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7호 신작시/박후기
페이지 정보

본문
박후기
크레바스
아스팔트 도로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구덩이 속으로 쳐 박혔다. 집중호우 때 생긴 틈으로 물살이 파고들었고, 아스팔트를 떠받치고 있던 흙과 자갈이 떠내려갔다. 아스팔트 포도는 한 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자동차는 그곳이 바닥인 줄 알고 달렸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대륙은 맨틀 위에 떠 있다. 나는 가끔 발아래가 의심스럽다.
저수지 중앙은 얼지 않았다. 저수지가 숨을 쉴 때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물고기들은 얼음장 밑에서 행복했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산다.
고상돈은 매킨리봉 크레바스에 빠져 죽었다. 자일에 매달려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인지, 올라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들이 나는 곳이 모두 하늘은 아니었다.
왜가리
목발을 짚고 네가 온다. 너는, 절룩거리는 식탁처럼, 불편하게 뵈진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암에 걸려 胃를 모두 잘라낸 사내는 식도만 남았다. 목이 길어지고 얼굴은 점점 작아졌다.
박후기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신동엽 창작상 수상.
추천43
- 이전글27호 신작시/채은 08.03.01
- 다음글27호 신작시/정낙추 08.03.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