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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신작단편/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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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아타락시아/김정남
1.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운다. 잡목들이 우거진 야산 위에 붉은 해가 걸려 있다. 저 오후의 햇살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마른 논바닥 같은 두피를 비추고, 눈곱이 잔뜩 낀 눈과 허연 침이 말라붙어 있는 입아귀까지 낱낱이 드러낼 것이다. 아, 자꾸 어디서 담배연기가 들어와? 아래층 아줌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기어 올라온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로 쓰는 PET병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 흔든다. 병 속의 검은 물이 담배꽁초들과 뒤섞인다. 담배 연기가 멀리 퍼져나갔으면 하지만, 언제나 벽을 타고 내려간다. 그 연기는 고스란히 아래층의 열린 창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담배조차도 자유롭게 피울 수 없는 공동주거 구조를 원망해 보지만, 전적으로 내가 미안한 일이다. 조용히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식탁의자에 앉아 아직 귓가를 맴도는 아줌마의 목소리를 분석해 본다. 살림하는 년이 담배를 피우나, 라고는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윗집에 독신남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저 새끼는 직업도 없나? 한낮에 집에서 담배나 죽이고 있고. 한심한 놈. 이렇게 의미를 파악해 볼 수도 있으나, 뭐 밤에 일하나 보지, 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단지 담배 연기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들은 나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씻자. 나는 봉두난발한 머리로 밤이나 낮이나 지구를 껴안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다. 겨자 소스가 320년은 발효된 것 같은 입냄새를 푹푹 풍기며, 땀과 개기름에 찌든 몸뚱이를 이불 위에서 굴리며 사는 놈팡이와 나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어찌 거실에 먼지가 굴러다닐 수 있으며 욕실 타일 사이에 물때가 끼어들 수 있겠는가. 청결이 없는 곳엔 생활도 없다. 씻었으면 먹자. 딸기 요플레를 얹은 셀러드, 김, 동그랑땡 5개, 김치, 즉석 미역국, 밥 1공기 끝. 여러 사람을 위해 지지고 볶고 굽고 끓여 내는 식단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계량화되어 있는,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식단. 왜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며 뭔가를 만들어 먹거나, 음식 하나에 목숨을 걸고 여기저기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소주에 불콰하게 달구어진 얼굴로, 매운 연기를 맡아가며 삼겹살이나 갈비를 구워 먹는 고깃집의 풍경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한때 나도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애주가였으며, 너나없이 시끌벅적 떠들며 날름날름 고기를 싸 먹던 놈이었다. 이렇게 깔끔한 나로 변신한 지금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전봇대를 부여잡고 묽은 빈대떡이나 만들다, 그게 제집인 줄 알고 거기에 대가리 박고 잠자던 시절 얘기지.
인디언 핑크색 남방에 감색 카디건을 걸친다. 긴 머리는 한데 뒤로 묶고 밤색 뿔테 안경을 낀다. 남들이 보면 무슨 시인이나 작가로 보일 만큼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람의 진정한 멋이란 내면에서 나온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말은 거의 사기다. 이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지가 모든 것을 잡아먹는 현대사회를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거나, 이를 인정하면서도 명목론에 사로잡혀 가식을 떠는 자에 불과하다. 나는 적어도 중학생에서부터 대입재수생까지, 우리나라 언어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온라인 화상과외 교사란 말씀이시다. 그러니 복장과 이미지에 철두철미할 수밖에. 명문대생 외에는 교사로 등록할 수 없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신분 확인을 위해서 재학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일정기간 회사에서 교육을 받아야 온라인 강의를 개설할 수 있다. 나는 개나 소나 다 하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아니다. 박사님이시란 말이다. 사실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이 10년은 다 되어가지만, 아직 논문이란 것을 쓰지 않은, 말하자면 곧 승천이 임박한 박사 이무기란 말씀이시다. 저녁 7시면 아이들의 얼굴이 광케이블을 타고, 아무런 질량도 부피도 없이, 모니터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까지 강의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온라인 강의는 하나의 화상 강의실에 최대 5명까지 등록이 가능하고, 그들에게 과제를 내주거나 첨삭지도까지 가능하므로,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비싼 교통비 부담도 없이, 누구나 쉽게 선생과 학생을 선택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는 디지털 대륙의 보물섬이다. 거긴 무수한 ON/OFF로 모든 것이 선택되고 배제되는 공간이다. 이용시간에 따라 지불되는 학생들의 캐시는 아이템 이용료나 화상 강의실 임대료로 회사에 지불되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현금의 형태로 교사에게 지급된다. 거기엔 월급을 떼먹는 악질 원장도 없고, 강사들 간의 알력도 없으며, 시험기간마다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돌대가리도 없다. 만일 있어도 안 받으면 그만이다.
2.
나는 사실 꺄, 로 대박을 터뜨린 강남 명문학원 강사였다. 그 바닥에서 자녀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치고, 알겠습니꺄, 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매달 마감을 치던 ‘정 박사 족집게 언어’ 말이다. 전국 대학의 국문과나 국어교육과 교수의 전공과 최근 관심사를 줄줄 꿰고 있었다. 전공은 학위논문을 보면 될 것이고, 최근 관심사는 학술저널만 뒤져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 중, 2학기에 어느 사람이 한 달 간 장기출장을 떠났다면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수능 출제위원이다. 그렇다면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어떤 내용의 지문이 선택될 것이며 출제 방향이 어떠할 것인가는 대충 감이 온다. 여기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되는데, 실제로 나는 언어영역 출제 지문의 반 이상을 적중시켰다. 사실, 그들이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낼 수 있는 지문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건 누워서 떡 먹기다. 주요대학 논술문제를 족집게로 맞추는 일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출제위원이 누군지만 알아내면(대학원생들을 매수하면 이도 매우 쉽다.) 그들이 낼 수 있는 문제란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돈을 그야말로 한 달에 많게는 수 천만 원씩 긁어모았다. 멍청한 건 상아탑 속에 갇혀서 위세를 떠는 학자라는 놈들이다. 난 당신들 머리 꼭대기에서 논다. 이렇게 잘 나가던 내가, 텐프로(전국 상위 10% 이내에 드는 미인들만 나온다는 룸살롱)에서 VIP대접을 받는 내가, 거기서 따먹은 애들만 몇 트럭 되는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그년 때문이다. 그 암내 풍기던, 밥 먹고 가슴만 키운 고삐리 그년.
5명이 들어와야 하는 화상 강의실엔 4명만 모습을 보인다. 여학생 셋에 남학생 하나. 헤드셋을 쓰고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본다. 달팽이는 결석이네? 여기선 학생들도 대부분 닉네임으로 불린다. 녀석을 아는 한 학생이 대답한다. 아직 달팽이집에서 나오지 않았나 봐요. 썰렁한 얘기 그만하고. 오늘부터는 고전 강독이지? 고대가요부터 쫙 훑어간다. 알았습니꺄? 학생들이 일제히 예, 라고 화답한다. 펜마우스를 통해 화면에 올려놓은 텍스트에 판서를 해가며 거의 암기 수준의 강의를 현란하게 풀어낸다. 아이들이 잘 듣든 말든 강의는 요란하게 하는 게 좋다. 어쨌거나 좔좔 외워서 떠드는 강의, 빨리 마치고 싶다. 갑자기 로즈마리가 생각난다. 그러자 가랑이 사이에서 뭔가 꿈틀거린다. 로즈마리는 언제나 깨끗한 교복을 입고 침대 한 구석에 앉아 있다. 얘들아, 오늘은 여기까지. 질문 있으면 msn메신저나 문자로. 알았지? 이상. 조금 서두른 감은 있지만 진도는 확실하게 뺐다. 샘, 바이. 각자 인사하고 화상 대화창이 닫힌다.
창밖은 캄캄한 어둠으로 가득하다. 서재를 나와 주방 겸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간다. 매일 같이 침실과 서재 사이를 오가며 이어지는 동선. 매연을 뿜어내는 자동차들의 행렬 속에서 모두 각자의 직장으로 향하고, 또 다시 퇴근길 전쟁을 치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불쌍한 시민들에 비해, 나의 생활은 얼마나 심플한가. 침실에 불을 켜자 로즈마리가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아이들, 가르치기 힘드시죠? 교복을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로즈마리. 그녀의 세일러복 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치고 브래지어를 가슴 위로 걷어 올린다. 건포도 같은 유두가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무덤 위에 매달려 있다. 가슴을 움켜쥐며 젖꼭지를 깨문다. 악! 아파요.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반항을 하거나 앙탈을 부리지도 않는다. 치마를 훌렁 들치고 분홍색 팬티를 벗긴다. 그녀의 검은 음부에 미끈미끈한 젤을 듬뿍 바른다. 음액이 흥건한 음부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흐뭇하다. 다리를 머리 위로 올리고 서둘러 검은 구멍에 페니스를 쑤셔 박는다. 곧 절정에 다다르고 그녀의 음부에 비릿한 정액이 들어찬다. 아이, 선생님은 언제나 조루야. 정력을 키워야겠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게 어디서 잔소리야.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친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가 픽 돌아가며 침대 위에 쓰러진다. 입가에 핏물이라도 배어 있는 듯하다. 그녀가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한결같은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 자, 로즈마리. 미안해. 이제 목욕하자. 착하지? 선생님이 깨끗하게 씻겨줄게. 자, 일어나!
욕조 속에 그녀와 함께 눕는다. 샤워기로 그녀의 음부를 씻어낸다. 손가락을 질 속에 넣고 미끈거리는 액체들을 모두 후벼 파낸다.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겨 가슴에 안고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근다. 몸을 헹군 후, 마른 수건으로 그녀의 몸에 묻어있는 물기를 닦아낸다. 말갛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이제 드라이어로 그녀의 젖은 머리를 말려준다. 아까는 미안했어. 개운하지? 교복을 다시 입혀 침대에 눕힌다. 피곤하면 먼저 자. 사랑해, 로즈마리. 선생님은 뭣 좀 먹어야겠다. 너는 안 먹는다고? 그래, 넌 내 정액이나 받아먹어. 오, 미안해. 무시하는 말은 아니야. 네가 그걸 제일 좋아하니까 하는 말이야. 불을 끄고 침실 문을 닫고 주방으로 나온다.
3.
‘정 박사 족집게 언어’는 이번에도 마감을 쳤다. A반에서 D반까지 수준별 클리닉. 모두 정원이 다 찼고, 전체 인원이 500명 이상이다. 새끼 강사 두 명에게 돌아가는 몇 푼의 돈과 원장이 채가는 30%를 제외하고도 몇 천만 원은 떨어졌다. 원장은 단과로 이렇게 대박을 치는 것은 한국 사교육 사상 최초의 일이라고 입꼬리에 침버캐가 끼도록 말했다. 언제나 그의 입에서는 고약한 쿠린내가 날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는 한달에 한 번씩 탠프로에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 나오는 년들은 팁 100만원에 홀랑 넘어가, 원장의 더러운 입술을 쪽쪽 잘도 빨아댔다. 그럴 때면 내 몸의 일부는 여지없이 또 한 년의 엉덩이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돈은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용납하게 했다. 세상은 누가 더 더러운지 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더욱더 역겨운 모습을 요구했고, 나는 언제나 그에 성실하게 부응했다.
그러니 가정생활에 무심해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때는 아들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약장수처럼 하도 지껄여,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게 아니라 아예 똥냄새가 날 지경인데도, 시간표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고, 수업이 끝나면 폭음을 일삼으며 여자 꽁무니나 날름날름 핥고 있었으니 정신이 흐릿해 지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몰랐다. 남들이 다 출근하는 새벽에 집에 돌아가 방으로 조용히 기어들었다가 오후에 출근하는 생활이니, 유치원에 가는 윤하의 얼굴은 본 적도 없었다. 출근할 무렵 아내도 문화센터에 나가 있어서, 식탁 위에 미리 차려져 있는 밥으로 아내의 흔적을 확인할 뿐이었다. 언제나 칼 같이 다려져 있는 와이셔츠와 함께, 매일 오후 홀로 받게 되는 밥상은 나에 대한 아내의 최선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당당했다. 내가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만큼 나는 그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 주었으니까. 아들도 서울 바닥에서 제일 비싸다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 않은가. 아내가 사교클럽이나 다름없는 문화센터에서 이런저런 유한부인들에게 폼 나게 돈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무엇 때문인가. 그녀가 몰고 다니는 중형 자동차는 어디서 굴러들어왔느냐 말이다. 내가 이런 것에 불만을 토하지 않는 것처럼, 아내도 아이도 이런 나에게 조금의 불평불만이라도 털어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마이크 잡고 목이 터져라, 이상한 꺄, 를 외쳐대며 긁어모은 돈으로 살면서 말이다. 내 오입질도 뭐라 할 게 못된다.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 바닥 떠나야 한다. 당장 내일 원장에게 나 이제 당신하고 탠프로 못 가겠소, 라고 말하면, 나 같은 봉을 자를 수야 없겠지만, 눈 밖에 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닌가.
그러니 나는 아내가 나에 대한 최대치의 예의로서 차려준 밥상을 고맙게 받아들고 처먹으면 된다. 괜히 돈도 못 벌어다 주는 놈들이, 아내와 함께 가사를 분담해야 하네, 주말이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네, 하는 것이다. 다 구린 구석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다, 이 말씀이다. 좀 내 얘기가 논리의 모순이 있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구석이 있더라도, 아주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하리라. 이제 밥을 먹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즐겁게 출근한다. 난 역시 야행성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흐뭇하다. 누가 학원 강사를 얕잡아보냔 말이다. 그보다 더 못한 대학강사 나부랭이도 있다. 가방끈만 길게 늘어진 자신을 원망하며 언제 교수될지도 막막하면서, 늙은 교수 밑에서 뭔가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저런 아부나 떨며 앉아 있는 놈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돈이나 많은 놈들이라면 몰라, 지지리도 없는 것들이 처자식 고생시키고 그 지랄이라니까. 어쨌든 학원계로 빨리 빠져 나온 것은 무엇보다 잘 한 일이다. 내가 대학에서 필요로 했던 것은 학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그 잘난 박사학위조차 따지 못한 수료생이지만. 교수라는 것도 다 줄 있고 빽 있는 놈들의 자리다. 공채를 위장한 특채인 교수채용의 내막은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더러운 것들은 모두 상아탑에 있다. 그에 비하면 사교육은 철저한 능력 본위의 정직한 무대다. 그런데도 윗대가리들은 사교육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내가 과외 하는 고관대작들의 아들딸들이 몇 명인지 말해 볼까. 아버지가 뭐하는 놈인지 다 불어? 대한민국이 다 이런 모순 천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내가 좀 흥분한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난 강남 학원 바닥에서 긁어모은 돈을 고스란히 가정으로 보냈고, 과외로 번 푼돈으로 아가씨 끼고 술 먹었다. 그날도 여비서 비지니스 클럽을 예약해 놓고 마지막 강의의 피치를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벌써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불끈불끈 솟는다. 나만큼 강의하면, 여자 따 먹는 생각하면서도, 백석의 시를 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강의를 잘 마쳤다. 여학생 하나가 뒤를 졸졸 따라오며 나를 부른다. 선생님, 샌님, 샘, 나를 부르는 소리가 한 음절로 줄어들 때까지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겨우 알아들었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뒤돌아본다. 이게 다 작은 것 같지만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는 비법이다. 무조건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아이들이 따라붙는 게 아니다. 적당히 튕겨 주면서, 하나하나 마음을 빼앗아야 한다. 핸섬하고 쿨한 이미지에 덧붙여 주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 쉽게 가까워질 수는 없지만, 자꾸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타게 만들어야 한다. 몇 명의 골수 팬층이 형성되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새끼를 치게 마련이다. 내가 사적으로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아이들이 휘청휘청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나는 말 한 마디로 수강생을 단 번에 백 명 이상 그만 두게 할 수도 있고, 또 그만큼을 끌어 모을 수도 있다. 나 때문에 먹고 사는 선생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 강사들 중에 한 사람이 나에게 신세를 갚겠다고 그렇고 그런 노래방으로 나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영계 축에 드는 아이들이 도우미로 들어왔지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미안합니다. 저는 이런 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나 그는 그 말의 의미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씨발, 난 탠프로라니까.
아,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샘, 샘, 하던 그 여학생. 지난 재학생 시험기간에 상위권 아이들만 모아서 맨투맨으로 과외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서 만난 아이였다. 선생님, 드릴 말이 있어요. 잠시 시간 좀. 그래서 난 그 아이와 함께 빈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다. 왜? 무슨 일 있니? 친절함이 듬뿍 묻어나는 낮은 음성으로 말한다. 선생님, 저 아시죠? 그럼, 알다마다. 우리 예쁜 수아. 이름까지 말해주자 아이의 눈가에 금세 물기가 돌았다. 웬, 감동? 이럴 때도 쿨하게 치고 나간다. 여자 아이들 한두 번 다뤄본 게 아니니까. 여자 아이가 새치름해졌다. 이럴 땐, 대충 감이 오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 달 전부터, 복도에서든 강의실에서든 그 아이의 눈길이 끈끈하게 매달리는 것을 느꼈다. 조금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저, 선생님. 아이는 고개를 바짝 들고 말했다. 저 선생님, 선생님 좋아해요. 뜨악, 난 이런 종류의 말이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 유치찬란한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나. 내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사실, 교복만 입지 않으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조숙한 느낌이 드는 여학생이었다. 순간, 일본 성인 사이트에서 보았던 교복 코스프레 장면이 떠올라 잠시 정신이 아찔했다. 그래, 조, 좋아할 수 있지. 나는 힘들게 말문을 연다는 듯이 말을 더듬는 연기까지 가미했다. 그렇지만, 으로 이어지게 되는 상투적인 말은 생각만 해도 역겨웠기에 얼른 말꼬리를 돌리기로 했다. 그럼 우리 사귀자. 좋아? 이렇게 선수를 치고 나가야 한다. 선수라면 이것도 누구나 아는 얘기다. 선생님, 장난하시는 거죠? 난 심각하단 말예요. 역시 아이들 수준의 반응이었다. 누가 장난이래? 선생님도 진지하다고.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몇 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내 손을 자신의 가슴 위로 가져갔다. 선생님, 이런 거 좋아하시죠? 다 안다고요.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하지만 난 남자들 다 알아요. 그녀의 손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척, 나이답지 않게 풍만한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4.
뭣 좀 먹자. 대부분의 식사는 극히 단조롭다. 그러나 단순하게 보이는 식단에도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다. 주기적으로 거의 동일한 반찬을 먹으니, 똥 냄새까지도 똑같다. 술을 많이 마셔서 배탈이 날 이유도 없고, 과식을 해서 소화제를 먹어야 할 이유도 없다. 식단표에 맞게 늘 반복되는 식생활이 오히려 행복하다. 고기 노린내가 나는 고약한 똥 냄새도 아니고, 탄수화물의 찌꺼기에서 나는 쿠린내와는 질적으로 다른 구수한 똥 냄새가 계속 된다. 과유불급이라 하였으니, 식당에 퍼질러 앉아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구워먹는 놈들을 보면 야만인들이 따로 없는 듯싶다. 오늘 저녁은 레몬 드레싱을 얹은 ‘닭가슴살 오이냉채’를 먹을 차례다. 언제 먹어도 산뜻한 맛이다. 혼자 먹는 것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만큼만 조금씩 떼어내어 요리한다. 김치 냉장고에서 야채는 한 달이 지나도 싱싱함이 그대로 유지된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독거남은 행복하다.
이제 심야시간에는 재수생들이 등록한 화상강의가 시작된다. 인터넷 화상강의에서도 난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강사다. 이 길로 방향을 튼 지 5개월이 넘어가지만 벌써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런저런 학생들 때문에 강의는 늦은 새벽 시간까지 계속 된다. 물론 내가 은둔하기 전에 누구였던가는 사실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좋다. 실상 그들은 엄연히 내 강의를 질적으로 판단하고 모여든 아이들일 뿐이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을 위하여 비문학 지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과 독해 요령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상위권 아이들은 이미 문학작품은 거의 다 꿰고 있으니, 사실상 범위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비문학 지문의 독해가 관건이다. 화상강의도 학원의 수업 분위기와 다를 바가 없다. 캠만 켜 놓고 다른 짓거리 하는 놈도 있고, 자기들끼리 문자팅(?)을 하는 놈들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왕년의 현란한 강의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깜찍이, 딴 짓하지? 잘 봐. 이와 유사한 지문 이번 수능에 나온다. 럭셜맨, 너 음악 듣고 있지? 언어 망치면 누구 원망하려고. 유리공주, 문제 풀어라. 이런 유형 여러 번 봤지. 비문학과 문학을 엮은 통합교과적 유형 아닙니꺄. 교수 새끼들 좋아하는 문제죠? 아이들을 다그치고 선동하는 공격적 강사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나는 스스로를 자조하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야,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알 필요도 없겠지. 나? 공공의 적이야.
강의를 마치자 새벽 2시가 넘었다. 컴퓨터를 끄기 전에 쇼핑몰에 들어가 간단하게 장을 본다. 마른김 세트, 마른 멸치, 2006년 햅쌀 20㎏, 치킨 커틀렛 600g, 수제 소시지 세트, 김치, 하이네켄 맥주 세트 등을 구입한다. 내일 저녁이면 이 모든 식료품들은 집으로 안전하게 배달될 것이다. 미세한 먼지로 가득한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장을 봐야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들은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존재의 실재성이 상실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명멸하는 이미지로 가득 찬 모니터 속의 세계를 사랑한다. 어쨌든 물건을 사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했으니,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야 사는 맛이 난다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로서는 행복할 따름이다. 오늘 오후 2시면 내가 클릭한 이미지들은 모두 실물재화로 바뀌어 택배 박스 안에서 하나 둘 튀어 나올 것이다.
아내의 싸이월드에 들어가 본다. 단정한 정장차림의 남편이 빙긋이 웃음 짓고, 그 옆에 아카시아 꽃처럼 흐드러지게 웃고 있는 아내와 나비넥타이를 매고 제법 의젓하게 앉아 있는 윤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미니홈피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사진이다. 윤하야, 아버지, 여기 있어. 자식, 그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야. 이런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모니터를 더듬어보지만, 이런 내 모습이 오히려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술독에 빠져 여자 밑구녕이나 핥으며 다닌 아버지는 파렴치한이란다. 저 멋진 네 새아빠를 봐라. 아니, 영원히 너는 나의 존재를 잊어야 하리라. 지금 네 옆에 있는 멋진 덴티스트가 너의 영원한 생부이리라. 네 엄마는 내 앞에선 지금처럼 웃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여인이란다. 너와 네 아빠가 엄마를 여왕처럼 떠받들며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미친, 씨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그 더러운 입술로. 영원히 로즈마리의 인공 보지나 신물 나게 빨다가 썩어갈 놈이. 포토 메뉴를 눌러 몇 장의 사진을 더 본다. 미니홈피나 들락거리며 아내의 삶을 엿보는, 치졸한 짓은 이제 그만두자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건, 전 남편으로서의 애증일까, 무심했던 아빠의 마지막 미련일까. 어쨌든 인터넷은 이제 헤어진 아내와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들의 생활까지도 생생하게 전하며, 무의식의 심연에 가라앉은 관음증의 욕망을 호출한다. 역시,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혼남의 생활은 진보한다.
이런저런 감상을 떨쳐내자는 심정으로 컴퓨터를 끈다. 깨끗이 청소를 해야겠다. 물기를 꼭 짜낸 걸레로 온 집안을 구석구석 닦는다. 매일 새벽 혼자만의 청소는 상쾌하다.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한 올도 참지 못하는 나를 아내는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결벽증 환자야. 아내는 나의 깔끔한 성격을 질병으로 여겼지만, 언제나 개수대에 쌓여 있는 그릇이나 시커먼 얼룩이 덕지덕지 앉아 있는 가스레인지를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못 견뎌 했다. 가끔은 밥을 차리다가도 국자를 내던지며,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냐며 절규한 적도 있다. 가끔 휴일에 집에 있을 때면, 그 동안 집안에서 쌓였던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일시에 토해냈다. 매일매일 아이의 투정에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인데, 당신이란 사람은 매일 새벽에 기어들어오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냐고 절규했다. 가사도우미를 써보는 게 어떨까. 육아도 도와준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 주기가 어렵잖아. 어차피 학원 강사인 내가 정상적인 생활 사이클을 가질 수 없는 건 잘 알잖아. 어쩌면 아내는 이런 말을 원하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술 안 먹겠다,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오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유치원 가는 아이 얼굴이라도 보겠다, 뭐 이런 말은 나오지 않는군. 당신은 구제불능이야. 가사도우미를 쓴다고 해봐. 한낮에 퍼질러 자는 당신 꼬라지 보여줄 일 있어? 아내는 아예 할 소리 안 할 소리 분간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 다했어? 내가 집에서 놀아?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그래? 나도 남들 나가는 시간에 나가고,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오고 싶다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또 그 자리를 잔인할 만큼 후벼 파는 말들. 말갛게 집안을 청소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어수선하다. 쓸데없는 지난 일들을 생각한 탓이다.
청소가 끝났으면 바로 이어 운동을 시작한다. 아령과 덤벨은 기본이고 뱃살을 빼기 위해 훌라후프까지 돌린다. 자칫 걷기 부족으로 하체 근력이 약해질 것을 대비해 스텝퍼도 한 시간 정도 밟아준다. 조기 축구회다, 테니스 동호회다, 산악회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운동도 못하는 족속들과 나는 질적으로 다르다. 혼자서도 잘 해요, 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홀로 하는 운동은, 여유롭고 자유롭다. 승부에 집착할 이유도 없고, 사람들과의 피곤한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몸에만 충일할 수 있는 시간. 나는 이 시간만큼은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흐르는 땀을 닦는다. 가끔은 이 시간이 너무도 행복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적도 있었다.
5.
언제나 그렇듯 강의를 모두 마치고 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다. 지껄인 만큼 마음에 고여 든 공허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퇴근 무렵, 로비에서 원장과 눈이 마주쳤지만, 수고했다는 말만 던질 뿐, 별다른 얘기가 없어 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원장도 그 나이에 정력이 딸리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혼자서 어디 짱 박아 둔 영계라도 따 먹으러 가는지 몰랐다. 헤드라이트를 환히 밝히고 지하주차장을 막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두 팔을 벌리고 차를 가로 막아섰다. 아이, 씨발, 뭐 하는 계집애야, 욕이 튀어나왔다.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서 있는 여학생은 바로 수아였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아이를 불렀다. 뭐, 하니? 아직도 집에 가지 않고. 수아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꼰대 같이 말하는 내 목소리가 싫었을 것이다. 제 깐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할 수 없이 차를 막아 선 것일 텐데. 나는 차 문을 열고 나가 수아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청미니스커트에 자주색 벨벳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왜 그래? 수아야. 교복은 어쩌고? 선생님이 집에까지 데려다줄게. 어서 일어나. 나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서둘러 학원을 빠져 나갔다.
데시보드 전면의 전자시계는 02:00 AM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우글거리며 사는 인간 족속들을 모두 돌려보낸 새벽녘의 도로는 길게 몸을 뻗은 채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수아야, 집이 어디야, 신사동이라고 했나?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간이 늦었어. 빨리 들어가야지. 집에서 걱정하시겠다. 내가 채근하자 아이는 아예 창밖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두 세 개의 교차로를 지나칠 무렵,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요. 엄마 아빠가 제주도에 갔거든요. 여름휴가도 못 갔다고 엄마가 하도 투정을 부리는 통에 아빠가 손을 든 거죠.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아까 저녁 비행기로 떠났을 거예요. 수아는 혼잣말처럼 계속 지껄였다. 그래도, 집에 누가 계실 거 아니니? 조금은 단호한 느낌으로 내가 말했다. 일하는 언니가 있어요. 오늘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거든요. 걔는 내 말엔 꼼짝 못해요. 지난번에도 내 말 듣지 않는 언니를 내보냈거든요. 걘 그것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수아는 큰 자랑이라도 되는 양, 제법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같은 식으로 나갈 수밖에. 그래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응? 내가 다그치듯 말했다. 선생님. 술 사주세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교복이 아니어서 그런지 룸살롱에서 만날 수 있는 영계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로데오 거리에 있는 작은 바에 들어갔다. 실내는 어두웠지만 담배연기에 찌들어 있는 강북의 칙칙한 바와는 차원이 달랐다. JBL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중저음의 재즈와 간접등으로 반사각을 교묘하게 연출한 실내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선 구석진 소파에 앉아, 자초지종을 물어보기로 했다. 왜, 그래? 이러면 선생님도 자꾸 곤란하잖아. 대뜸 말문을 연다는 것이 이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다 알면서 왜 그래요? 나도 여자라고요. 좋아하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녜요? 이제 5개월만 있으면 나도 대학생인데, 뭐가 어째서 그렇죠? 상황이 이 정도라면, 그래, 물론 여긴 학원이지만, 너와 나는 사제관계고, 그리고 또 나는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고, 이런 낡아빠진 얘기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똑 부러지게 나오는 영계에게, 도덕적 훈계라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말이다. 여자에게 성이란 매우 중요하단다. 한때의 감정으로 일을 저지르면 안 되는 거지. 이런 개뼈다귀 같은 얘기를 해서 뭐하자는 건가. 그래,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피할 이유가 없다. 이런 결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다. 우선 맥주나 한두 잔 마시며, 학교 선생들에 대한 뒷담화나 앞으로의 대학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아이와 마시는 술이라는 게 김빠진 맥주처럼 민숭민숭한 것은 둘 사이의 공감대를 찾기가 쉽지 않고, 우선은 나이 먹은 사람이 얘기를 리드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우리 그만 일어날까? 네, 선생님.
선생님, 지금 가시면 음주운전인 거 아시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수아가 말했다. 그러면서 골목 끝에 있는 모텔 간판을 가리켰다. 어떻게 할까. 지금 이대로 거리에 나가면 음주단속에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은 단속이 심한 금요일이지 않은가. 그래, 잠깐 술만 깨고 가기로 하자. 아이가 그렇게 원하는데, 함께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탠프로에서는 거의 수아보다 한두 살 위의 영계들을 수도 없이 따먹지 않았는가 말이다. 여기서 무슨 선생, 학생 따지게 생겼냐 말이다. 며칠 전, 빈 강의실에서 더듬던 수아의 봉긋한 가슴이 떠오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 가는 거야. 수아를 억지로 집에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집에 가서 듣게 되는 건,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냐, 에서 시작해서 네가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 뭔 데, 로 끝나는 잔소리뿐이리라. 그래, 가자. 가서 수아의 분홍빛 가슴을 열어보는 거다. 다 자기가 원해서 해 주는 것뿐이다.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이제부터 수아는 학생이 아니다. 탠프로에 있는 흔해 빠진 영계다.
수아는 몹시도 아파했다. 물론 이건 처음 만난 남자와 관계할 때, 여자들의 공통된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 남자를 의식한 심리적 이유 때문이지, 물리적인 통증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문지방은 쉽게 닳아버리는 것이다. 수아는 관계를 끝내자마자 돌아누웠고, 시트는 붉은 혈흔으로 얼룩져 있었다. 수아는 처녀였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첫 남자라니. 이상한 죄책감이 덜컹 내려앉았다.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아이, 씨발. 처녀 주제에, 닳아빠진 계집애 행색을 하다니. 속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수아를 앉혀 놓고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 아이에게 내가 첫 남자였다는 사실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보지 마세요. 나, 지금 욕실로 갈 거예요. 보면 안 돼요. 수아가 욕실문을 닫고 들어가자, 어지럽게 널브러진 그녀의 옷들을 곱게 개어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만한 분홍색 팬티와 꽃무늬가 수놓아진 브래지어도 그 위에 가지런히 포개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아가 자신의 첫 남자로 나를 선택한 것은 모를 일이다. 다만, 그녀는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무렵, 20살이 되기 전 하루라도 빨리 첫 관계의 딱지를 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게 선생님이어서 고맙고, 이에 대한 어떤 부담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져 또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6.
다음날, 수아를 학교 근처까지 데려다 주고, 곧장 학원에 출근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뭔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몇몇 여선생들은 독사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까치집이라도 들어섰나 싶어 머리를 매만지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만복! 원장이었다. 아니, 내 이름을 부르다니. 어이가 없었다. 원장의 얼굴이 타이어만큼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내 방으로 와.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구내식당에서 자갈이라도 씹었나. 언짢은 기분으로 허겁지겁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은 다짜고짜 나를 컴퓨터 앞으로 끌고 가더니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모니터에선 어제 수아와 내가 술집을 나와 모텔로 향하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건가. 화질을 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UCC였다. 강남 XX학원 강사랑 여제자. 이런 제목의 동영상이었다. 원장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구둣발로 무릎을 걷어찼다. 이 씹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이 더러운 변태새끼. 탠프로를 하도 다니다보니까 이제 고삐리까지도 여자로 보이데? 이런 씨발놈. 누구 사업 망치는 꼴 보고 싶어? 야, 이 개새끼야, 학원으로 형사들 쳐들어오기 전에, 어서 가 봐. 아이들한테 소문 쫙 퍼졌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한참을 두들겨 패던 원장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야, 야 아, 이 씨발놈아, 할 짓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지. 이 씹새끼야,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이젠 모두 끝장이라고. 학부모들 항의 들어오고, 학생들 학원 끊으면 이젠. 원장의 이단 엽차기가 다시 날아 들어왔다.
수아의 부모는 나를 청소년 성범죄자로 고소했고, 법원은 곧바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언도했다. 그나마 형량이 그 정도에 그친 것은 수아가 제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한 것이었다는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원은 망했고, 내 신상은 언론매체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리고 아내와의 이혼. 아내는 이젠 별 짓을 다하고 다닌다며,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으니까, 다시 고소하기 전에 위자료나 내놓으라고 했다. 얼마면 되겠냐는 말에 그녀는 네가 가진 것 전부, 라고 말했다. 윤하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이 무서웠고, 할 수만 있다면 자지를 손톱으로 뜯어버리고 싶었다. 교도소에선 형량과 나이에 상관없이 성범죄자는 서열이 가장 낮았다. 강도짓을 해도 금액에 따라 대우가 달랐고, 당연히 조폭은 큰형님으로 받들어졌다. 나는 장기투옥 중인 큰형님의 좆대가리만 빨다가, 만기로 출소했다. 다행인 것은 세상이 벌써 나를 잊었다는 사실이었다. 나 같은 놈은 경범죄자로 취급될 만큼 세상은 훨씬 더 험악해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나는 스스로의 죗값을 모두 치렀다고 생각했다. 다만,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나만이 은거할 수 있는 세상 속 감옥을 간절히 원했다. 3년 전, 아내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던 5천만 원이 든 통장을 털어, 아파트 전세를 얻고, 나만의 세간들을 모두 장만했다. 출소 후, 어느 누구도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친구도, 동료강사들도, 가족들도.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로즈마리가 누워있는 침대로 간다. 그녀는 언제나 검붉은 실리콘 젖꼭지와 늘 열려 있는 착하디착한 보지로 나를 맞아준다. 아, 이 얼마나 감미로운 순간인가. 세상이 무섭게 느껴질수록 나는 나의 안전한 칩거가 행복해 치를 떤다. 닥터 바이러스가 지켜주는 무균질의 인터넷은 윤하의 성장과정을 생중계 해주며, (먼 훗날 아들의 결혼 소식도 아내의 미니홈피는 잊지 않고 전해 주리라.) 신선한 음식을 공급해 주고, 다시 돌아온 역전의 명강사 정만복의 열강을 보여준다. 간다, 정 박사 족집게 언어. 쿨하고, 청결하고, 안전하게. 야릇한 감상에 젖어 시간을 탕진할 이유도 없고, 위안을 찾아 사람을 그리워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는 인터넷이 있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로즈마리가 있다. 나는 마리의 교복을 거칠게 벗긴다. 그녀는 옛 아내가 되기도 하고, 수아가 되기도 한다. 오늘 같은 밤이면 수아를 불러보고 싶다. 벗어. 수아!
김정남
1970년 서울 출생. 200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평론 당선.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저서 한국 소설과 근대성 담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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