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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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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67회 작성일 08-03-0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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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김상미의 작가앨범① ―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를 타고



피할 수도 피하고 싶지도 않은 마력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프란츠 카프카만큼 나도 고독해져 잘디잔 빗방울에도 무수히 찔려 피를 흘린다. 이런 날은 유령과의 데이트로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한때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유령들. 그들을 만나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려야 한다. 나는 옷장 깊이 처박아 두었던 레인 코트를 꺼내 입고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향해 나아간다.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를 타기 위해, 그 열차를 타고 카프카를 만나보기 위해, 카프카가 잠들어 있는 프라하의 슈트라슈니처 묘지에 가보고 싶어, 그 묘지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들어내는 적막의 꽃다발을 꺾어보고 싶어, 나는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에 내 두 발을 올린다.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는 크리스티앙 가르생의 소설 <열차에 오르다>에 나오는 뮌헨과 프라하 간 도시 순환 특급열차이다. 그러나 이 열차는 소설 속에 나오는 가상의 열차가 아니라 실제로 프라하에서 한동안 운행되다 2001년 말에 없어진 열차다. 상상만 해도 신기하다. 어떻게 열차 이름에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을 사용할 생각을 다 했을까? 그것도 두 도시, 아니 두 나라 사이를 정확한 시간에 운행하는 열차에. 그러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 이상한 힘이, 카프카적인 어떤 마력이 작용해서 승객들을 죄다 바퀴벌레나 쥐, 개, 원숭이, 두더지(카프카 소설 속 동물 주인공들)로 바꿔놓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도 나는 꼭 한 번 그 열차를 타보고 싶다.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의 열차를 타고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빅토르 위고’나 ‘괴테’, ‘체 게바라’, ‘아인슈타인’이란 이름의 열차를 타고 내다보는 바깥 풍경과는 분명히 다르고 흥미진진한 스릴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설사 그 열차가 유령열차이거나 마력열차인들 어떠랴. 프란츠 카프카란 작가 자체가 이미 피할 수도 피하고 싶지도 않은 ‘마력’인 것을!)


이방인보다 더 낯선 자

상상 속의 열차 안은 텅 비어 있지만 내가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엔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러니 그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셈이다. 나와 함께 열차를 타고 프라하를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의 많은 말이 담긴 듯한 크고 검은 눈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가 쓴 「인디언이 되었으면」을 나직이 읊어본다.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거듭 짧게 전율해 보았으면, 마침내는 박차를 집어던질 때까지, 박차가 없어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고삐가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 목덜미도 말 머리도 없이.


말 목덜미도 말 머리도 없이 허공 중으로 사라지는 인디언처럼 열차는 계속해서 프라하를 향해 잘도 달려나간다. 나는 차창 밖 지속적인 매력에 나 자신을 맡긴 채, 그가 유일하게 거부감 없이 마지막까지 마셨다는 레몬 주스 한 모금을 마신다. 달콤새콤한 레몬 주스 향이 코끝을 찡, 하고 울린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3천 통이 넘는 일기와 편지글까지 포함) 읽으면 읽을수록 더 선명해지고 현실감의 부피 또한 더 확실해진다.

열차는 어느새 체코의 프라하에 닿아 크게 심호흡을 한다. 나는 열차에서 내려 체코의 프라하, 아니 카프카의 프라하에 두 발을 디딘다. 그가 생애의 마지막 여덞 달을 제외하고는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다는 프라하. 맹수의 발톱을 가진 어머니가 되어 그를 덥석 한번 물고는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는 白塔의 고도, 프라하. 스메타나의 아름다운 몰다우 강이 흐르는 빨간 뾰족지붕의 도시, 프라하. 나는 그로 인해 불멸의 도시가 되어 버린 프라하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아, 이곳이 카프카의 프라하구나.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세와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천년의 고도, 프라하.

나는 몰다우 강을 따라 그가 태어난 유대인 빈민 지역(게토)이 있었던 구시가지로 들어선다. 그는 1883년 7월 3일, 프라하의 구시가지 성 니콜라우스 사원 관할구의 ‘춤 투룸'하우스 2층 27호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무렵의 19세기 말 프라하는 다양한 인종들과 언어, 정치적․사회적 이념들이 한데 얽혀 공존하던 보헤미아 합스부르그 제국의 일부였다. (그 즈음의 프라하 유대인 빈민 지역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골렘>을 읽어보면 그 지역이 어떠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는 그 지역을 악마적인 지하세계요, 고뇌에 차 있는 빈털터리의 장소요, 환영 같은 지역으로, 그곳의 무시무시함이 그 자체의 철거를 초래한 듯이 보이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곳에서 그는 체코 출신 유대인으로 독일어를 말하는, 그래서 체코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닌 ‘이방인보다 더 낯선 자'로 살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을 향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문학’이다. 문학 아닌 모든 것은 내겐 지루하고, 따라서 나는 그것들을 혐오한다.

자신을 문학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남자. 문학 외엔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다는 남자. 평생을 글쓰기 외에는 어떤 기쁨에도 마음을 쏟지 않았던 남자. 글쓰기를 못하게 막는 것은 자신을 산 채로 토막토막 내는 것이라고 말했던 남자. 언제나, 늘, 보이지 않는 문학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온몸에 전율을 느끼다가도 누군가가(그 사람이 사랑하는 여인일 경우에도) 그 사슬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온몸으로 방어했던 남자. 그야말로 문학에 미친 남자. (내가 알기로도 그만큼 제 자신을 그렇게 문학으로 찢어발긴 작가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문학밖에 모르고 문학밖에 없었던 남자. 낮에는 ‘산업재해보험 공단'에서 법을 다루는 일을 하고(그는 직장에서도 도무지 그에게는 적이라곤 없었다) 밤에는 오로지 글에만 매달렸던 남자. 그럼에도 실생활은 모범적이었으며 몰다우 강에 전용 보트 한 척이 있을 정도로 보트 타기와 스포츠를 즐겼으며 언제나, 누구에게나(그의 가족들을 제외한)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했던 남자. 그가 어떤 사람이었나 궁금한 사람은 그의 평생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의 말을 들어 보라. (그 둘은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부러울 정도로 자주 만나면서도 사심 없이 마음의 편지를 교환한 참으로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우리가 ‘프란츠 카프카의 발견'이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된 것도 오로지 막스 브로트의 업적이다. 그가 카프카의 유언대로 카프카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에게서는 내가 그 후 아무리 훌륭하고 저명한 사람들을 만나도 다시는 접해보지 못할 뭔가 비범한 강렬함 같은 것이 자주 흘러나왔다……. 그는 결코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서 나온 것은, 여러 해를 두고 볼수록 점점 자연스러워져 갔는데, 그가 세상을 보는 귀중한 표현이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아주 특별하고, 끈기 있고, 삶을 선선히 받아들이며, 세상의 어리석음에 대해 반어적으로 관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도록 유머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것', 진짜 알맹이를 소홀히 하지 않는, 따라서 언제나 권태나 냉소주의와는 무관한 그런 것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일상이 달라졌고, 모든 것이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으며 새로웠다. 종종 몹시 슬프게 새로웠고, 실로 정수리를 치듯 새로웠다. 어쨌든 카프카는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독특하게 영향을 미쳤다. 당시 그의 문학작품은 나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작품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라는 인간 자체가 영향력을 가졌다. 그는 아주 수줍어하면서 자리에 등장했는데도 중요한 사람들은 그가 어딘지 특별한 사람이란 걸 금방 알아보았다.

― 막스 브로트, 『프란츠 카프카, 전기』중에서


작은 우화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냉소와 권태 없이 진짜 알맹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 그러하기에 그는 알면 알수록(글과 사람 모두) 정수리를 치듯 새롭고 어딘지 모르게 특별하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늘 우리를 강타한다.

생전에 그는 7권의 책을 출간했다. <관찰>(1912), <화부>(1913), <변신>(1915), <판결>(1916), <유형지에서>(1919), <시골 의사>(1920), <단식 광대>(1924, 사후에 나옴).

그 중 <판결(=선고)>은 하룻밤 새에(1912년 9월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6시까지), 단숨에 쓰여졌다. 그 소설에서 그는 자신의 영혼(정신세계)의 세계지도 위에 길게 드러누운(점령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했다. 아버지를 사랑했으나 아버지의 사랑을 끝내 받아낼 수 없었던 게오르그(주인공의 이름)를 통해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거대한 절망감을 표현해냈다. 나는 그의 소설 중 단 3일 만에 썼다는 <유형지에서>의 공포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처음 그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었다. 어쩌면 그렇게 말 수 적은 언어로 그토록 서늘하고 예리하게 순수한 공포를 표현해낼 수가 있는지…….)

그는 정말 대단한 관찰자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인간의 태도에서 전통적인 버팀목을 제거해 버리고 나서 그것을 끝없는 숙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는지…….

그가 창조해낸 그레고르 잠자(<변신>)와 게오르그(<판결>), 요제프 K(<소송>), 시골 의사, 그리고 <성>의 K……등은 그가 죽고 난 뒤 약 30~40년이 지난 후 온 세계를 점령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많이 연구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은 모두 그를 가리켜 입을 모아 말한다. “20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고독한 현대인의 두려움을 그만큼 강렬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토록 진지하고 문학적이고 분명하면서도 악몽처럼 표현해낸 인물도 없다”고.

나는 최근에 <변신>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우화」란 글을 발견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이 짧은 글 속에 그의 모든 작품세계가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아!”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에는 하도 세상이 넓어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저 멀리 좌우로 벽이 보여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서로를 향해 마주 달려오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구석에는 내가 달려들어가게 될 덫이 놓여 있다.” “너는 오직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곤 쥐를 잡아먹었다.

그의 글은 이렇듯 대개가 멀쩡히 눈뜨고 겪는 악몽과도 같다. 누가 그랬더라. 그를 가리켜 조나단 스위프트 이래로 어떤 유럽 작가도 비현실적인 것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그와 같은 박진감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주관적인 것이 그와 같이 현혹적인 객관성으로 제시된 적도 좀체 없었다고. 그만큼 그는 우리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투명한 일상어로 표현해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24년간 법과 관련된 관리로 일하였다(14년간 근무한 ‘산업재해보험 공단’을 포함해). 그런 그를 가리켜 어떤 이는 ‘카프카, 평생을 권력과 싸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주 작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위대한 이들은 경탄과 함께 혐오를 남기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에겐 어떤 혐오감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연민에 가까운 뜨거움이 내 목을 칼칼하게 했다. 그가 사랑한 여자들 대신 문학을 택했을 때도, 그 사랑이 자신을 베어내는 칼이 되길 원했을 때도…… 나는 충분히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으로 사랑한 듯한 밀레나 예젠스카(그녀는 그의 작품들을 체코어로 번역했으며, 그로 하여금 불멸의 명작인 <성>을 쓰게 만들었으며, 그 소설의 여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하다)의 말(“그에게는 최소한의 은신처도 도피처도 없다. …… 그는 마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만 벌거벗고 있는 것 같다. …… 아름답든 비참하든, 그는 삶을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그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존재 그 자체다.”)처럼 그의 유일한 피난처는 책상뿐이었다. “작가의 삶은…… 책상에 달려 있다. 작가가 정신착란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결코 책상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이를 악물고서 책상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 그는 글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생에 대한 어떤 조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싶어하다, 마흔한 살인 1924년 5월 17일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나는 목이 밧줄로 묶인 채 어떤 집의 일층 창문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런 동정심도 없고 무자비한 사람에 의해서 피가 흐르고 사지가 절단되면서 천장들과 가구들과 벽과 다락방을 뚫고 끌어 올려진다. 그러다가 내 신체의 마지막 조각들이 기왓장을 뚫을 때 빈 올가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마침내 지붕 위에 안식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 유대인 공동묘지인 슈트라슈니치에 묻혀 있다. 그의 무덤 앞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놓고 간 돌과 편지들이 가득 쌓여 있다. 그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곳에서도 늘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먼 나라의 회전의자에 앉아 사무실 창 밖으로 사탕수수밭이나 회교도의 묘지를 내려다보는― 아주 작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꿈에 취해 있을까?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 여름호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추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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