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6호 신작시/조성심
페이지 정보

본문
조성심
산란을 꿈꾸는가
누가 소리 내어 운다
부른 배를 때리니
마른 몸 밖으로 우수수 쏟아지는 수천의 들깨 알
물이 없는데 이곳저곳 알을 쏟아 놓는다
품속에 가두어 두었던 수 천 수 만의 햇살 물길로 변하고
들깨가 털릴 때 고소한 슬픔처럼
한순간 멍석 안이 꿈속처럼 환해진다
비린내의 근원지를 찾아
투명한 날개를 웅크리고 균형을 잡는 잠자리
알 수 없는 세계를 잠망경처럼 들여다본다
퉁퉁 불어 버린 알
곧 부화라도 할 듯 그 향기
천지를 흔들어댄다
껍질 속에서 움직이는 하얀 발
한 몸으로 움직이려니 너무 아픈가보다
알속을 미끄러져 헤엄쳐 나오는
몸이 연한 두 눈 달린 파란 손
가을처럼 말랑말랑하다
껍질이 툭 터진다
트로이 갈대
하늘이 차다
회오리바람이 트로이 전역을 침입한다
갈대와 하룻밤 몸을 섞은 저 들국화
흔들린다는 것에만 충실할 뿐
몸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눈이 멀었구나
그렇게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았지
둘은 그렇게 이른 아침 은빛 차 한 잔을 들고 서서
마주보지도 못하고 서 있다
트로이의 모래를 밟고 웃는 저 여인
머릿속에 갈대 바람 하얗게 차 있다
갈대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만 살아도 그렇게 환해지는 것을
너무 오래 기다렸구나
소리 내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기우는 갈대
사랑은 그런 건가보다
한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자꾸 일으켜 세워도
다시 쓰러지는 그런 건가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닿을 수 없는 손
한 계절 이렇게 그늘에서 살다보면
낮게 떨어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가슴에 두른 갈색빛 띠를 풀며
상처는 자꾸만 밖으로 나오고야 만다
가슴이 한쪽으로 쓰러지면 아프게 마련이다
그대로 서서 아파해라 트로이의 갈대여
조성심
2004년《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신발'.
- 이전글26호 신작시/전정아 08.03.01
- 다음글26호 신작시/김지연 08.03.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