 직접적인 장소를 추상적인 공간으로 둔갑시켜 삶의 자리로부터 대도시 구성원을 소외시켜 버릴 위험을 경고하기까지 한다.
이는 ‘부산’지역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며 우리 사회 전체가 현재 당면한 문제일 수 있다. 지역을 ‘관광지’로 둔갑시키는 각종 ‘축제’ 뿐만 아니라 대도시의 도시계획은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지도 못할 만큼 위압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또 매우 재빠르게 ‘장소’에 녹아든 기억을 삭제하는 데에 능수능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이나 바다처럼 골목이나 도시에 오랜 동안 머물러 있던 장소는 영화나 드라마의 이미지로 대체되어 버리고 그것이 내장한 역사성은 소실되거나 망각되기 일쑤인 셈이다. 가령, 전쟁기의 황폐함과 그 속에서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상징으로 이해되던 ‘40계단’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1999) 이후 그 일대가 점차 기묘한 조형물로 뒤덮여 더 이상 그곳에서 ‘과거’는 활성화될 수 없으며 박제될 따름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대도시에서 ‘시간’과 ‘역사’를 추출하기란 무척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고, 더 이상 맑스가 오래전에 마련해놓은 ‘미래’가 상상되거나 ‘전망’하기 위한 거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소문도 남겨두지 않고 지워버리는 도시계획이 실질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기억’을 부식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기억들이 깡그리 소멸된다고 믿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대도시 구성원은 낡고 오래된 ‘기억’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억’이 유희와 볼거리로 전락해버리고 있는 최근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역사가 후경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도시의 구체적 현실이 지워지고 추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2. 스펙터클로 통합된 사회
다른 한편으로 불꽃축제가 광안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는 부산의 주심이 중구로부터 해운대구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중구의 ‘용두산 타워’가 근대적인 의미에서 초월적 시각을 제시하고 부산의 풍경을 제시한 데에 반해 해운대로 진입하는 ‘광안대교’는 수직적인 위계 대신에 수평적 시선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철저히 시각중심적으로 부산을 바라보도록 구성한다. 즉, 초월적 전망을 제시하던 용두산 타워가 아니라 광안대교를 통해서 바라보는 부산의 이미지는 노동과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소가 아니라 추상화된 시각체계로 함몰되어 버린다.
단일한 시각적 체계 안으로 대도시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동일화함으로써 도시가 겪고 있는 교통체증과 계급문제, 성차별, 재개발 등등의 첨예한 갈등을 뭉뚱그려 통합하는 것이다. 심화된 분배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대도시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와 저항 그리고 공장에서의 스트라이크가 현격하게 줄어든 이유도 어쩌면 이 거짓된 통합의 기획, 바로 스펙터클로 구성되는 도시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을 터이다. 문제는 이 거짓된 통합이 ‘허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거리에 넘쳐나는 각종 광고와 미디어에서 유포하는 삶은 자체로 하나의 리얼한 삶으로 전도되었고 그러한 삶의 양식이 보편적인 아미지로 자리 잡은 탓에, 그저 허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현실세계가 단순한 이미지들로 바뀌는 때에는 이 단순한 이미지들이 현실적 존재가 되고 또한 무자각적인 행태의 효과적인 동인이 된다. 스펙터클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하게 전문화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써(세계는 이제 더 이상 직접 파악될 수 없다),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서는 촉각이 특권적인 인간 감각이었다.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신비화되기 쉬운 이 감각은 오늘날의 사회의 그 일반화된 추상화에 상응한다.
―기 드보르, 이경숙 역, '스펙터클의 사회', 현실문화연구, 1996. #18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것은 친분과 우정, 애정이 아니라 스펙터클을 통해서 매개될 수 있으며 스펙터클은 단지 이미지로만 제한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추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즉 스펙터클 이미지들은 구체적 현실을 그저 은폐하는 것일 수 없다. 이 이미지는 삶 그 자체로 주어지고 강화된 소비를 통해 외관과 스타일을 강조하는 데로 나아간 결과이다. 거기에서 촉감은 부차적인 감각으로 전락하게 되며 시각이 중심적인 감각으로 자리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달리 말해, 테일러주의로 대표되는 생산력주의가 금욕과 절제를 통해서 자본을 증식했던 데에 반해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소비주의에 의해 축적방식이 대체됨으로써 외관과 스타일에 대한 경사는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노릇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테일러주의가 개인의 신체와 삶을 과학적 관리체계 아래에 두고 훈육하여 개인의 불안감을 극복하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셀프 테일러주의의 시대”를 형성하면서 개인들의 “삶의 모든 영역을 체계적인 과학적 탐구와 관리 하에 종속시킨다”면 포드주의는 절약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소비하는 데 필요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생산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드주의 하에서 삶은 이미지와 외관, 스타일이 채워주고 금욕과 절약 대신 소비와 낭비, 사치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하여, 포드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는 근검과 절약이 자본을 축적하는 데에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자본의 축적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를 경유하면서 형성되는 듯 보인다) 도시 역시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도시적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도시필터링 과정을 통해 도시를 재구조화한다. 상징적 축조물을 도시의 주요한 간선도로망에 배치하여 근대적 주체를 구조화했던 지난 세기의 도시가 나름대로 도시 내부에 거주하는 시민들에 의해 발전하고 형성되었다면 이제 도시의 자율성은 폐기되고 전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그리하여 ‘소비되고 관광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로 변모해 버린다. 한때, 도시경관 사업의 일환으로 야간에 공중에서 부산을 바라보았을 때 갈매기 꼴을 띠도록 하는 ‘조명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은 도시가 전적으로 시각적 소비체계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스펙터클과 그 균열
스펙터클에 대한 저항을 자본주의 사회를 돌파하는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한 것은 기 드보르로 대표되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그룹(1957~1972)이다. 드보르는 자신의 저작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현대적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의 모든 삶은 스펙터클의 엄청난 축적으로 나타나며, 한때 직접적 체험의 대상들은 모두 표상과 이미지로 변해버렸다”(#1)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의 스펙터클 개념은 푸코가 스펙터클을 “전근대적인 권력의 과시 형태”로 바라본 것과 달리 동의와 합의를 통해서 구성되는 통제사회의 맥락에 가깝게 ‘스펙터클’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의 이런 주장에는 혁명의 조건이 성숙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찾는 데에서 출발된다.
맑스는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지만, 생산관계가 변하지 않을 때 혁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가 경험한 것처럼 그 조건이 만족되더라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데, 범박하게 말해 맑스는 이를 ‘기만’, ‘허위의식’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가 충분히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에 관한 보다 진전된 형태를 경험할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드보르는 “상품의 세계화와 세계의 상품화”(#66)라는 주장을 통해서 ‘상품’이 초기 자본주의에서의 ‘가치전도’를 통해서 설명되던 방식을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상품에 대한 맑스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거의 마지막까지 밀고나가서 소비자본주의 시스템은 개인이 세계를 생산하기보다 타인에 의해 제조된 세계를 소비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중요한 점은 스펙터클이 현대자본주의의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장치를, 폭력을 동반하는 직접적인 강제 보다 동의와 합의의 형식을 통해 주체를 수동적으로 변모시키며 동시에 사회적 조작에 종속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스펙터클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은폐하기 위해 활용하는, 권력이 사용하는 모든 효과를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드보르가 제시한 스펙터클은 사회적 재현체계 전체, 즉 대의민주주의, 스포츠, 미디어, 상상력을 증진시킨다는 미명 아래 미디어를 통해 시행되는 다양한 교육재현체계 등등이 모두 스펙터클로 이해된다. 잘 알다시피, 스펙터클화된 교육과 그 상품화가 오늘날 가장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뿐만 아니라 미디어/인터미디어할 것 없이 수행되는 ‘사진 찍히는 기회’가 정치적 연출에서부터 일상적 삶의 연출에 이르기까지 고도로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스펙터클이 현실정치에서만 이루어지는 특수한 그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데, 스펙터클이 우선은 허위의 평화화를 조장하고 다음으로 자율적인 주체인 노동자들을 탈정치화한다는 점에서 이중적 정치성을 내포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를 포함하는 사회적 주체를 능동적 생산으로부터 ‘분리’시켜 스펙터클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도록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예술을 삶으로부터, 생산을 소비로부터 노동자를 주체를 분리시키는 과정에서 ‘자율적인 주체’들은 말 그대로 ‘방관자’(spectators)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시각이 관찰자라는 주체성 안에 자리잡게 되자 두 개의 서로 얽힌 경로가 펼쳐졌다. 하나는 모더니즘 혹은 다른 것 안에서 새로이 힘을 얻은 육체로부터 나온 시각의 주권과 자발성에 대한 다중적인 확신으로 나갔다. 다른 하나는 시각적인 육체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제기된 관찰자의 점증적 표준화와 조절 쪽으로, 다시 말해 시각의 추상화와 형식화에 의존하는 권력 형태로 나아가는 길이다.
―조나단 크래리, 임동근․오성훈 외 옮김, '관찰자의 기술', 문화과학사, p. 223.
이와 달리 상황주의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삶과 행위의 양식을 집단적 실천으로 생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은밀히 촉구하는 ‘분리’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들이 제시한 세 가지 개념이 바로 ‘표류’(derive)와 ‘전용’(detourment) 그리고 ‘놀이’(play)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스펙터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서로 다른 환경 속으로 옮겨 다니며 체험하는 실험적 생활양식’(표류)이나 ‘과거나 현재의 미학적 요소를 보다 나은 환경구성을 위해 통합하는 것’(전용) 그리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활동’(놀이)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통합된 도시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는 이념’(일원적 도시주의)을 내세운다.
이는 스펙터클 사회 내부에서, 스펙터클에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들은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에서,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증대되는 상황에서 현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에도 스펙터클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스펙터클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들이 제시한 전략은 허구적 평화를 주장하는 이미지 사이에 폭력과 전쟁을 삽입하거나 폐기된 예술 형식과 현재의 아방가르드적 양식을 결합하여 반스펙터클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혹은 상황주의자들이 이후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공간점거를 통해 기존의 삶의 양식과 공간형식에 파열음을 내고 스펙터클화된 공간을 찢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이미 여러 개념들로부터 차용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앙리 르페브르로부터 ‘일상생활’을, 아르귀망 그룹과 루카치로부터 ‘주객변증법’과 ‘물화’를 그리고 샤르트르로부터 ‘상황’이라는 개념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마지막 아방가르드 운동그룹’이라는 사실은 스펙터클 사회를 개념적으로 극복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넘어서려는 방법을 창안하는 데에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실제로 상황주의자들은 도시계획을 비판하고 선동하는 일에 가담했으며 격렬한 논쟁을 일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현실정치(서유럽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황주의자들은 예술적 작업을 통해 현실을 변혁하기를 원했고 ‘문화상품’이 되어버린 예술을 스펙터클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했다.
4. 예술, (상품)디자인을 넘어서
상황주의자들이 도시공간을 주요한 변혁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그들이 활동하던 1960년대의 유럽, 그 가운데 프랑스의 지적 흐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맑스주의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했던 혁명의 ‘시간’이 실질적으로 포기된 가운데 혁명의 가능성을 시간을 통해서 찾는 대신 ‘도시 공간’을 분석함으로써 습속과 행위, 삶의 방식이 통제되고 관리되는 메커니즘을 찾는 데 주력한다. 이른 바 ‘시간에서 공간으로’ 맑스주의자들이 선회함에 따라 기계론적인 맑스주의가 극복되고 ‘공간’이 어떻게 삶을 생산하는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공간’은 인간의 기획에 의해 창출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공간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한 앙리 르페브르를 비롯하여 푸코 등에게서도 ‘공간’ 해석과 비판은 ‘시간’을 목적론적으로 간주하는 태도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에게 프랑스의 지적 흐름은 나치와 전체주의에 경도되기도 했던 아방가르드의 과오를 넘어서서 현실과 예술을 접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스펙터클 사회가 일으키는 치명적인 문제를 예술이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실천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서점에서 책이 팔리지 않도록 책 장정을 ‘사포’로 제작하는 등 그들의 작업이 스펙터클의 자장으로부터 비켜섬으로써 탈정치화된 현실을 정치적 장으로 다시 견인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은 현실에 개입함으로써 혁명의 기운이 사라져버린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명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스펙터클을 돌파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예술이었던 것은 그들의 태생적 조건에서 연원하는 것이었지만 도시와 미디어를 등에 업고 도시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의 파노라마를 굴절시키면서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예술이었고 궁극적으로 예술을 운동의 방법으로 선택해야만 했던 것은 예술이 ‘상품’, 즉 스펙터클화되는 것을 최후의 저지선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에 밀착하기를 원했던 예술이 일상적 삶으로부터 점차 ‘분리’되는 순간 이는 예술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1961년 작 「분리비판」이라는 단편영화에서 상황주의자들의 생각이 극명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영화의 중반 이후 화면은 어떤 대상도 필름에 ‘재현되지’ 않으며 44초 동안 오직 내레이션을 제외한 오직 검은 화면으로만 지속되는 장면을 확인하게 된다.
「분리비판」은 상투적인 의미조차에서 스펙터클이라고는 찾을 수 없으며 도시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할 뿐 그것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태도보다 이미지를 무화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인물들의 등장은 일관성이 없는 듯 보이며 그저 도시의 이곳과 저곳을 걷거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카메라 역시 걷거나 멈추어 서서 도시를 무덤덤하게 담아내거나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이미지는 각각 독립되어 있는 듯 여겨지는데 동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이미지로 도시와 인물을 뜬금없이 배치하는 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만이 아니라 도시의 후미진 골목에 낙서를 하거나 만화의 말풍선을 이용하여 맥락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등, 각각의 예술 형식을 재조정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방관자’의 자리에 앉도록 유도하지 않으며 ‘동일시’와 같은 스펙터클의 지배적 양식을 파괴하여 스펙터클을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키려고 한다.
기 드보르, 「분리비판」(단편영화, 1961) 중 일부「코펜하겐」상황주의자들이 스펙터클 사회에서 반스펙터클 예술을 통해서 현실을 변혁하고 혁명적 열기를 확산시키려 했던 시도는 역사적인 일화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최근에 도시를 디자인하려는 기획과 비교해보면 상황주의자들의 전략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디자인(de-sign)이 사물로부터 ‘기호’(sign)를 ‘분리’(de)하는 전략이라면 우리가 사물을 만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분리된 기호(이미지)일 수밖에 없게 될 터이다. 말하자면, 도시 디자인은 도시의 역사와 삶의 구체성을 이미지로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스펙터클화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도시공간이 디자인을 통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경우 도시공간 자체가 자연스럽게 탈정치화될 것임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근대적인 의미에서 예술이 적대해야 했던 것이 언제나 상품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근대예술이 작가와 작품이라는 부르주아적 관습을 등에 없고 출현했다는 점만 보아도 예술과 상품의 관계는 근친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단적으로 작가 개념에 녹아 있는 ‘저작권’은 예술이 시장을 통해서 유통되어야만 상황에 항상 놓여 있어야만 했고 상품과 경쟁적인 관계에 놓여야만 하는 처지를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상품이 디자인을 통해 거듭나게 됨으로써 예술의 적대는 상품의 디자인을 통해서 창출되는 허위의 미적 질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가장 중요한 적은 ‘상품과 상품디자인’이라는 스펙터클이고 이를 통해 허구적인 통합에 저항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실제로 최근의 출판시장에 디자인이 적극적으로 도입됨으로써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판매활로를 모색하고 있고 다양한 미디어의 정보를 통해서 책의 신비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정도이다.
5. 스펙터클과 예술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의해 비판되고 극복된 것처럼 여겨진다. 드보르가 스펙터클과 현실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반해 보드리야르에게 현실은 이미 내파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와 현실과의 관계는 더 이상 보존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드보르의 주장은 보드리야르가 회피해버린 해방과 혁명의 전략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드리야르는 스펙터클 사회를 극복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현재를 보여주었을 뿐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드로브가 제시한 이 전략이 미친 영향은 실로 광범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에 ‘도시’를 중심으로 시행되는 ‘공공미술’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그에 가장 맞춤 맞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에 밀착해서,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그 지역의 동선변화와 구조물을 함께 조성한다. 그래서 골목과 전봇대, 회벽에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벽화를 그려 슬럼화된 지역을 적극적으로 표류하거나 전용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재개발 사업을 제외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장소’의 의미를 다시 묻고 지역의 욕망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를 통해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공공예술’로 나아가려는 듯하다. 이 때문에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비디오와 사진을 통해 장소를 기록하고 이를 보존해두는 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전적으로 ‘공적인 것’을 담보한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들의 프로젝트가 반스펙터클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국가기구로부터 기금을 받아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이고 엄밀하게 자발적 과정을 통해 시도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그럼에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이후에 (적어도 남한의 경우 시기적으로 1980년대 이후) 망각되어버린 ‘공공성’에 대한 환기를 다시 불러 일으킨 점에서 예술이 처해 있는 전반적인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스펙터클이 결코 포기될 수 없으므로 예술 역시 지속적으로 스펙터클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스펙터클이 공동체로부터 개인을 떼어내고 삶을 스타일과 외관, 이미지로 허구적으로 통합한다면 예술은 이러한 통합에 반대하고 도시공간을 놀이의 장소로, 그리하여 공공성을 구성하는 쪽으로 재통합해야 한다.
물론 상황주의자들이 해왔던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서 구축되는 일원론적 도시주의라는 실천적 전략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예술을 통한 통합은 현실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기보다 네트워킹이 실현되는 장소를 통해서 통합되어야 한다. 일원론적 도시주의가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는 전략이 녹아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기술력의 등장으로 이루어진 소통의 방법을 경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도 이미 스펙터클의 정치학이 구사되고 있으므로 예술이 이 분리된 개인을 통합하기 위해서 디지털이미지 자체를 정치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예술적 양식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미학의 진전은 이런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미학적 성과들은 무엇보다도 특권화된 ‘시각’을 교정하고 감각을 재조정하여 상처받은 얼굴들을, 해체된 얼굴과 마주하도록 해야 할 터이다. 그때, 스펙터클에만 발목 잡히는 대신 ‘공공(통증)’이라는 감각을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만석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미술 평론) 당선. 부산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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