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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신작단편/유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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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오후 4시의 기억
유시연
아주 가끔, 내가 혹시 쌍둥이 형과 바꿔치기 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만한 개연성은 충분하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병원에서 집으로 왔고, 이주만에 장염증세로 쌍둥이가 똑같이 다시 입원했으며 병원에서는 울보에 잠 안 자는 아기로 유명했다니 그 사이에 간호사가 발목에 매단 내 이름표를 바닥에 떨어뜨렸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막말로 심증은 있는데 확증은 없는 것이다. 3분 간격으로 내가 동생이 된 사건은 희극코미디이다. 형이 석아, 부르면 나는 응, 철아, 왜 그래, 라고 대응하다가도 부모님 앞에서는 꼬박꼬박 형이라고 불러준다.
내 최초의 기억은 삼신할머니가 엉덩이를 세게 내리친 아픔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찌나 아프던지 나는 울음을 토해내며 열 달 동안 나를 보호하고 키워낸 둥지를 있는 힘껏 찢고 튀어나와야만 했다. 손톱에는 주먹을 움켜질 때 할퀸 핏자국이 고스란히 말라붙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입에 대고 맛을 보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고놈, 울음소리 하나는 장군감이네. 의사가 내 발목을 꽉 움켜쥐고는 거꾸로 쳐들었을 때 나는 비린내와 소독약과 간호사의 향수냄새를 맡았다.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어머, 아기가 내가 엄마인 줄 아나봐. 배내옷으로 갈아 입혀주는 간호사의 뺨이 불그스레해졌다. 나는 간호사의 가슴을 자꾸 파고들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친근한 얼굴은 없었다. 각종 기기들과 수술 도구와 침대와 요람이 보였다. 둘러보니 생모가 땀에 젖은 몰골로 지친 듯 누워 있고 그녀의 입이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듯했다.
두 명의 간호사가 각각 나와 형을 안고 아기 방으로 갔다. 푸른 벽지가 발라진 그곳은 아기들의 고아원이었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생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한군데 모여 있는 장면이 기막혀서 나는 빙긋 웃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다시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어머머, 아기가 나를 보고 웃네. 어머, 귀여워라. 간호사의 입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때 아기들이 한꺼번에 울음을 내질렀다. 이때다 싶어 나도 고함을 있는 대로 질러댔다. 배가 몹시 고팠고 나는 발버둥을 있는 대로 쳤으며 형도 덩달아 버둥거렸다. 그때 침대 모서리에 발이 부딪혔고,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간호사 둘이 동시에 놀라며 떨어진 이름표를 주워들었다.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간호사가 바닥에 떨어진 이름표를 집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나는 그때 분명히 나와 형이 바뀌었다고 확신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은 작은 우연에 의해 인생이 달라지는 일은 흔했다. 그렇지만 뭐, 어쩔 도리가 없다. 체념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형은 외국어 영역이건 한글과 관련된 것이건 성적에 있어서는 언제나 나를 앞질렀다. 한창 조기영어 바람이 불어 닥쳤고, 어머니는 유행에 뒤질세라 다섯 살 때부터 우리 형제를 어학원에 보냈다. 인정받기 위한 치열한 내 노력은 때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돌진하곤 했다.
나는 지금도 병원 꿈을 자주 꾼다. 이것은 필시 내 운명과 직결되는 무언의 암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때때로 자신이 내디디는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본인도 모를 때가 있는데.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병동, 흰 시트,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 이것은 좀 의외다. 나는 이십 년이 지나 병실 침대에서 그 호루라기 소리를 다시 듣는다. 호루라기 소리는 환자가 들이닥칠 때마다 들려왔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 소리는 어느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후 네 시 무렵의 베란다는 온통 밝은 빛이 출렁였다. 햇살이 빨래를 하얗게 말리고, 푸른 하늘을 가로지른 전선은 햇볕의 열기에 녹아내릴 듯 늘어졌다. 며칠 잠을 못 잔 탓에 머리가 아팠다. 닷새 전에 찾아온 지나를 본 후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풍성했고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창밖으로 눈길을 돌릴 때마다 긴 갈색 파마머리가 반짝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쳐 올랐지만 나는 부자연스런 몸을 겨우 움직여 휠체어를 조절하는데 그쳤다. 상체를 조금 앞으로 당겨 앉는데도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다.
지나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를 다시 만난 순간 나는 결코 그녀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를 추억하거나 그녀를 잊기 위해 버둥거렸다는 것을 알았다. 넌, 아름다워. 형이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피부는 터질 듯 탄력이 넘쳤으며 가슴은 부풀어서 볼륨감이 살아 있었다. 다시 건강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지나가 침대 모서리를 만지며 말했다. 그녀의 위로에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으나 형이 쟁반에 토마토 주스를 담아오는 바람에 끓어오르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형이 지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벌름거렸다. 문득 밤마다 형이 그녀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녀의 젖가슴에 코를 박고 잠들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토마토주스를 한 모금 넘기던 나는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 붉은 과즙이 그녀의 푸른 색 원피스에 얼룩을 새겼다. 형이 큰소리로 봄을 불렀다. 봄이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봄의 얼굴이 지방기로 번질거리고 눈두덩은 부어 있었다. 이런, 깜박 잠이 들었네. 사모님이 입던 옷 찾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봄은 어머니가 입던 원피스를 찾아 지나에게 내밀었다. 분홍과 흰색의 꽃무늬가 박힌 두꺼운 질감의 천이었다. 헐렁한 통자루 같이 겉돌았는데 그것이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봄이 지나의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돌아왔을 때 형은 지나를 배웅한다며 현관문 밖으로 나간 뒤였다. 나는 휠체어를 굴려 발코니 창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댔다. 형이 지나의 목덜미를 잡고 입맞춤을 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신음을 삼켰다. 길고 긴 입맞춤 끝에 형의 손이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택시가 왔고 둘은 손을 흔들었다. 뒷좌석에 앉은 지나의 하얀 얼굴이 유령처럼 멀어져 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같이 가지 그러니. 형이 다시 들어왔을 때 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넌 그 애를 사랑하니. 물론이야. 내 물음에 형은 전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잘 생각해봐. 그 애는 주변 남자들로 인해 네 신경을 긁어놓을 거야. 어떻게 알아. 내가 관상학을 좀 했거든. 내 말에 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 걱정이야. 형이 진지하게 말해서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무슨 일 있지.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에게 관심 갖는 남자애들이 많아.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데 뭐가 문제야. 지나의 속마음을 모르겠어. 도무지 단호한 데가 없어. 아무 놈이나 만나 술 마시고, 히히덕거리고. 그래서 고민이야. 나는 형의 순진한 고백에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유하고야 말았다. 그럼 해결될까. 형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도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친김에 나는 그녀가 내숭덩어리라는 것과 그런 애들을 확실하게 붙잡는 방법은 니가 도장을 꽉 찍었다는 것을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것과 실제로 약혼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형이 가고 나서 나는 순진한 척하는 형에게 내가 당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형은 이미 사냥꾼처럼 지나를 한 방에 쓰러뜨려서 속속들이 그녀의 내장을 헤집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나를 떠올리면 통증이 발끝에서부터 다리를 타고 허벅지를 지나 사타구니와 단전과 심장과 뇌수를 흔들었다. 무거운 쇠망치가 내 뒤통수를 내리쳐서 서서히 통증이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오랜 병원생활과 자신의 한심한 처지에 비관하느라 나는 내 몸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고장을 일으켰는지 잘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다리를 못 쓰고, 걸어다니지 못하며 한쪽 팔이 약간 둔하다는 것 외에 나는 거의 방기하다시피 지냈다. 지나가 다녀가고 나서 나는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 걸 느꼈다. 손가락을 움직여 그곳을 만져보았다. 그러나 곧 피곤이 몰려왔다. 눈을 감았으나 스키장 콘도에서 지나와 나눈 짧은 입맞춤의 기억이 전생에 일어난 일처럼 가물거렸다. 정신은 또렷했다. 눈을 떴다. 봄이가 걱정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봄. 그녀는 아주 어려서 우리 집으로 왔다. 술주정뱅이 남자가 어느 날 여섯 살배기 계집아이를 떠맡겼는데, 그는 우리 집 문간방에서 세를 얻어 살던 사람이었고, 딱 한 달만 맡아달라고 사정해서 받아준 거였다. 계집아이는 집안일이며 심부름을 잘했다.
봄이의 호적상 이름은 전순둥이었다. 어머니는 그 이름이 촌스럽다며 봄내음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고 전순둥보다 더 좋다고도 볼 수 없는 그 이상한 이름에 그녀는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정작 그녀를 부를 때는 봄내음아, 라고 하는 게 거치적거렸든지 어머니는 항상 봄아, 봄이 어디 있니, 우리 집 봄아, 라고 불렀다. 쟤가 아무래도 복덩이 같아요. 깊은 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불을 뒤척이며 도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회고에 따르면 봄이가 들어오고 나서 돈이 눈덩이처럼 굴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반 지하에서 첫 지상의 집을 얻은 해가 가고 그 이듬해에 우리는 이사를 두 번이나 더 했는데 그때마다 평수는 늘었고, 집값은 몇 배씩 불어났다. 나중에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이사를 다녔다. 금고는 불어났으며 아버지는 부동산에 두 명의 직원을 두고 가끔씩 출근했다. 어머니는 자모회다 동창회다 바쁘게 나돌아다녔다. 당연히 집안일은 봄이가 떠맡게 되었고 은연중 어머니는 술주정뱅이 봄의 아버지가 기적처럼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 말쑥한 차림새로 들이닥칠까 봐 겁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그런 낌새는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요즘 애 같지 않아요, 입도 무겁고 솜씨도 야무져서 오래오래 데리고 있었으면 해요. 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고, 수없이 이사를 다닌 우리 집을 무슨 수로 다시 찾을 것이며 하도 오래된 일이라 정작 봄이가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 말로도 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고 말했으므로 그리 큰 염려는 못 됐다.
배고프지? 어느 사이 봄이 당근 주스를 갈아 호두 속 알맹이와 함께 내밀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내 몸은 휠체어에 옮겨졌고, 내방 문턱이 더 낮아짐과 동시에 주문한 특수 침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의사와 간호사가 왕진을 와서 링거를 매달 수 있게 침대 모서리에 알루미늄 막대기를 세웠으며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붙박이 식판이 부착되었다.
이다 괜찮아질 거야. 봄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보일 뻔했다. 벽에 걸린 오래된 액자처럼 무심한 관계였는데 내 처지가 이렇다보니 작은 말 한 마디에도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내 기분은 썩 괜찮아졌다.
봄이가 가출한 사건은 어머니에게 충격이었다. 이틀을 꼬박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았고 이모들은 짐승은 거둬도 사람새끼는 거두지 말랬다며 흥분했다. 제일 서운해 한 사람은 사실 나였다. 가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집을 떠날 당시 그녀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으므로 가출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원래 시장이나 동네 가게 외에는 나돌아다니지 않는 그녀였던지라 어머니는 한동안 그녀가 집을 나간 사건을 두고 온갖 추측과 추리소설을 써댔고, 서른 살까지 데리고 있을 예정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처음부터 봄이와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야, 너도 사람이냐, 어지간히 괴롭혀라. 하루는 형이 나에게 훈계했고 봄이는 베란다에 나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쭈, 형이 봄이에게 마음이 있나, 아니 둘이 짜고 나를 따돌리나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봄의 외모도 봐줄 만했고 엉덩이와 앞가슴이 큰 단점을 빼면 허리도 가는 편이었다. 더 어릴 적에 내 옷을 갈아입히려던 봄의 가슴에 짓눌려 숨을 참기가 힘들었던 날도 있었다. 놀이터나 화단에 들어가 뒹구느라 몇 번씩 옷을 갈아입어도 늘 흙투성이인 나를 보고 어머니는 봄이 게으름피운다며 잔소리를 해댔다. 어느 날 그녀의 큰 가슴이 내 코를 막고 얼굴을 반쯤 가린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얼른 손을 그녀의 앞섶에 집어넣었다. 봄이 자지러질 듯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그일 이후 나를 보는 봄이 눈이 이상했다. 하루는 목욕탕에서 나를 씻기던 그녀가 내 손을 슬그머니 끌어다 자기 가슴을 만지게 했다. 나는 낄낄거렸고 봄이는 어때? 기분 좋지, 엄마 아빠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봄이는 내가 말썽을 피울 조짐이 보이면 나를 데려다 자기 젖가슴을 만지게 했다. 나는 그 일이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
부모님이 상조회에서 부부모임으로 제주도로 이박 삼일간 여행을 떠나며 집안 일 뿐 아니라 나와 형을 봄이에게 맡겼다.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그날 밤, 천둥이 심하게 치고 비가 창턱에 들이쳤다. 겁 많은 형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찌감치 잠에 빠졌고 나는 몰래 방을 빠져나와 봄의 방으로 갔다. 봄이 거실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반라의 남녀가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봄이 나를 불렀다. 봄이의 가슴은 점점 커져서 나날이 부풀어올랐다. 봄이 내 손을 잡아끌어 가슴을 만지게 했다. 어때, 기분 좋지. 그녀는 늘 하던 대로 내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봄이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커다란 젖가슴이 내 입을 막고 코를 막고 얼굴을 덮어서 숨을 쉬지 못해 버둥거렸다. 젖가슴을 밀쳐내려 발버둥치다가 잠에서 깼다. 소파에 누워 있는 내 바지가 축축했고 지린내가 심하게 났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날씨는 화창했다. 아침밥상을 차려놓고 우릴 깨운 봄이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이 계란말이를 숟가락에 얹어주었다. 욕실에서 빨래를 하는 봄이의 콧노래가 새어나왔다.
나는 형을 볼 때마다 휘파람을 불며 어린애 주제에, 라고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시장사람들로 구성된 상조회 회원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씩 관광을 갔다. 주로 동남아나 유럽의 잘 알려진 코스를 다녀왔다. 어머니가 없는 집안은 봄이가 안주인이었다. 그녀는 피곤하다며 나에게 커피를 타달라고 말했고 나는 길들여진 가축처럼 일회용 봉지를 뜯어 인스턴트 커피를 타줬다. 한밤중에 깨어 화장실을 가다가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그녀가 순간적으로 어머니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비슷한 살구색 잠옷을 입은 그녀가 멜론을 안주 삼아 느긋한 포즈로 양주를 홀짝이는 장면이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왔다.
“아직 안 자니?”
“응.”
“이리와, 재워줄 게.”
봄이가 부르는 바람에 나는 그녀 옆으로 갔다. 아홉 살의 생일을 앞두고 있던 나는 한창 여자친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때였다. 그녀의 가슴은 비대해져서 잘 익은 살구향 냄새가 났다. 봄이 내 귀를 만져주었다. 요, 개구쟁이. 봄이는 귀를 만지다가 코를 세게 비틀었다. 아프기는 했지만 나는 참았다. 천둥이 치던 밤의 일이 있고 나서 봄의 눈빛만 보면 나는 수줍음을 타는 아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철이 들었다며 대견해 했고, 나는 약점을 잡힌 똘마니처럼 봄이 앞에서 얌전해졌다. 그날 밤, 나는 미미의 꿈과 어머니의 꿈, 그리고 봄이의 꿈을 번갈아 꾸었다.
봄이 우리 집에 산 19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중 큰 줄기만 몇 개 꿰어보면 아버지에게 애인이 생긴 것과 형에게 애인이 생긴 사건이다. 물론 형은 첫 사랑이 아니었다. 형의 첫사랑은 유치원 짝꿍인 예쁜 여자애였다. 어느 날, 분홍 리본을 머리에 달고 온 여자애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그 애가 바로 형의 유치원 짝꿍이었다. 그날은 형의 생일이었고 ―물론 내 생일이기도 하다― 생일잔치에 초대받아온 아이들 중에서 미미라는 여자아이가 치킨을 집어 뜯을 때 통통한 팔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불현듯 그 하얀 팔을 물어뜯고 싶었다.
다음날, 형은 무슨 일인지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는 새로 산 셔츠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어주었다. 평소보다 다정한 어머니의 태도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 가 실내에 흐르는 카페였다. 여섯 살배기 사내아이가 그 곡을 알 리 없었다. 찻집마다, 대학가 호프집마다, 음반 판매점에서 인도에 내놓은 스피커에서 그 곡이 유행할 때에야 아득한 과거의 어느 날에 들은 기억이 솟아났다. 형을 떼어놓고 처음으로 어머니를 독차지한 그날의 일을 어찌 잊겠는가.
미리 약속이 돼있었던 듯 어머니 앞에는 어린 아가씨가 불안한 고양이 눈을 하고 금방이라도 할퀼 듯이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푹신한 카펫과 차고 매끄러운 대리석 벽, 창틀에 가득한 작은 화분들, 나는 실내를 뛰어다니고 싶어 몸이 뒤틀렸다. 내가 다리를 흔들자 어머니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내 두 무릎을 꾹 눌렀다.
“어린 아가씨가 애가 둘이나 딸린 사람과 어쩌자는 거야?”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어머니는 떨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 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내 팔과 다리가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좀 가만히 있거라. 어머니는 마구 흔들어대는 내 다리를 꼬집었다. 어머니의 손끝에 힘이 가해졌다. 그 손아귀의 힘으로부터 빠져 나오려는 움직임의 파장이 어머니의 몸을 떨게 했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당겨 당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나는 한눈에 아가씨와 어머니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또한 어머니의 태도에서 아가씨를 향한 살기를 느꼈다. 그건, 내가 한 가지씩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나에게 쏟아지던 눈빛이었다.
“우,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그이가 말하지 않던가요.”
아가씨가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 기습을 받은 어머니의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때를 이용해서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빠져 나왔다. 어머니는 이미 교양을 팽개쳤다. 주위가 다 들리는 듯이, 이년이 어디서 말대꾸야, 말대꾸가. 유부남과 놀아난 년이 어디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성난 어머니의 고함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아가씨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다 나는 아가씨 앞에 급정거를 했고 그때마다 아가씨는 깜짝깜짝 놀라곤 해서 더욱 신이 났다. 어머니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핏발을 세우고 쏘아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자 아가씨의 뽀얀 종아리가 보였다. 잠시 혼란이 왔다. 형의 첫사랑, 미미의 통통한 팔뚝이 연상되었고, 동시에 나는 아가씨의 종아리를 깨물어버렸다. 아가씨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고 그 순간 뜨거운 찻잔이 엎어지며 방금 세탁소에서 찾아 입은 어머니의 아이보리색 투피스에 커피 얼룩이 생겨났다. 아가씨는 황당하다는 듯 어머, 기가 막혀, 어쩌고 하더니 벌떡 일어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내 귀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내 엉덩이에는 무지막지한 손자국이 났고 불에 덴 듯 벌건 자국이 남았다. 나는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면서 후회를 하고 또 했다. 어머니의 머리카락 올이 마귀할멈처럼 솟구쳐 올랐다. 음악 부스에서는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가 도돌이표로 흘러나왔다. 누구나 살다보면 곤란한 일을 겪게 되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 일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면, 그건 그 곤란을 두 배로 만드는 거랍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행복해질 거예요…… 내가 미쳐, 어쩌다가 너 같은 애가 태어났는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형을 봐라. 드디어 어머니의 입에서 형의 이름이 불려졌다. 제일 마지막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어머니는 택시 안에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야단쳤고 기사는 백미러를 흘끔거리며 허허, 아드님이 무척 개구쟁이인가 봅니다. 사내아이란 그런 면이 있어야죠, 라며 토를 달았으나 어머니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 아가씨에게 하고 싶어한 말을 제대로 못한 분풀이를 나에게 했을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내 팔을 세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어머니의 입에서 모터 엔진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명절날 친척들이 모여 몇 가마니씩 쏟아내는 말의 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은 택시에서 시작하여 골목을 지나 동네 슈퍼와 우리 집 마당에까지 흘러 넘쳤다. 나는 지금도 가끔 어머니의 입에서 붉은 홍수가 나는 악몽을 꾸곤 한다. 그 바람에 나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꼬마가 되었다. 내 나이 여섯 살이었다.
아아, 나는 이미 그때 내 인생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쌍둥이 형을 의식하면서 결코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없는 내 삶이 일시 정지된 것은 스키장에서였다. 그 끔찍한 악몽, 이것은 모두 형으로부터 시작된다. 형이 엠티에서 만난 지나라는 애에게 첫눈에 반해 지리산에도 가고 홍도에도 갔다 올 동안 급속도로 가까워져 마침내 스키장에도 동행하게 되었는데, 피시방에서 만난 내 여자 친구도 함께 가기로 돼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 여자 친구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지나와 함께 가고 싶은 핑계로 들러리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지나의 관심이 형으로부터 나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독서실에 처박혀 공부만 파먹은 형이 일류대학에 별 고민 없이 들어간 것을 빼면 할 줄 아는 거라곤 없었기에 나는 승산이 있었다.
스키장에 간 첫날은 콘도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준비해 간 재료로 밥도 하고 김치를 넣어 참치찌개도 하고, 피자를 시켜 먹으며 밤새 마시고 춤추며 놀았다. 한창 유행인 엽기 시리즈를 내놓는 내 농담에 그들은 허리를 비틀며 웃어댔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도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고 말한 작자는 순 사기꾼이다. 그것은 절박한 고통의 체험이 없거나 설익은 체험을 부풀려놓았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 기억으로부터 놓여나지 못하고 악몽을 꾼다. 어머니를 따라 주일학교에도 다녔고 성당 학생부 활동도 했지만 운신하기 힘들어지고부터 아무 데도 안 간다. 내가 움직이려 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어렵고, 또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딱 한 번 봄이의 도움을 받아 철학관을 가보았는데 과거에 있었던 내 경험이 아니라 형의 경험과 맞아떨어지고 있어서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엉덩이에 푸른 멍자국이 시퍼렇게 박힌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재수생의 험난한 여정에 들어서기까지 우리 집은 꼭 열 네 번의 이사를 했다. 어머, 전망이 끝내 줘. 나 홀로 카페야. 어머니의 호들갑이 수화기를 울렸다. 친척이나 시장 사람들이 합성세제나 두루마리 화장지, 혹은 화분을 사들고 줄줄이 다녀간 흔적은 집안 곳곳에 남았다. 불낙전골이나 중국집 요리접시가 현관문 밖에 포개어지고, 선반을 가득 채운 세제비누며 화장지는 이 구석 저 구석에 놓였다. 애초에 어머니는 전망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일가붙이들이 들이닥쳐 공원의 무성한 수목과 지척의 거리에 있는 숲에 대해 넘치는 찬사를 보일 때에야 제대로 건진 집이구나 싶었을 것이다. 군사보호구역에 묶여 고층 건물을 얹을 수 없는 아파트 단지는 곧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귀 밝은 어머니의 직관에 아버지가 군침을 삼켰고, 다년간 주택업계의 흐름을 잘 탔던 아버지의 노하우가 보태어져서 군말 없이 현재의 집을 구하게 됐다는 것을 친척들이 알 턱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생여행’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짧은 순간, 내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기이한 느낌에 휠체어를 멈췄다. 전봇대에 16절지 크기의 종이로 붙어 있는 광고는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아슬아슬 붙여져 있었다. 약도가 안내하는 대로 사무실은 골목 입구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무실은 깔끔했다.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녹차를 마시다 말고 나와 봄을 쳐다보았다. 편안한 소파에 옮겨진 후 나는 눈을 감았다.
깊고 어두운 동굴,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통증, 한 줄기 빛, 숨 막히는 전율…… 심장의 박동소리, 아기들의 울음소리, 수술도구, 의사의 흰 가운, 요람에 누워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기, 탯줄을 자르는 가위. 어, 고놈 장군감이네. 의사의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었다. 덥다 싶은 실내, 간호사들.
내 운명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남자는 흥미 있게 내가 본 설명을 들었다. 시간이 늦었다고 시계를 들여다보는 봄의 초조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나는 편안했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남자가 건넨 음료수를 받아먹고 한 시간 가량 머물렀다.
스키장에서의 일. 그날 이후 내 몸은 반쪽의 기능이 정지해버렸다.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뜯어먹으며 거의 밤을 새다시피 놀고 난 다음날,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위쪽으로 올랐다. 가족과 몇 번 왔다가고 이 년 만에 다시 온 스키장이었다. 내 여자 친구는 초보들이 타는 곳에서 몇 번 연습하고 금방 중급으로 넘어왔다. 지나는 창백한 낯빛을 하고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다가 약국에서 산 알약과 드링크를 마시고 겨우 몸을 추슬러 나왔다. 나는 처음부터 최상급 코스에 섰고 그것은 무리였지만 지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는 걷잡을 수 없었다. 멋지게 몸을 날렸다. 그때 몸이 기우뚱거렸고 내 옆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피하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나 몸은 균형을 잡지 못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지나와 그녀의 어깨 위에 팔을 두른 형을 보았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재수 없는 놈. 나는 지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알기 전에 형을 먼저 만난 건 분명 지나의 운이 나쁜 징조였다. 지나는 형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나는 지나의 도톰한 입술에 칠해진 연분홍색 루주를 쳐다보며 아쉬운 듯 마른침을 삼켰다. 메탈 음악과 라틴 음악을 틀어놓고 흔들던 나는 복도 바깥으로 지나의 뒤를 따라 나간 초저녁의 기억을 더듬었다. 하얀 눈과 검은 숲이 어우러진 골짜기를 바라보며 공기가 참 맑아요, 지나가 말했고 그녀 옆에 바짝 다가 선 나는 설경에 반사되어 푸르스름하게 어두워지는 대기를 가리켰다. 곧 달이 뜰 거고, 카시오페이아가 축복처럼 비춰줄 거라고 시적인 어구를 동원해서 설명했다. 지나는 감격한 듯 형과는 다르네요, 라고 말했고 눈빛에는 친근감이 어렸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았다. 고통스러운 본능을 자제하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형이었다. 뭐해, 바람이 찬데. 형의 등장에 나는 아쉬운 눈길로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라 형에게 사고가 생겼더라면. 가끔 내 기억은 새벽 스키장의 언저리를 맴돈다. 좀 더 시간이 내게 주어졌더라면, 지나는 완벽하게 내 여자가 됐을까. 내 튼튼했던 다리는 그 사이 몰라보게 야위어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버지의 외도는 뜸해졌다. 본시 모질지 못한 성정에다 순박한 마음이 남았던 아버지는 내 하반신 마비가 당신의 죄업 때문이라고 믿는 듯했다. 두 분은 초기 신혼 시절로 돌아간 듯 늦은 저녁, 과일 안주에 양주를 마시며 내 장래를 의논했다.
“회복할 수 있을까. 건강한 놈이었는데.”
“큰애가 군대 가면, 몸도 약한데.”
“이 양반이 도대체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어머니의 음성이 높아졌다. 간간이 후손, 대가 끊기고, 하는 말이 토막토막 끊어졌다 이어졌다.
“화장실 좀…….”
나는 다시 만난 봄이에게 반말을 하기가 뭣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말하거나 침묵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봄이의 일을 한시도 기억에서 놓쳐본 적이 없었다. 봄이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 앞에 가서 부축해주었다.
“미안해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봄이는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봄이는 말이 없이 집안일을 했다.
“근데 우리 집을 떠났을 때 어디에서 지냈어요?”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봄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고, 예전에 비대해 보이던 가슴도 보통의 여자들 사이즈였다. 키나 몸무게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가슴과 엉덩이만 줄어든 것 같았다.
“그냥, 어디인가로 가고 싶었어. 언덕을 넘고 들판을 지나고, 도시를 떠나 어디든 다른 세상의 냄새를 맡고 싶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집과 시장에 가는 것밖에 몰랐잖아. 어느 날 숨이 막혔어. 다른 세상이 궁금했고 그래서 집을 나와 남한 일주를 했지. 슈퍼 아줌마는 남자가 생겼냐고 나중에 물어봤지만 글쎄,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길 위에서 하룻밤, 난 평생 해야 할 사랑을 하루에 해버렸거든. 나처럼 여행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지상에서 인연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다며 새벽에 떠나버렸지. 마술에 걸린 것처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몰라,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만 같아.”
봄이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돌아서서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나는 코끝이 아렸다.
“이것 좀 먹어봐, 잣죽이야.”
봄이 그릇에 잣죽을 담아 내민다. 오전 내내 부엌에서는 음식 냄새가 났다. 먹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나는 봄이가 떠먹여주는 대로 입을 벌린다. 운동이 부족한 나는 자주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렸다. 다치기 전에는 밥을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팠다. 내가 좋아하던 컵라면이며 생크림 빵, 복숭아 통조림이 곰팡이가 핀 채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봄이는 잣죽이며 소화가 잘 되는 간식을 직접 챙겨주려 애를 쓰는 편이었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끔 휠체어에 앉아 베란다 유리문으로 들이비치는 석양을 보거나 빗줄기, 날아가는 새 떼를 보며 오감으로 그것들을 느끼고 냄새 맡고 만지고 싶은 욕망에 몸을 떨었다. 바람의 냄새를 깊게 흡입하고 싶고, 살갗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차가운 감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아릿한 통증이 가슴을 짓누른다. 가늘고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풀어진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봄이의 뒷모습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를 위해 잣죽이나 깨죽을 쑤어주거나 적당한 햇빛을 쬐야 한다며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나갈 때도 봄이는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녀는 길 위에서 만난 남자를 기다리며 늙어가는 지도 몰랐다.
부동산 경기의 불황으로 어머니는 백화점 한 귀퉁이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렸고, 귀가는 더 늦어졌다. 나중에 당신이 먼저 눈감으면 내 안위가 염려된다면서 돈이라도 벌어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야겠다고 종종 말하곤 해서 가족들에게 내가 짐이라는 걸, 그래서 암울한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내 기분은 늘 다운되어 있었다. 음식을 입에 넣지 못하는 이유는 소화불량보다도 어떻게든 오래 살아야 할 희망을 발견 못했기 때문이다. 쟤는 걱정 마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남인 제가 돌볼게요. 형의 말에 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자존심이 부서졌다. 나를 앞서서 달리던 성적과, 형과의 비교대상으로 전락한 나는 맏아들의 위치를 잃어버린 운명처럼, 꼬이기만 하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형에게 의탁하느니 계단에서 굴러 버리겠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였다.
“내 그 맘 다 알아. 지나를 그만 오지 말라고 할까.”
봄이는 내 속을 들여다본 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 밑이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널, 도와줄게.”
봄이는 갑자기 그 말을 불쑥 내뱉고는 쿨적쿨적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왜 우는지 알지 못한 채로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나는 정확히 그녀의 말뜻을 못 알아들었다. 그날 저녁 화장실 볼일을 도와줄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바지춤을 끌어올리려던 그녀가 돌연 내 거시기를 움켜잡더니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돌발적인 상황에 놓인 나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어, 하고 가느다란 비명을 내질렀다. 눈을 감았다.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창을 할퀴던 밤이 떠올랐다. 봄이와의 장난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이 수치심에서인지 감각기관의 반응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자 봄이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목과 귀밑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겼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실내의 불을 모두 끄고 나는 도로 위에 늘어선 가로등과 그 가로수 길을 따라 늦도록 이어지는 차량의 불빛을 바라보곤 한다.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보는 느낌은 단란한 가족의 저녁 식탁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지나를 생각하는 고통으로부터 놓여나지는 않았지만 형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고 비로소 내가 해야할 일이 떠오른 것이다. 지나는 스무 살 때의 철없는 임신과 수술 후유증으로 영영 아기집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떡할 거니. 나는 물었다. 지나는 내 첫사랑이야. 그 애는 물론 내가 처음이 아니지만. 형은 그래도 지나를 사랑하며 아이는 입양할 거라고 내뱉었다. 형의 태도는 담담했다. 형은 담배를 빨며 결혼을 할 거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스무 살의 지나. 아, 나는 갑자기 닫혔던 기억의 뚜껑이 비스듬히 열리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때, 지나와 내 여자친구, 그리고 형과 콘도에 갔을 때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간섭에서 벗어나 보내는 첫날이라 들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마시고 떠들고 괴성을 지르고 몸을 흔들며 그 밤을 보냈다. 아마도, 그때 내 여자 친구는 미국 유학 중 경험한 코카인에 대해 떠벌렸던 것 같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는 전생 여행 중 나를 괴롭히던 그 장면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지나의 냄새에 익숙한 것은 그때부터일 것이다. 새벽녘 모두들 침대와 소파와 구석에 고꾸라져 정신이 없을 때 그녀가 복도에 나와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휴게실 소파에 그녀를 눕게 하고 정수기 물을 받아다 주었다. 그녀는 형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적으로 멈칫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녀가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라벤더 향기가 내 코를 강렬하게 마취했다. 그 어떤 식물성 물질보다 더 강한 마약에 취해 나는 쓰러졌다. 나는 그녀의 가슴과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깨물었다. 어릴 적 미미의 통통하고 하얀 팔이 생각났다. 지나와 나는 허둥대며 서로를 탐했다. 내부에서 급박하게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내가 그녀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직 일행은 잠에 취해 흐트러진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여자 친구 옆으로 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자 지나는 머리가 아프다며 계속 두통을 호소했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형이 그녀의 머리맡에서 찬 물수건을 갈아 끼우는 동안 나는 스키 장비를 손질했다.
세상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봄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를 보며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지. 너는 하루하루 태양이 지는 시간을 기다리지. 나는 물론 길 위에서 만난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말고 아무 의미가 없어. 그래 우리는 모두 기다리는 삶을 사는 거겠지.
봄의 볼때기가 불그스레 다홍빛으로 번져갔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 말을 내뱉고는 서로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았다.
오후 4시의 태양은 상처의 흔적을 간직하는 시간이다. 왕성했던 정오의 기운이 차츰 쇠잔하여 영광의 기억을 싸안고 스러져가는 시각이기도 하다. 삶이 서서히 쓰리고 아픈 기억을 간직하듯이. 나는 두 다리로 걸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서서히 몸이 굳어짐을 느낀다. 물리치료를 정기적으로 하고, 한방 침술과 약을 먹는다한들 이년 째 막혀버린 혈맥은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남아 있는 희미한 욕망을 지그시 누르며 오후 4시의 기우는 태양을 쳐다본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직하게 그 말을 내뱉으며 신음을 삼킨다.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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