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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신작시/노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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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옥
그녀의 식성
새벽 한 시에 들어와 욕실 청소를 한다
향기 나는 세제를 뿌리고 부득부득 바닥을 씻어낸다
주인이 없는 동안 미셀이 욕실을 마음대로 썼구나
오줌을 지리며 바닥을 기었구나
미셸, 이름조차 이쁜 나의 미셸
나의 미셸이라니, 넌 나의 것이었니? 언제부터?
그러나 나의 것인 너의 냄새가 싫구나
너의 체취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육류는 나의 식성이 아니라서
생존만 있을 뿐 배신은 모르지
난 대체된 사랑에 질렸단다
날 사랑하지 말아다오 위로하지 말아다오
식성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란다
미셸, 가련한 나의 미셸
나의 미셸이라니, 넌 도대체 누구의 것이고 싶으니?
자, 이제 니가 말할 차례야, 말 좀 해봐
은유법은 써서는 안돼
그런데 미셸 넌 도데체 오늘 샤워를 했니?
사과향 샴푸를 쓰지 그랬니?
아무래도 너의 체취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육류는 내 식성이 아니라서
누군가 나를
누군가 나를,
지지직 다림질하고 있다,
뜨거운 다리미를 내려줘,
내려줘 제발,
심장은 지지지 말아줘,
누군가 나를,
하얀 붕대를 감는다
하얀 레이스를 입힌다,
하얀색은 싫어, 싫다구
붕대를 풀어줘, 옷을 벗겨줘,
누군가 나를,
깜깜한 허공 외줄에 올려놓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맨발로 출렁이며,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다,
내려줘, 제발, 줄을 끊어줘,
노준옥
200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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