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7호 신작시/안명옥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05회 작성일 08-03-01 02:24

본문

안명옥
운석      

제 몸에 물을 담은 구름이 둥둥 떠 있다
주름이 무거운 구름이 측은해 보이는지 하늘이
번개의 불기둥을 일으켜 세워
구름을 무섭게 비워낸다
구름 아래로 쏟아진 빗줄기들이
대지에 닿아 조그만  
씨앗을 키우고 있다  
놀라운 번식력!

신생의 별들로 자꾸만 판에서 밀려나고
그만 출산의 고통을 비워내기 위하여
우주가 운석을 끄집어내 흘러 보낸다
운석이 지나간 자리
곧 폐경은 일제히 오고
또 다른 큰 구멍을 만들어내는 운석들
그 안에서 어린 손주들 돌봐주고 있다

마른 하늘에서
번개가 치거나 운석이 떨어지는 밤엔
우주가 자궁 속의 사막을 알리며
다른 임무로 전이되는 다비식을 하기 위해
괄약근을 푸는 때




왕고들빼기

길을 가다가 차가 멈춰 선다
선글라스는 사탕수수밭으로 뛰어들고
흰 모자는 목화밭으로 숨어든다
나는 풀숲이 좋아
들꽃 핀 옆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왕고들빼기 줄기에 진딧물이 앉았다
노랗게 말라가며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잎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 진딧물
왕고들빼기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진딧물
소신공양하는 왕고들빼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 얼굴이 보였다
온몸이 진드기로 뒤덮인 벌 한 마리
애타게 다리를 비비고 있다
내 영혼의 신기루 같은 것
가뭇없어 보이는 내일처럼
내 눈 속 꽃에 앉았다 사라지고 사라지다 앉고
빵빵, 빵빵
사내들은 길을 등지고 볼일을 보는데
여자들은 길을 바라보며 볼일을 본다
급한 그 순간에도
수치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형벌!
바지를 올리고 뛰어가다가
내가 오줌을 누었는지 안 누었는지
궁금해졌다
무거운 방광을 지니고
순례버스에 오르는데
벌에 쏘인 듯
엉덩이가 자꾸 불편해지고


안명옥
경기도 화성 출생. 2002년 ≪시와시학≫ 신춘문예 등단. 서사시집 '소서노'. 성균문학상 우수상 수상.

추천4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