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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신작시/구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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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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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두 집이 나야 이긴다고 한다 
두 집이 돼야 한 집 주고도 살아남을 수 있고 
항상 히든카드를 숨기고 있어야 한단다 
두 집이 못 돼서, 
두 집 짓기 위해 한 집을 버리고, 
한 집도 못 지으면서 두 집 짓겠다고 
신의를 저버리고 
신뢰도 없이 신용 잃고 
신용 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집 잘 짓는 사람들 보고, 
두 집 살림하는 사람이 그래서 
더 잘 사는 이유를 알았단다
시계소리
세상 모르게 자다가도 
일순 잠을 깨면 저것 때문에 
죄 없는 귀를 잡아당겨서 
그쳐라, 그쳐라 해도 말을 듣지 않아서 
살갗에 소름 돋도록 참다가 벌떡 일어나면
낯익은 신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내다 버려야지, 비등점으로 끓는 속 
예각의 기다림을 현관 밖에다 내버리곤 
저것도 한밤중에 비 맞으면 춥겠지 
안에 들여놓아도 여전히 낙숫물 소리 
똑똑똑, 눈먼 시간이 짚어가는 지팡이 소리
지워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지워지는 게 어디 있다고 
아무리 박박 문질러 봐라 
상처 자국, 딱정이가 지워지는가 
그래, 함께 살자 
제때에 오지 않는 신발끼리 
계속 서로의 귀나 잡아당기면서 
구순희
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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