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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신작시/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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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죽은 시의 나라․1
한밤 골짜기에 귀신들이 모였습니다. 잘난 귀신 못난 귀신 스타귀신 걸레귀신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신이 나게 떠들고 자랑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난리 법석이었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온통 들썩거렸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들은 분명히 그들로 인해 세상이 들썩인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발아래에서 새들은 곤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새벽까지 결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네 발 달린 짐승들도 그 골짜기에 저희끼리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반역을 도모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의 반역은 대부분 무모한 것이었지만 성공하든 실패하든 귀신들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었습니다.
새벽과 함께 건너편 골짜기로부터 나그네 휘파람 소리 들려올 즈음에 귀신들은 제풀에 지쳐 하나둘 제 갈 길로 흩어졌습니다. 새들이 노래를 시작하고 짐승들이 밥벌이를 시작할 즈음에 귀신들은 머쓱해진 얼굴을 하고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을 돌아보면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살아서 귀신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생명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죽은 시의 나라․2
허공에 떠올라서 공허를 즐깁니다.
고층아파트의 꿈은 착륙이 없습니다.
이미 교회의 첨탑 끝 십자가를 훌쩍 넘어선
무모한 상승은 아직도 욕심껏 비행 중입니다.
무엇이 불안하냐, 공포 속에서 되묻습니다.
얼굴이 없는 위대함은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절대적 한계 이상은 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고
절대적 한계 이하는 인간의 몫이라 억지를 써서
아무렇게나 몸마다 위대성이 딱지 붙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외쳐본들 우물 안 개구리지요.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외. 장편소설 '순애'.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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