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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젊은시인 집중조명/김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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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24회 작성일 08-03-01 03:07

본문

김지유
가위


잠이 깨면, 나는
그녀의 여자가 아니다, 더 이상
그녀의 뜨개질에 내 치수는 필요치 않다

눈을 감으면 일상의 낮은 숨소리가 톤을 바꾼다 까슬까슬한 털실을 한 코씩 잡아 빼내며 그녀, 침대에 내 머리를 고정시킨 채 깊숙한 박음질을 한다 그녀에게서 도망친 대가, 날카로운 고음의 털실이 자꾸만 귓바퀴에 감겨들고 그녀가 운다, 훌쩍임이 팽팽한 혈관을 관통해 끊임없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나는 통곡하는 그녀 몰래 자아놓은 악몽을 한올, 한올 당겨 풀고 있다

눈을 뜨면, 나는
그녀의 착한 여자가 아니다, 더 이상
그녀의 뜨개질에 망자의 치수는 필요치 않다





꽃뱀


이봐, 우리 오늘 만나지 않을래
굼실거리는 머릿결이 어디라도 감쌀 텐데
잠시만 마주쳐 안겨보지 않을래
걱정 마, 어디 비밀 아닌 게 있겠니
들키고 싶어 안달하게 해줄게
올이 나간 스타킹은 벗어버리고
잠시 동면에서 깨어나 배꼽 위로
똬리를 틀어 칭칭 감아줄게, 만나주지 않을래
수십 개의 혀를 감춘 채 밤마다
이곳저곳 탐하려는 혓바닥에 독은 없으니
봉인 풀려 벌어지려는 도톰한 입술의
여자를, 혼자 두지 말래
탱글탱글한 머릿결이 자연스레 풀리고
얼굴에 분가루도 곱게 먹었는데
하루뿐인 오늘이 끝나기 전에
방금 따른 포도주를 입에 대기 전에
새로 산 코트가 구겨지기 전에
심장에 독을 품고 기지개 켜는 꽃뱀
오늘 미치도록 고운데 
이봐, 지금 만나지 않을래





헤어디자이너 강


굳게 닫힌 대문에 여자가 기대어 있다 반짝이는 공단의 잠옷을 걸치고 방금 사내의 거센 손아귀가 움켜쥐고 뒤흔들던 머리채를 매만진다 머리카락처럼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뒤통수 아래부근에서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힌, 동전만한 빈자리를 발견한다. 일 년이면 서너 번씩 원형탈모의 자리를 감춰주는 헤어디자이너 강에게 전화를 하는 맨발의 여자, 도망칠 때 핸드폰만 가지고 나오면 콜이라는 것을 결혼한 지 일년만에 터득한 여자, 허망한 감촉이 이렇듯 섬뜩할까 사내를 향하는 마음처럼 텅 비었다 취한 사내의 주먹이 독한 데킬라처럼 뽑아내버린 구멍, 연신 스테로이드 주사를 꽂으며 재생을 시도해도 결코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그녀의 성긴 머리카락, 그래도 그녀에겐 헤어디자이너 강이 있어 아무래도 좋다 윤기 나게 찰랑거리는 웨이브 머리를 만들고 그의 침대에서 잠들 수도 있으니 누가 뭐래도 좋다 사내가 골프채를 꺼내드는 사이 현관문 밖으로 내달리던 그 순간보다 어딘가 있을 원형탈모의 구멍을 찾아 손가락을 더듬는 이 순간이 더 두려워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마음을 다잡는다 찢겨서도 빛나는 공단의 잠옷을 여미며 그녀, 보안장비가 지키는 높은 담벼락 대문 아래 기대서서 헤어디자이너 강에게 할부로 사준 사브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다





걸음마 하는 사내


펭귄걸음의 한 사내가 
온몸을 흔들며 출입구를 향해 
길을 오른다, 쏟아지는 눈을
피하려는데, 손에 걸린 
지팡이마저 사내의 걸음을 
지탱시켜주지 못한 채 
공중의 추처럼 흔들거린다
몸으로도 말하기조차 힘겨운 사내
눈송이가 텅 빈 목덜미로 감아드는데 
종종거리는 걸음이 애처로워 
길이 끙끙대며 온몸을 끌어당긴다 
눈이 지나온 길을 다 덮고서야 
아파트 입구에 다다른 사내
열아홉의 첫 경험도 잊고 
중년에 찾아든 젊은 애인도 잊고 
처음으로 돌아와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 
사내의 머리며 어깨며 목덜미에 
희디흰 가제 손수건이 
어머니의 손길로 덮여있다 
쌕쌕거리며 잠시 숨을 몰아쉬는 동안
차가운 눈송이가 천천히 녹아내리며
사내의 등줄기를 쓰다듬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그대를


싫증이 난 복음성가와 함께 성탄 자정이 시들하게 넘어갈 때, 양 볼따구니가 뱃살처럼 늘어진 사내가 몇 시간째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릴 때, 전나무에 감긴 반짝거리는 전구가 사내의 얼굴에 색색의 가면을 씌울 때 졸음에 겨워 촉촉이 젖은 주인 여자가 그의 인내심만큼 미적지근한 맥주를 놓고 사라진다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릴 때, 전구의 붉은 빛이 사내의 눈시울을 적실 때, 여기저기 자리한 남녀를 한 테이블씩 눈여겨보며, 시 쓰는 애인이 대전 산다고 혼잣말로 연신 중얼거릴 때, 이미 마신 술에 취해 고개가 수그려질 때, 까만 안경테마저 주인 따라 취해 하염없이 코끝까지 흘러내릴 때, 서로의 팔짱을 끼고 마지막 남녀가 카페 문을 나설 때, 성탄 음악도 멈추고 홀로 사내 곁에 서있던 화려한 나무의 전구불도 모두 꺼질 때, 사내가 자라목을 하고 낮게 코를 골며 빛 잃은 전나무처럼 추워 보일 때, 위태위태하게 잠든 사내의 손에 꽉 쥐어진 전화기가 몇 시간째 조용할 때, 주인여자가 콜택시를 부르며, 시 원고들이 빼곡히 들어있는 사내의 가방을 챙긴다





아내는 출장 중


양재동 코스트코의 스낵 코너 
엉거주춤한 포즈로 드럼세탁기를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남자 모델
전단지가 붙은 광고판 아래로 
자리 잡은 쇼핑 카트 옆에서, 사내와 
남자아이가 피자와 조개수프를 먹는다
최연소 이사로 승진했다가 문득 정리해고
되던 순간이, 마치 승무원인 아내가 탄 
비행기의 불시착처럼 느껴지는 반백의 사내 
그의 앞에서 게임에 열중인 아이는 
콜라로 뱃속을 채우며, 빈 칸을 메워야 
완성되는 그림퍼즐을 맞추고 있다
아이의 손놀림이 빨라지면서 
조금씩 밀려나오는 엉덩이
예정에 없는 출장을 떠나는 엄마의 
가방에 매달린 아이의 주먹처럼 
바지에 새겨진 명품 로고가 
의자 끝을 간신히 앙다물고 있다
아내와 대화를 잃어가는 사내가 
손바닥만 한 피자 조각을 천천히 삼키며 
계산서를 확인할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집어지는 의자, 콜라를 뒤집어 쓴 
아이가 바닥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는 사내의 
무심한 눈동자, 숙련된 손길로 
팔등신 아내 대신 아이를 달래며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지탱하고 있다






싱글 맘


사내를 잡으려는 눈이 먼 사냥꾼, 사냥감에게 그녀 스스로가 먹히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국제회의 통역을 위해 포스코 국제관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시통역사, 거품 같은 꿈을 하얗게 부풀리며 손끝이 쭈글쭈글해지도록 손을 씻고 있는, 자궁 속 5주짜리 태아의 싱글 맘

그녀가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며 손을 씻는다 비누거품으로 손목에 수갑이라도 채우려는지 오래도록 싹싹 문지른다 밤새 사내와의 대화에 그녀는 입 대신 온몸을 열어야 했다 풀리고 충혈된 눈동자만이 손을 향해 내리깔려 있을 뿐, 숙여져야 할 목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 스스로 머리채를 잡아 뽑는 여자를 말리던 어린 사내의 손아귀, 그녀가 사준 액세서리의 흔적이 항쇄되어 목덜미를 감고 있다 

모델이 꿈이라는 철없는 사내의 떠나겠다는 말에 24평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진 여자, 방충망 덕에 살아남아 그의 긴 발가락을 만져주듯 손가락 마디마디를 닦아내고 있는 중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 곁에서 장발의 사내는 지쳐 잠들고, 그녀의 무게로 뜯겨진 방충망을 억지로 끼워 넣으며 일출을 맞이한 여자, 서른다섯 해를 잠들지 못한 듯 내내 하품하는 그녀의 꿈은, 몸으로 소통할 사내를 만나 그의 품에서 오래도록 누에고치의 잠을 자는 것, 스물여섯의 사내에게 입을 맞추고 오래도록 손을 닦는 여자의 욕실이 고요하다






혈관 찾기


혈관을 찾지 못한 주사바늘이 세 번이나 꽂히다 빠진다 가늘고 구부러진 혈관들이 느른하게 피를 나른다 그녀가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혈관이 터진다 금세 핏줄이 튀어 오르며 피가 솟아올라 손등을 타고 흐른다 

무릎 위에 놓여 있는 신문지 위로 비정규직 사태, 불매운동 선언을 적시며 똑똑 떨어지는 핏방울, 손바닥을 뒤집으니 손금 사이로 피가 고인다 가늘게만 엉켜 무엇을 잡아도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끊어내는 손, 손등에는 멍이 들더니 손바닥에는 잔주름이 진다 주말이면 손바닥을 마주하고 기도를 하던, 순결한 하느님의 교회에 백억여 원의 돈을 기부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문병 온 사내의 협박과 회유에 그녀의 가슴에도 여기저기 붉은 멍이 든다

그녀는 볼록 솟아오른 핏줄을 다른 손바닥으로 꼭 누른다 손금이 한 줄 더 생긴다 잔주름 사이로 피가 고이고 검은 하느님의 기억도 그만큼 고였다 사라진다 결국엔 팔뚝에 꽂힌 바늘을 통해 약이 투여된다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억을 이완시키는 약 바늘이 들어가기에 만만한, 굵고 똑바른 혈관이 그녀의 손등엔 없다






커티 삭*


언제나 시작엔 걸리는 것이 없어
바라는 것도 없어 어디로 가든 좋아

처음 마신 술 한 잔에 취해 속이 울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건드려
잠을 자던 마녀가 저 속에서 꿈틀거려

클레이지 인 러브, 비욘세의 음악에 홀려
귓불을 간질이는 입김에도 쉽게 흔들리고
색색의 불빛이 환하게 쏟아내는 어지러움도 좋아

누구든 머무르지 않아 설레는, 도곡동 클럽 노노스

마주 앉아 채워지는 술 한 잔 따라 마셨을 뿐
늘 새로이 시작되는 마음에 에돌 것은 없어

닿지도 붙잡지도 않은 손가락들, 마녀의 발목을 간질이고

끝이 아니기에 더 빠르게, 서로를 향해 
스텝을 밟으면서도 닿자마자 멀어지는 클럽 노노스.  

*커티 삭(cutty sark) - 아름다운 마녀 혹은 마녀의 빠른 속도를 의미함. 위스키 이름




시인의 말

나의 눈은 도시 한 구석, 결핍과 소외에 의해 파편화 되어가는 어떤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 예리한 조각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은 실상 인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이 도시문명의 부조리에 의한 것이다. 시를 통해 맞추어지는 퍼즐의 그림은 여기저기 금이 가있는, 재건축을 해야 할 잿빛 아파트다. 사람들은 푸른곰팡이가 핀 얼굴로, 데드마스크를 쓴 얼굴로, 냉장고 구석에서 기계에 의해 가공되어 말라가는 햄조각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죽어간다. 누군가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있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각자의 방을 운전하며 단절된 열섬에 유배된 죄인처럼 외로워한다. 아이들에게 자궁과 같아야 할 따뜻한 집은 사라지고, 유희의 공간인 열린 놀이터는 감시 카메라에 의해 감시당하는 공간이 된다. 자본 유통에 의해 인생이 거래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숨어 버리거나 상처에 무감각해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가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결합이다. 가족 해체나 자기 소외에서 오는 부재는 그 깊이만큼 결합에 대한 강한 욕망을 부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러한 상처나 소외를 들여다보려는 몸짓이다. 조각난 삶들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소통 방법인 것이다. 일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현상이겠지만, 바라보는 눈을 고정시켜 진정으로 깊이 들여다 볼 때는 시각으로 볼 수 없는 사물들의 소외와 상처까지도 볼 수 있다. 결국 외부, 타자를 바라보는 눈은 타자의 내부를 거쳐 나의 내부로 향하게 된다. 타자를 바라봄으로써 나와 그들이 하나가 되고, 주변인은 주인공이 된다. 
길거리 쇼윈도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를 보며, 낡은 오피스텔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 남자의 손에 들린 생필품들을 보며, 우리는 지난 시간과 경험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 내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보는 대상은 앞에 있지만,바라보기에서 느껴지는 즐거움 혹은 고통은 바라보는 그 대상이 자신과 일치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시인이 외로운 이들의 소외나 상처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다양한 형태로 분열된 양상을 보이는 도시인들의 소외와 고독을 철저하게 들여다보고 그들과 소통함으로써 시인은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다. 물론 그것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결코 즐겁거나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동시에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썩고 문드러진 상처라 한들, 아파하기만 할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무엇이 돋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조각난 파편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세계, 수많은 타자의 조각들을 바라보는 자이다. 타자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결국 우리가 떨어져 나온 무엇으로 돌아가,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불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자신의 자아가 그 본질을 기억해 낼 때, 우리 자신인 ‘타자’가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다. 타자의 모습이란 결국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것을 정성들여 바라봄으로써 단순한 흡수통합이 아닌, 각각의 조각이 삶의 주인인 퍼즐을 완성시키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작업이다. 사물이나 사람들이 수많은 순간 속에서 바라보기로 진실하게 결합될 때, 그것이 현대인의 소외를 감쌀 수 있는 소통의 한 방식이 될 것이다.



김지유
1973년 서울 출생
2006년 ≪시와 반시≫ 겨울호 등단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추천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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