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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신작시/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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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박제된 시간
겔러리 서종에서 액자 속에 갇힌 시간을 본다
오색옷 입은 물줄기가 함께 흐르다
뒤엉킨 채 싹둑 잘려 있다
먹구름 속을 빠져 나온 붉은 해와
푸른 바람 건너가는 노란 새소리
붓이 숨 고르는 여백까지 화창한 봄날이다
액자 속에 갇힌 시간이 마른 벽을 더듬어
풍경이 가득 담긴 유리창에 매달린다
창 밖 상수원 샛강에는 혼인색을 입은
은피라미떼 별 놀이가 한참이다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른 은피라미들이
별싸라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또 솟구친다
샛강을 가로지른 돌다리 위
재두루미 한 마리 큰 별 하나를 물고
숲 저편으로 사라진다
갤러리를 끼고 흐르는 낮은 물소리
물등 타고 앉은 선홍빛 노을이
물밑으로 사라진 뜨거운 별을 건져 올린다
액자 속에 갇힌 시간이 물소리를 끌어 덮는다
강대나무
미쉘인형을 닮은 이국 가시내를 알고 있다
맨 처음 그녀를 볼 때부터 불에 데인 듯
가슴이 아린 것이 내가 꼭 열병 앓는 사내 같다
주정뱅이 늙은 총각에게 팔려온
아직은 어린 베트남 심청이를
나는 강대나무라 부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든 것이 낯선 그녀는
돌 아이처럼 이제 겨우 말을 놓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금간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 얼굴이 노란
그녀와 말을 건네고 싶다
마른 우물 바닥을 긁는 허기 대신
매운 세상을 견디는 그녀
사내의 주벽이 심한 날은 집 밖으로 쫓겨나와
낮달처럼 하늘을 맴돈다
맨 처음 볼 때부터 불에 데인 듯 가슴이 아린
이국 가시내에게 눈인사를 한다
청바지를 입은 미쉘인형의 깊은 눈이 파르르 웃는다
정영희
2007년《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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