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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신작시/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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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뻥의 나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 막내와 돈키호테를 읽는 밤
11월 바람은 창을 두드리고
키득 키득 책을 읽던 놈이
불현듯 묻는다
‘아빠 이거 다 뻥이지요’
나는 그와 깊은 가을로 여행을 하는 중이다
저 뻥의 마을에서 서성이다가
어린 그와 목로주점에 들어
설탕을 듬뿍 탄 와인을 한 잔 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독한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면
창을 꼬나들고 달리는 늙은 기사도 만날 것이다
도무지 세상에는 없는
공주들과 긴 늦잠을 자고
풍차 아래서 휘파람을 불고 싶은 것이다
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도무지 허무하여
살 수 없음을 그 아이가 불현듯 깨닫기를
중세의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픈 것이다
사하촌寺下村
사하촌寺下村 깊은 산 속 농가
며칠 비를 뿌리는 여름날
이가 가지런하고 정수리가 말랑한
절집 공양주 보살이 마루에 산나물을 올려 놓는다
참새 혓바닥 같은 작설차는
찻물에 떠서도 한참을 재재거렸다
요즈음 무얼 먹고 사느냐 묻는다
스님은 잘 계시냐 물었다
투둑투둑 함석 챙을 두드리는 빗소리
불을 때 습기 없는 방구들에 앉아
오래도록 건너편 산에 도도는
구름과 연기를 치어다보았다
우대식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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