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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신작시/정낙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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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11회 작성일 08-03-01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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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추
秋夕달은 좋습니다


유난히 심했던 가뭄 끝
겨우 팬 난쟁이 똥자루만한 벼이삭과
서둘러 꼬투리를 맺은 밭곡식과는 달리
추석 달은 잘도 여물었습니다
허전한 가을마당을 생각하면 밥숟갈도 헛손질 되지만
달이 저리 밝고
명절이라고 고향집을 찾은 가족들을 보면
둥그런 달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밤이 이슥하도록
고샅을 오가는 왁자한 발자국 소리
사람 사는 동네 같아 컹컹컹 개마저 신이 난
팔월이라 열나흘 밤
마루에 둘러 앉아 빚는 송편 속에
딸애들은 고달픈 객지 생활을 웃음으로 버무려 넣고
나는 아무도 몰래 달빛과 한숨을 섞어 넣습니다
풍년이던 흉년이던 앞이 막막하기는
그믐밤 같은 세월
그래도 해마다 풍년은 들고 봐야지 하면서도
금방 뿔뿔이 흩어질 게 뻔한 가족들과 함께
내년에도 이렇게 추석달을 볼 수 있을까
자꾸 방정맞은 생각을 하는 내게
딸애는 철딱서니 없이 제사상에 놓는다면 사온 바나나를
뚝 떼주며 먹으라고 조릅니다
집집마다 고소롬한 부침개 냄새가 등천하면
점점 부풀어 터질 것만 같은 추석달
어쨌든 좋습니다





주름살

평생 당신이 경작한 밭입니다
당신이 갈아엎은
밭두둑은 햇빛입니다
밭고랑은 달빛입니다
달빛이 넘실대는 밭고랑에 고인 당신의 눈물을
아무도 닦아 주는 이 없었습니다
햇빛 가득한 밭두둑이 그 눈물을 조용히 받아줬습니다
눈물이 고였다 마른 밭고랑은 점점 깊어지고
밭두둑은 점점 높아집니다
높아진 밭두둑은 햇볕에 검게 그을리고
깊어진 밭고랑은 달빛에 처연합니다

햇빛 속으로
달빛 속으로  
당신은 이제 떠나갑니다
당신의 밭은 비로소 판판해집니다
그곳에서도 당신은
밭두둑에 씨앗을 심고
밭고랑에 눈물로 물을 댈는지요



정낙추
충남 태안 출생. 2002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작품 발표하며 문단 활동 시작. 시집 '그 남자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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