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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2007년 여름호) 문화산책/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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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연출가들
김남석|문학평론가
1. 2006년의 연극계
2006년의 연극계 역시 몹시 분주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분주함에 값하는 기억될 만한 연극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의 노력을 한 번에 싸잡아서 매도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우리의 연극이 다소 방향을 잃고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계의 장기 불황은 일차적으로 숙고되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한국 연극계의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젊은 연출가, 즉 신진 연출가의 활동이다. 우리 연극계는 아직도 일부 중견급 연출가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30대 혹은 40대 연출가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그지없다. 2006년의 연극계도 그러한 감이 없지 않았다. 2006년 연극계를 돌아보면서 이 사안에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한다.
서울을 격하고 살고 있어, 연극을 충분히 보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연극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편향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지만, 이 글에서는 부산의 연극과 연출가에 대한 약간의 소개로 푸념을 대체하고자 한다. 부산의 연극을 소개한다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연극(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약점, 지역 편중성의 문제를 제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집요한 탐색, 이윤택
2006년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 작품은 이윤택의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이다. 이 작품은 이윤택 개인에게도 중요한 작품이었다. 연희단거리패 창단 20주년이 되는 해에,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이정표를 세울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최근 이윤택이 처한 몇 가지 논점과 관련지어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 이윤택은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초창기 연극에 쏟아 부었던 치열한 정열은 다소 감퇴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이윤택은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공연을 만들고, 한 작품을 만드는 데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작품/공연은 시대의 흐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해 의미 있으면서도 일관된 전언을 던지는 데에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말이다.
가령 <뇌우>와 <떼도적>은 개별적으로는 공들인 작품이었지만, 두 작품 사이에 흐르는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었다. <아름다운 남자>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아름다운 남자>는 세부적인 디테일이 더욱 늘었어야 했다(물론 내가 <아름다운 남자>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이윤택 원작/희곡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보여주었던 ‘야수적 광기’가 사라진 것도 애석한 일이다. 체제 안주적인 작품이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광야에서의 거친 기상은 작품 세계를 추동시키고 서로 다른 작품을 연결하는 힘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윤택의 연극은 기존의 재미에 덧붙여, 일관성을 결합하는 방식을 궁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브레이트 원작이라는 한계에 이윤택은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브레이트 원작에 대한 잘못된 번역을 수정하는 작업(철저히 우리말화 하는 작업)부터, 그 언어에 다시 필요한 사투리를 입히는 작업을 거쳐, 의상과 소도구와 무대에 걸쳐 한국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 작품에 긴 시간과 넓은 상념을 할애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너 개의 작품을 동시에 연출하고 일 년에 믿기 힘든 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서, 작품을 고치고 보강하는 시간을 길게 확보했다. 밀양 축제에서 시연한 후에 무대 사이즈(대무대에서 소극장 무대로)를 줄여 새로운 적응을 시도한 것도 유효적절한 연습방식으로 여겨진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을 만드는 과정만 놓고 본다면, 연희단거리패의 초기 연극 제작 과정의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난 듯한 느낌을 준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의의를 따져 보겠다. 이윤택의 공연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어머니의 형상화(독창적 해석), 과거 역사의 대입, 축소지향적 연출 방식이다. 첫째, 어머니의 형상화 방식이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의 관건은 ‘억척어멈’의 형상화이다. 브레히트가 이 작품을 동독에서 초연하던 시절에는 이 배역을 위해 태어났다는 여배우 헬레나 바이겔이 있었다. 바이겔은 당시 사람들에게 ‘억척어멈’의 현신으로 불릴 정도로, 이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윤택이 선택한 억척어멈은 ‘김미숙’이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 온 이 배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상 제작자로 더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물 오른 연기로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급상승 중이다. 특히 <초혼>의 무녀이자 잠녀, <곡예사의 첫 사랑>에서 포장마차 주인으로 그 연기의 질적 향상을 이룬 이래, 억세고 굳건하며 구수한 성품을 보여주는 인물에 적합한 배우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선택이 있었겠지만, 이윤택은 김미숙의 이러한 장점을 억척어멈의 모델로 내세웠다. 더구나 이윤택은 억척어멈을 1950년대 한국 전쟁기를 억세게 넘어야 했던 우리의 어머니로 간주했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가락과 소리와 몸짓에 능숙한 김미숙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윤택에게 억척어멈은 우리의 모성을 보여줄 수 있는 어머니여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역사와 언어의 반영 양상이다. 이윤택은 이 작품을 번안하여 우리 역사에 대입시켰다. 브레히트는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을 역사의 배경으로 삼으면서 그 안에서 부침하는 억척어멈 일가를 그려나갔다. 반면 이윤택은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을 통해 억척어멈과 그 일가의 운명을 그려냈다. 특히 18연대(지리산 토벌대)와 이현상 부대(지리산 빨치산 부대)의 밀고 당기는 전투를 끌어들여 종교 전쟁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대체했다.
이러한 번안 작업은 노래(작곡)와 말의 ‘우리화’와 맞물려 있다. 이윤택은 역사적 배경을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바꾸면서 공간적 배경을 남원과 구례 그리고 낙동강 일원으로 설정했다. 이곳은 한국전쟁(토벌)의 중요 격전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판소리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윤택은 판소리의 가락을 살려 브레히트가 중요하게 내세웠던 음악(노래)을 우리 것으로 대체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말의 감미로운 가락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윤택은 <눈물의 여왕>을 통해 18연대와 빨치산 부대간의 전투를 연구한 바 있고, <초혼> 등의 작품을 통해 사투리(제주도)의 효용성을 강구한 바 있었다. 따라서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에서 이러한 번안을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보기는 어렵다. 이윤택은 브레히트의 텍스트를 우리화하는 과정을 중시여기면서, 이 작품의 실감을 높이는 데에 주력했다.
마지막은 무대화 방식이다. 이윤택은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을 점차 축소하여 대학로 무대에 올렸다. 밀양연극촌 초연 당시에 사용된 큰 무대를 버리고, 서울 게릴라 극장의 무대 크기로 줄여서 거듭 시연을 펼치며, 더 작은 무대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심리적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이러한 조치는 기본적으로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처사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관객과 함께 억척어멈의 삶에 집중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다.
이윤택의 연출법은 익히 알려진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연출술과는 달랐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에서 구현되리라 여겨졌던 소외효과(거리감)는 두드러지지 않았고, 대신 억척어멈과 그녀의 불행이 가져오는 연민과 동정의 정서가 강조되었다. 따라서 무대와 객석 사이가 먼 대극장보다는, 관객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함께 호흡할 공간이 요긴해졌다.
배우들의 연기 방식도 축소지향적이었다. 연희단거리패의 배우들은 특유의 발성과 활기찬 몸놀림으로 대극장 연기에 소양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는 지르는 형식의 대사법보다는 전라도 말과 판소리 그리고 우리말 장단에 힘입은 굴곡 있는 대사를 취했고, 인물들의 걸음걸이에도 우리 춤의 가락을 삽입하려 했다. 음악의 굴곡과 춤의 리듬은 닫혀 있는 안온한 공간에서 더욱 잘 구현될 수 있다. 무대가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는 이윤택의 연극이 세련되기보다는 가열차기를 바란다. 그의 작품은, 혹은 연희단거리패의 연기 방식은 세련되고 깔끔하다. 손동작 하나까지 조형감을 주는 연기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질 좋은 프레스로 찍어낸 인쇄물 같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연극에는 점차 열기가 떨어지고 있다. 왜 이 작품을 공연해야 하는지, 이러한 작품이 그들의 과거 연기 혹은 극단 맥락과 과연 얼마만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윤택의 연극관/연출관이 변화된 시대를 단순히 추수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연극/공연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 뒷받침 될 때 그 작품은 연희단거리패의 레테르를 붙이고 더욱 정교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은 연희단거리패가 잘 할 수 있는 요건과, 해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최근 이윤택은 플라맹고 춤과 설장고를 결합하여 로르카의 <피의 결혼>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그 일부를 공개하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토론한 바 있다. 그는 플라맹고의 정열과, 그 정열을 억누르는 형식에 주목했다. 이것은 연극을 향한 배우의 열정 내지는 내적 기질과, 이를 무대적 형식으로 제련시키는 양식화와 비슷하다고 간주하고 있다. 이윤택의 새로운 시도와 포부는, 2006년 초엽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에 대해 구상하고 고민하던 내용과 동질적으로 느껴진다. 지금 현재의 상태로는 이윤택의 착상과 방법론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지만, 우리 것(설장구)과 다른 나라의 것(플라맹고)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연극을 만들려고 하는 그의 대담한 발상과 창의적 사고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며, 그의 시도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3. 불안에 대한 착상, 한태숙
한태숙을 강렬하게 기억하게 된 계기가 <리차드 3세>(2004년 11월)였다.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긴 벽면, 그리고 어둡게 칠해진 어둠 속에서 리차드 3세와 그의 욕망을 닮은 인물들이 음침하게 움직이는 작품이었다. 물론 무작정 훌륭했다고 칭찬 받을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 작품에서 앞뒤로 놓인 무대와, 좌우로 그어진 동선은 제대로 부합되지 않았다. 안석환의 연기도 무작정 좋았다고 칭찬하기 힘들 만큼 허점이 적지 않았다. 여타의 배역들이 나눈 어색한 대화 역시 후한 점수를 주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남다른 강력한 기억을 남겼다. 무대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만들었으니, 일단 한태숙의 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태숙은 이 작품에 자신만의 색깔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이전 작품이었던 <서안화차>가 지닌 어둠을 잇되, 그 어둠을 한층 더 자기화했다고나 할까.
2006년 한태숙의 <이아고와 오셀로>(9월 12일~17일, LG 아트센터)도 그 어둠의 색깔을 한층 분명하게 한 작품이었다. 먼저 한태숙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다시 도전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리차드 3세>처럼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해석하려고 노력했고, 그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주변의 평론가들이 한태숙의 작품이 그 이전의 <오셀로>와 달랐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이아고가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오셀로>의 새로운 경지가 개척되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아고는 출연 빈도수와 대사량이 늘어난 것 이외에는 그다지 인상 깊은 연기나 해석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 부분은 오셀로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에 대한 연기는 평이했고, 여태까지의 공연을 뛰어넘었다는 특징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무대를 들 수 있다. 이태섭의 무대는 기하학적이고 시의적절했다. 특히 사선으로 기울어진 경사를 활용하여 무대 뒤에 배의 마스트처럼 급하고 높게 올라가도록 배치된 계단과, 무대 앞쪽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설치된 무대는 기하학적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했다. 하지만 그 무대를 활용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그리 적절했다고 할 수 없다. 배우들은 경사진 무대를 뛰면서도, 그 경사를 오르고 내리는 이유를 연기에 부여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시원한 움직임은 가능했지만, 그 동작이 연극적 상황이나 대사와는 부합되지 못했다. 무대의 시원함과 이에 조화되는 연기 혹은 대사의 적절성은 한태숙이 다시 숙고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한태숙이 이 작품에서 살려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둠’이다. 인물의 내면 속에 담겨 있어야 할 어둠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서안화차>도 그러했고, <리차드 3세>도 그러했지만, <이아고와 오셀로> 역시 어두웠다. 무대는 전체 조명을 극도로 자제하고, 부분적인 조명으로 연기자의 활동 반경만 밝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어둠은 일단 물리적인 어둠을 강조해서 보는 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태숙은 또한 어둠의 오브제로 ‘개’를 등장시켰다. 개는 이아고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사악한 일을 저지르려 할 때마다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개의 색은 검은색이었고, 그 검은색은 마치 무의식의 채찍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아고와 오셀로>가 기왕의 다른 <오셀로>와 차이를 가졌다면 그것은 인물들 속에 담겨진 어둠을 끌어내는 방식이었다. 그 어둠의 정체는 불안이었고, 불안한 내면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셰익스피어의 이아고였다. 이아고가 한태숙의 눈에 띤 것도, 그 이아고를 우리가 보아야 할 이유를 얻은 것도, 바로 불안 때문이었다.
최근 공연된 <강철 iron> 역시 이러한 불안을 적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공연과 원작을 비교하니 상당한 부분을 덜어낸(삭제한) 흔적이 있었다. 덜어진 부분들은 일차적으로 공연의 흐름을 지나치게 완만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또한 수감된 죄수인 엄마와, 15년 만에 면회 온 딸 사이에서 자칫하면 개연성 없이 이어질 수도 있는 일상의 언어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삭제와 비약은 공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루한 말 씨름은 자칫하면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한태숙이 믿었던 전언을 훼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루한 대화 때문에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고, 일상 속에 들어 있는 ‘사소한 진실’을 놓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대단한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 15년 전에 엄마가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딸의 믿음이, 엄마의 어처구니없는 실토에 풍비박산 나고 말기 때문이다. 엄마의 고백을 요약하면, 남편을 죽인 이유는 지리멸렬한 일상의 이유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늘 반복되던 부부싸움일 따름이었다.
크고 거창하고 비밀스러운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비단 딸만이 아니었다. 관객들 역시 문제의 15년 전을 파고드는 한태숙의 솜씨에 반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작품의 귀결을 제멋대로 추리하곤 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그 귀결은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딸은 그 실망에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 대들고 만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뚜렷한 기억을 남겼다. 왜냐하면 15년 전 진실이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대답을 확인할 때까지, 끊임없이 불안을 이식시키고 관객들을 동요시켰기 때문이다. 극장 안은 사소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긴장으로 가득 찼고, 진실을 원하는 대화의 레이스에는 위태로운 전율감마저 감돌았다. 한태숙은 원작이 지닌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불안과 긴장을 이식해서, 이 작품의 귀결을 끝까지 주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서안화차>, <리차드 3세>에서 잉태되기 시작한 불안의 추이를 일차적으로 완성짓는 결과물에 해당한다. 이제 이 불안은 한태숙의 개성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강철>은 <리차드 3세>나 <이아고와 오셀로>에 비해 투입된 물량이나 공연 여건에서 나았다고는 할 수 없다. 큰 무대와 작은 무대를 쓰는 경우는 별도로 상정해야 하지만, <리차드 3세>나 <이아고와 오셀로> 모두 공연과 흥행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에 대한, 어둠에 대한,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공신력 있는 연출력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반면 <강철>은 잔잔한 흐름 속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러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불안의 실체에 대해 의미 있는 결실을 찾아냈다. 이것은 한태숙의 연극/연출 세게를 한층 확고하게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그녀의 무대를 받쳐주는 이태섭의 공간과 사물 배치도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듯하다. <강철>의 무대는 반듯하고 차갑고 폐쇄적인 질감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졌다. 앉는 의자, 탁자, 거울 등은 인물들의 간격을 조절하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분리하는 역할을 했다. 조명 역시 국부적인 밝기로 그러한 공간들을 엄중하게 구획했다. 이러한 무대 조형은 결국에는 그 안에서 갇혀 있어야 할 수감자들(엄마를 비롯해서 교도관, 그리고 그녀의 딸)의 마음의 반경을 담아내는 데에 단단히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4. 부드러워진 오태석
2006년 오태석의 신작(극작)은 단 한 편이었다. 최근 한 해에 두세 편씩 신작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력을 자랑하던 오태석이었는데, 2006년에는 <갈머리> 한 편을 내놓았을 뿐이라는 사실은 약간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연출가로서, 그리고 연극 행정가(국립극장 예술감독)로서의 오태석은 분주했고, 상당한 업적도 쌓았지만, 작가로서의 오태석은 예년에 비해 그 활동이 저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공연작으로 <태>나 <맥베드>를 연출했지만, 여기서는 그의 신작 <갈머리>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오태석의 신작 <갈머리>(2006년 9월 30일~10월 8일)는 익숙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단히 낯선 작품이다. 그동안 오태석은 자신의 작품에서 ‘갈머리’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해 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 수 있는데, 대대로 원수를 맺어준 가문 중에 하나가 갈머리 집안으로 상정되어 있다.
또한 공연 <갈머리>에서, 오태석의 기존 작품 중 여러 작품의 흔적과 체취를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이 동물 흉내를 내는 연기 방식은 <내 사랑 DMZ>의 표현 방식과 유사하고, 잃어버린 동물(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여우와 사랑을>, <지네와 지렁이>에서 작가가 내세웠던 정서와 상통한다. 늙은 할머니가 출연해 극을 이끌어 가며 아들과 대립한다는 줄거리는 <운상각>의 그것과 비슷하며, 특히 마을 사람들이 실종될 수도 있는 노인을 찾아 천방산을 헤매는 것도 <운상각>의 설정 그대로이다. 그런가 하면 마을에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 있고 그 죽음에 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연계되었다는 식의 비사秘史는 <산수유>나 <자전거>와 비슷하다. 특히 5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오는 것으로 설정된 지수원이라는 인물은, 친인척을 죽이고 괴로워하는 <산수유>의 근배나 <자전거>의 예산당숙(최근 청도당숙)과 흡사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오태석의 기존 작품과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수원이 죽였다는, 아니 지수원과 마을 사람들이 죽였다는 ‘김승길’이라는 존재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김승길을 죽인 동기와 죽던 정황이다. 오태석은 김승길이 1950년에 죽었다고 설정했다. 오태석의 작품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김승길이 이념 혹은 전쟁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죽었고, 그를 죽인 이유가 민족(이데올로기) 간의 대립 혹은 마을 사람들의 분노(적개심)라고 추정할 만하다.
그 동안 오태석의 작품은 1950년대의 상황에서 출발해서 현실(최근 2006년까지 포함되는)을 훑어 다시 1950년대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갈머리>와 가장 유사한 <내 사랑 DMZ>만 해도, 처음에는 환경 파괴와 생태 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비무장지대 내의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야기로 매듭지어졌다. 앞은 환경 연극, 뒤는 이념 대립을 다룬 연극이 된 셈이다. 그런데 <갈머리>는 그러한 패턴에서 벗어난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지수원이 김승길을 죽인 사건에 이념(적인 이유)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수원과 마을 사람들은 사소한 다툼 끝에 다소 우발적으로 김승길을 죽였을 뿐이다. ‘좌’냐 ‘우’냐,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혹은 ‘앙갚음’이냐 ‘되갚음’이냐 등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로 김승길은 ‘그냥’ 죽었고, 지수원은 친구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며 5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김승길이 이념 때문에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이 작품은 오태석의 기존 작품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이러한 다름은 신선하고 낯설고 또 흥분된다. 하지만 곧 또 다른 의문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연히 한 사람을 죽인, 그것도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할까?
오태석은 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현장 검증을 실시한다. 현장 검증을 통해 50년 전의 상황을 밝히겠다는 취지였지만, 곧 현장 검증은 또 다른 살인 현장이 되고, 현장 검증에서 벌어진 살인이 정당방위였음을 증명하기 위한 제2, 제3의 현장검증이 일어난다. 현재로서는 이 검증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명확하게 정리되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오태석의 습성으로 보건대, 앞으로 이 장면들은 집중적으로 수선되어 더욱 명료한 장면으로 정리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공연의 강점은 두 가지였다. 이 작품이 낙후된 시골 생활과 노인 복지의 문제에 천착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인간 맹도견(맹인 안내견)’이라는 참신한 비유로 풀어낸 점이 이채롭다. 지면 관계상 길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시골 노인들이 빚을 갚기 위해서 맹인 안내견을 자청하며 훈련받는 광경은, 우리 사회에 만연했지만 아무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노인 문제를 통쾌하게 풍자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낙후된 농촌에 대한 문제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 오늘날의 문제를 논의하면서 그 핵심 원인으로 6.25 전쟁을 배제한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점이 <갈머리>를 대단히 낯익지만 동시에 낯선 작품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물어야 한다. 그날의 살인이 과연, 인간의 보편적 품성과 본능에 대한 물음을 일깨울 만큼 깊이 있게 이 작품에 용해되었는가? 오태석은 인간의 잠재된 폭력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도를 앞세웠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해프닝 하나를 그리는 데에 그치고 만 것은 아닌지? 이념의 무게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지금까지 오태석의 작품에서 이념/전쟁/상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그러한 예전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갈머리>는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연출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이 작품은 2005년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물보라>의 연출 스타일을 진일보시킨 측면이 있다. <물보라>에서 배우들은 어색한 몸짓과 표정으로 무대 뒤와 앞을 번갈아 쳐다보며 몸을 돌리곤 했었다. 지금도 대사에 맞추어 몸을 무대 뒤로 향했다가 관객을 향했다가를 반복하던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눈에 선한데, <갈머리>에서는 이러한 무리한 동선과 시선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배우들의 등 뒤와 눈앞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오태석은 <갈머리>를 통해 ‘숨겨둔’ 혹은 ‘숨겨진 것’들에 대한 집착을 거두고 있다. 드라마의 구조 속에 숨겨진 사연을 찾아 그 사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깊게 연관된 아픈 사연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그 연유나 비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을 보인 셈이다.
나는 오태석의 연극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극은 이제 지나친 감춤과 비약과 무리한 전환(사건의 얽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는데, 어쩌면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태석의 작품을 읽거나 보면서 지나치게 뒤엉키고 무리하게 비틀리는 사건으로 인해 이해의 가닥을 놓치는 사례가 상당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폐단에서 벗어날 여지가 보인다고 해야겠다.
2005년 말 크게 주목받았고 최근 재공연을 앞두고 있는 <용호상박>과도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용호상박>은 국내의 큰 상을 휩쓸며 최고의 연극으로 평가받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오태석 연극은 최근 부진을 씻는 듯 했다.
<용호상박> 역시 과거의 작품과 연관성이 깊다. <용호상박>은 호랑이를 등장시켜 그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는 <내 사랑 DMZ>의 플랜을 따랐다. 세부적으로 부연하면 호랑이의 움직임은 근래 공연되었던 <자전거>의 ‘소’의 움직임과 동일했다. <자전거>를 보면 윤서기가 질주하는 한우와 충돌할 뻔 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 때 소들은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들은 3~4명의 코러스로 표현되었다. 코러스들은 음악에 맞추어 무대를 관통하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정리하자면, <내사랑 DMZ>의 생태의식은 <용호상박>으로 이어져 다듬어졌고, <내사랑 DMZ>의 또 다른 문제의식이었던 이념과 전쟁에서 파생된 갈등은 <갈머리>로 이어지면서 그 색깔과 집착이 희석되었다. 2006년(2005년 말 포함)은 그런 의미에서 오태석이 기존의 고집을 누그러뜨리고, 강력했던 색깔을 탈색시키면서, 동시에 혼돈과 착종의 서사를 보다 쉽고 간편한 이야기로 구사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태석은 ‘외강’이 아닌 ‘내유’를 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5. 부산의 연출가 이성규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을 만들고 있을 때 김광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화제는 작품을 넘어 자연스럽게 김광보의 부산 시절과 성장 과정까지 이어졌는데, 그 때 김광보는 세인들이 익히 아는 것과는 달리, ‘자신을 키운’, 그러니까 자신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연출가가 극단 부두의 ‘이성규’라고 했다. 나 또한 이윤택과의 인터뷰에서 이성규의 이름을 듣고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김광보의 말을 듣고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성규가 연출한 작품 <에쿠우스>를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이성규의 연출력이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뛰어남을 확인했다. 그의 작품 <에쿠우스>는 그 이전에 내가 보았던 어떤 <에쿠우스>보다 독창적이었다. 공연은 대담함과 세심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고, 어려운 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과 강인함을 노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윤택, 김광보, 이기도가 떠난 부산에서, 부산을 지키는 소중한 연출가라고 할 수 있다.
이성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부산의 연극에 대해 먼저 해두어야 할 말이 있다. 부산의 연극은 지금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다. 부산을 가장 대표하는 극장은 가마골인데, 실상 가마골의 가장 단골 극단은 ‘연희단거리패’이다. 많은 이들이 연희단거리패가 부산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희단거리패가 부산을 대표하는 극단이 된다는 것은 그다지 기쁜 징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산의 그 많은 극단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혹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부산의 봄은 두 개의 연극제와 함께 시작한다. 부산국제연극제와 부산연극제. 두 개의 연극제는 규모 면에서 상당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외형적 규모를 감당할 내실이 부족한 상태이다. 부산의 연극인들은 서울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싫어할 테지만, 그들의 연극은 전체적으로 엉성하고 기술적인 진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패 원인을 조목조목 따지는 것은 이 원고의 성격과는 맞지 않다. 다만 부산의 연극이 침체되고 있는 것은 남의 것, 부산 이외의 지역적 특성, 발달된 연극 노하우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이성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부산 연극의 내외적 열악함을 극복하고 있는 연출가가 이성규이다. 그는 광안리 근처 남천동에 ‘액터스 소극장’을 열고, 이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발걸음이 주목되는 것은 당연히 그가 가진 정교한 그리고 일관성 있는 연출력 때문이다. 그 연출력을 증거하는 작품이 <에쿠우스>이다.
이 작품은 한국 연극사에서 여러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한 실험극장은 기록적인 공연 횟수를 남기며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젊은 연출가들 중에서도 이 작품에 도전해서 새로운 주목을 받은 경우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며, 적자에 허덕이는 극단들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도 했다.
부산에서 여러 차례 이 작품을 공연해 온 이성규 연출가는 이 작품을 공연해 달라는 관객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서 2006년(11월1일~19일, 액터스 소극장)에 다시 이 작품을 연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연출할 때마다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기 때문에, 공연할 맛이 난다고 덧붙였다. 관람을 끝낸 관객들에게 직접 감상을 물어봐도, ‘어렵지만 볼만한 연극’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한다.
이러한 인기를 분석하는 목소리는 여러 갈래이다. 누드 연기가 나오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거나, 뛰고 소리 지르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거나, 추리 구조에 입각했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거나, 주제가 다소 어렵기 때문에 집중하게 된다거나.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이 연극/공연이 관객들의 마음 저편에 있는 잃어버린 에너지를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 촉매제 역할을 하는 ‘다이사트’는 이상징후를 보이는 앨런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다. 다이사트는 다른 이들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아내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가 그러하고, 인생에 대한 지독한 회의(지겨움)가 그러하다.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신사이지만, 특정 환자에게는 몰라볼 정도로 잔혹하기도 하다. 한 마디로, 그 역시 환자이다.
이러한 다이사트는 앨런의 자유분방함에 매혹된다. 말과 하나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앨런의 행위를 사이비 종교의 그것이거나 정신이상자의 그것이 아니라, 감수성과 정열을 잃지 않은 인간 원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이다. 심지어느 그는 인간이라는 가면을 쓰고 억눌러야 했던 원초적 에너지를, 앨런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제를 고독이나 소외에서 찾는다. 그럴 여지도 어느 정도 있다. 앨런은 부모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았고, 말들은 그런 앨런의 고독을 달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터 셰퍼가 더욱 강조한 점은 다이사트의 입장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성규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성규의 공연에서 다이사트는 앨런을 통해 강한 동지의식을 회복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 회복이 곧 인간의 원초성에 대한 그리움이다.
마샬 맥루한은 재원시화(reprimitivization) 현상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문명이 발전하면, 그 구성원들이 원시부족의 의식과 제례를 따르는 이상 경향 역시 발전해 간다는 견해이다. 히피족의 탄생이나, 문신의 유행, 혹은 야릇한 소집단 구성이나 광란의 축제 같은 것은 국가라는 거대 개념에 의거한 근대 시민의 사유라기보다는, 작은 부족 단위의 삶을 체현하려는 원시인의 사유에 가깝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과 개성(자율성)의 강화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을 이미 목도하고 있다.
앨런은 이러한 재원시화 현상을 선도하는 일종의 선지자인 셈이다. 그는 부모의 규율이나 사회적 윤리 등으로 자신의 삶을 직조하지 않고, 자신의 감흥과 무의식 그리고 자신만의 종교와 은밀한 의식儀式으로 자신의 삶을 조직하려고 했다. 이것은 ‘근대적 지성인’인 다이사트에게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깨어나는 그 불길한 전염의 불길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관객은? 관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말로 설명하고 논리로 풀어내지 못한다 해도, 관객들은 이 작품이 지닌 불길하지만 매혹적이고 사악하지만 신비한 힘을 이어받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 힘을 체험하려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하나의 의식儀式이자 제의祭儀일 수밖에 없다.
이성규의 돋보이는 연출력은 이러한 의식과 제의를 만들어 내는 세련미에 있다. 배우들은 대기하는 좌석에서 일어서면 제사장처럼 사각의 무대 위로 올라갔고, 그 무대 위에서는 제사장의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듯 상대(배역)를 향한 본능을 발산하는 데에 몰두했다. 무대가 회전하고 그 안에서 앨런과 다이사트가 고뇌하고 그들을 둘러싼 관객들이 의식을 해체하도록 종용했다. 이러한 연출법은 상당한 계산과 경험을 거친 이후에야 가능한 것으로, 오랫만에 잘 짜여 진 작품 하나를 보았다는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6. 한국 연극의 새로운 기대, 박근형
박근형은 2006년 최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알려졌다. 그는 이제 가능성 있는 젊은 연출가가 아니라, 가장 각광받는 연극계의 제목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만큼 그의 위치는 확고해졌으며, 그의 극단은 2005년의 엄청난 상승세를 고스란히 이어갔다. 이제 박근형은 자신의 거취와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연출가가 되었다. 그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될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보자.
<경숙이, 경숙 아버지>라는 제목은 독특하다. 단정하고 멋진 제목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체취와 자연스러움이 배어있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다른 더 이유가 있다면, 이러한 호칭 속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딸과 남편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어메(경숙 엄마)’ 밖에 없다.
‘어메’의 입장에서 풀어보면, 이 작품은 일종의 수난기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한 여자가 한량 같은 남편을 만나 평생 고생하는 이야기. 그 남편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가족을 챙기는 법이 없고, 그 어려운 시절을 혼자 헤쳐 나가게 해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느닷없이 사라졌다가 또 느닷없이 나타나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과 재산과 가족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그런 남자이다.
한국 문학사나 연극사를 살펴보면, 수난의 여인상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채만식 소설 <탁류>의 ‘초봉’이 그러하고, 노경식 희곡 <달집>의 ‘간난노파’나 천승세 희곡 <만선>의 ‘구포댁’이 그러하다. 그녀들은 교활하고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남자들에게 삶을 속박 당했던 여성들이다.
그럼에도 박근형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이전의 작품들과 달라 보인다. 분명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어메의 희생과 인내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유일한 초점은 아니다. 경숙과 경숙 아버지의 시선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거론되고 있지만, 역사의 무게 역시 이 작품의 절대적인 중심은 아니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역사적 상황을 다소 먼 배경에 걸어 두고, 한 가족이 한 시절을 바라보는 폭넓은 시점을 투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역사적 상황은 이전 세대의 작품과는 달리 과도한 잣대로 적용되지 못한다. 경제적 곤란 같은 시대적 어려움도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작품의 중심은 어메와 아베와 경숙이 이루는 삼각형의 가족 구도와, 이 가족 구도를 확대시키는 반半 가족 구성원들의 풍경 속으로 분산되고 있다. 확대된 가족들이 이루는 의미의 동심원 속에 작품의 핵심이 용해되었다고나 할까.
아베의 시선으로 작품을 재구하면, 핏줄의 역사가 된다. 아베는 어려서부터 ‘아베의 아베’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물려받고, 우선 자신의 인생부터 챙기는 법을 배웠다. 물론 ‘아베의 아베’는, 아들에게 냉혹한 세상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고, 그 세상을 살아내는 법을 전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세상을 살아야 했던 아베가, ‘아베의 아베’가 물려준 교훈을 본뜻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경숙의 출산 오프닝을 지나면, 바로 아베의 이야기이다. 아베는 전쟁이 났다며, 세상이 미쳤다며, 피난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을 챙길 엄두도 내지 못한다. 울며불며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경숙과 아내를 두고, 그는 장고와 군화와 주먹밥을 들고 단신 피난길에 오른다.
다음 장면은 아베가 돌아오는 장면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3년 정도 흐른 시점으로, 아베는 떠날 때처럼 느닷없이 돌아온다. 박근형은 아베가 3년 동안 어떠한 고초를 겪었는지,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베가 거제도에 있었고 딘 소장과 관련된 모종의 사건을 겪었다는 흐릿한 암시만 남길 뿐이다. 그 시간에 대한 언급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박근형은 말하는 듯 하다.
어메에 대한 언급을 살펴도 마찬가지이다. 차범석의 <산불>이나 노경식의 <달집>이었다면, 집에 남았던 여인들이 얼마나 큰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를 증언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형은 유머러스한 대사 한두 마디로 빨치산과 관련된 그녀들의 수난을 처리해버렸다.
대신 박근형이 조명한 것은 한 남자의 방황과 외도이다. 박근형에게 아베의 피난은 역사적 고난이기보다는 가족을 방기한 무책임한 방황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은 ‘아베의 아베의 그 아베’로부터 물려져오는 외도의 기억이기도 하다. 박근형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토로한 말들을 참조한다면, 그는 이러한 아버지들의 방황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솔직함이 우리를 놀라게 했고, 그 아버지들에게 항의하게 만들었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아버지에 대해 성찰하도록 종용했다고 할 수 있다.
딸 경숙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성장기이다. 유년의 경숙에게 아버지는 원망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베는 전쟁이 나자 가족을 버렸고, 전쟁이 끝나고서는 가족을 팔았으며, 느닷없이 새 엄마를 데리고 나타나 가정의 평온을 해쳤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아베는 없어도 그만, 있으면 불편한 어떤 존재였다.
이 작품의 오프닝은 경숙이 자라서 자식을 낳는 장면이다. 경숙이는 이미 커버린 상태이고, 그 옛날의 아베처럼 부모가 되려는 시점에 놓여있다. 다시 말해서 경숙이는 유년의 혼란과 아베로부터 받은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관문에 서 있다. 문제는 경숙이 진실로 아베로 인한 유년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작품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려는 듯, 경숙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숙의 성장 과정을 뒤따르기 시작한다. 경숙은 그 과정에서 어메에게 아베와의 결혼 스토리를 묻기도 하고, 아베의 입을 통해 ‘아베의 아베’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이러한 사연들은 아베와 어메에 대한 경숙의 의식意識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경숙의 의식 중에서 아베와 관련된 몇 대목이 눈에 띤다. 꺽꺽이 아제와 살면서 아베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 임신한 어메를 보면서 아베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대목, 아베를 피해 이사 가자는 꺽꺽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는 대목, 딸의 나이도 모르느냐고 아베를 공박하는 대목, 그리고 졸업식장에 나타나 선물을 내미는 아베의 손길을 거부하는 대목, 그러면서도 떠나는 아베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어딜 그래 가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자신들도 이제는 데리고 가 달라고 읊조리는 대목이 그러하다.
처음, 경숙은 아베를 무서워하면서도 기피했었다. 그녀에게 아베는 없어도 그만, 있으면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베가 필요함을 느꼈고, 진짜 아버지가 아베 역할을 못한다면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결국 아베의 말처럼 아베 없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아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인생은 비록 혼자이지만, 그리움마저 버릴 수는 없음을 깨닫는 것이 경숙의 성장이었던 셈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출산한 경숙이가 새로운 생명을 안고 가족들과 보내는 단란한 한 때이다. 한 때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삼촌이 된 꺽꺽이 아제, 역시 한 때는 새 엄마였지만 지금은 이모가 된 ‘자야’ 아줌마, 그리고 어메와 남편과 아들. 그들은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한 무리로 엉켜 사진을 찍는다.
빠진 사람이 있다면 아베이다. 그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꿈처럼 환각처럼 아베가 등장한다. 수상한 시간을 거쳐 확대된 가족들 주위를 맴돌면서 여전히 한량의 몸짓을 버리지 못하는 아베. 아마 아베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경숙뿐일 것이다. 이제는 경숙도 아베에 대한 증오를 떨쳐버린 듯, 아베를 보는 눈매는 곱기만 하다. 아베 역시 인생은 혼자라는 고집을 버린 듯, 태어난 손자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
경숙은 아베의 모습을 이 빠진 가족사진에 채워 넣음으로써,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혼란한 자신의 가계를, 길고 긴 성장의 터널을 정리해낸다. 경숙의 정리는 혼란스러웠던 우리 역사와 붕괴된 가족관에 대한 정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화와 식민 통치와 전쟁과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의 아베와 어메가 지켜야 했던 삶의 양식’을 ‘현재 우리 삶의 양식’으로 끊임없이 변화시켜야 했다.
이상한 가족사진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결혼하면 반드시 부부로 살아야 한다는 규칙이 파괴되고,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관례가 바뀌며, 핏줄에 의한 가족만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변화하는 근 100년의 기록이기도 하다. 결국 박근형은 반세기 이전의 가족 풍경을 통해 현재 우리의 가족 풍경을 해부해낸 셈이다. 이것이 그가 그 이전 세대와 다른 개성이며, 그의 희곡이 현시점에서 통용되는 이유이며, 그의 연극이 현장에서 피부로 와 닿은 소중한 매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극에서 몇 가지 우려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 이전의 박근형 연극은 대단히 냉정했고 또한 침착했다. 특히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일수록, 무미건조한 대사가 만들어내는 황량한 세상을 경험하도록 종용하는 데에 탁월한 힘을 발휘하곤 했었다. 이것은 특이한 관람 체험에 해당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침착함을 상당 부분 상실하면서, 그러한 관람 체험을 변화시켰다.
아내가 남편의 첩 앞에서 부르짖는 절규는 심정적으로 이해되지 못할 법도 없으나 연극의 기본적인 정조로 볼 때 과장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내의 세월을 견뎌 온 여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할까. 칼로 배를 찔러 자해를 하는 장면도 과잉된 연기였고, 목사의 등장으로 어색한 장면을 넘어간 것도 어색한 설정이었다.
골목길의 세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골목길은 간결한 세트와 장치로만 무대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고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보다 집중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극단이다. 이것은 독자적인 전략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서 이러한 간결한 세트는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첫째 부자연스러운 대사를 만들어냈다. 경숙이가 주로 취하는 동선 가운데 눕는 동선이 있는데, 그 동선은 지금의 세트 상황에서는 상자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그렇게 되어 있는데, 과연 이것이 합당한지는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오프닝 장면의 배우 위치는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국부 조명에 의거해서 경숙이가 애를 낳은 장면을 묘사했는데, 배우들의 위치와 상호 연관성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셋째 어메가 둘째를 낳은 장면과 아베의 노랫소리가 겹쳐지는 대목도 장치들의 번잡함으로 인해 제대로 오버―랩(O.L.)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세트가 배우들의 연기를 아늑하게 감싸주지 못하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폐단을 만들었다.
과거 한국 연극은 훌륭한 세트(장치가)를 훌륭한 연출가만큼 우선시한 관례가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고는 할 수 없다. 뛰어난 연출가들은 뛰어난 장치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관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골목길은 아직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는 못한 것 같다. 과거처럼 휘황한 세트에 의지해서 연극을 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부자연스러운 동선과 어색한 분위기를 초래하는 초라한 세트에 의지해서 연극을 만들어야 하는 시절도 아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더욱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단점이 비록 있었지만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이윤택의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과 함께 2006년의 최고 연극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그것은 박근형이 보여준 희곡의 우수성이 한 몫 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희곡을 제멋대로 써서 문제가 되는 세상에서 박근형과 같은 침착한 극작술은 광범위한 참조사항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7. 두 명의 젊은 연출가들
2006년은 <왕의 남자>의 놀라운 기세와 함께 출발했다. 이 영화는 당초 예상을 넘어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관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원작인 연극에 대한 관심으로 파급되었다. 연극 <이爾>가 <왕의 남자>의 원작임이 알려지면서, 원작 연극은 연극 작품으로는 드물게 흥행 몰이에 나서게 되었다. 실제로 2006년 서울 공연과 부산 공연에서 확인되듯이, <이>의 관객들은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그들의 관심사는 연극 <이>에 있기보다는 영화 <왕의 남자>와의 비교에 있었다. 비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능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 전통연희의 발굴과 활용이었다.
연극 <이>는 전통연희의 발굴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연극계를 긴장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 궁중 광대廣大 혹은 경중우인京中優人의 삶과 고난을 한 축으로 삼고, 다른 한 축에 정치적인 격변기(연산군 시대)를 대비시켜 구조적으로 균형을 이루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전자의 한 축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후자의 한 축마저 무한히 칭찬하는 입장에 서면서, 실제로 두 축이 보기만큼 매끄럽게 융합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일쑤였다. 공길이라는 문제적 배우와, 연산이라는 문제적인 인간(군주)이 등위적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는 초연이 있은 지 3~4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연극 <이>를 본다는 것은, 이러한 약점을 함께 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연극 <이>는 과거 연극의 한 종류인 소학지희를 응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소학지희笑謔之戱는 규식지희規式之戱와 함께 조선 연극을 양분하는 연극의 갈래였다. 규식지희가 곡예에 가깝다면 소학지희는 만담 혹은 개그에 가깝다. 사서에서 공길은 소학지희를 통해 임금을 웃기던 우인이었는데, 그만 왕의 분노를 사서 귀향 갔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즉 공길의 임무는 곡예가 아닌 개그였다.
연극 <이>는 과거의 개그를 통해 연극적 진행을 되살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 <이>는 과거의 개그를 살려 내는 정적인 형식일 수밖에 없다. 정적인 형식이라는 지적은 영화 <왕의 남자>와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영화가 움직이고 뛰고 돌고 뛰어내리는 움직임과 활동(남사당의 여섯 기예)을 살려내고 있다면, 연극은 이러한 동적인 역량을 배제하고 정적인 말과 설명(만담)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의 개그를 살려내는 두 장(면)은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나머지 장들은 작품의 역동성을 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연극 <이>가 가진 최대 약점이다.
지금까지의 연극은 이러한 약점을 제대로 보완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산과 녹수의 이야기/공길과 장생의 이야기도 구조적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있다. 연산의 고민과 연산 시대의 문제의식도, 같은 시대를 다루었던 여타의 작품이 이미 견지했던 문제의식을 넘지 못했다. 이것은 큰 아쉬움이다. 다만 연극 <이>는 우리 선조들의 소리와 인식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것을 새롭게 발굴해야 하는 이유이자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전반기에 연극이 흥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김태웅이 가장 주목받는 신진 연출가였다면, 2006년 후반기에는 두 달 동안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파격적인 공연 기회를 얻은 신진 연출가가 출연했다. 하지만 고선웅 작, 연출의 <모래여자>를 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선웅은 아베코보의 잘 알려진 소설 <모래의 여자>(한국어판 간행 제목)를 재창작하여 자신의 공연 대본 즉, 희곡의 형태로 변형시킨 <모래여자>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쉽게도, 재창작이 가지는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베코보의 원작 소설은 ‘부조리극’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나 이오네스코의 <수업> 등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공간이 설정되고, 그 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를 지닌 인물들이 포진된다. 나그네를 가두고 모래를 치우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심리와, 그들을 닮아가는 나그네의 심리는, 결국에는 학생을 살해하고 마는 교수(<수업>)의 그것처럼 복잡다단하고 알 듯 모를 듯 야릇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가 하면 ‘고고’나 ‘디디’처럼 한 자리를 맴돌면서 해가 가고 날이 져도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운명도 유사하다(<고도를 기다리며>). 나그네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구출하기를 기다리면서 토굴 속에서 견뎌야 한다. 개미지옥 같은 토굴의 구조와 그 안에서 맴도는 나그네의 운명은,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고고나 디디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아베코보의 원작 소설이 인간 행위의 부질없는 반복과 인간 세계의 모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조리극의 부조리성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작소설을 희곡의 형태로 전환할 때, 가장 가까운 장르는 부조리극이다. 고선웅의 공연에서 대략 4분의 3 가량의 분량은 원작의 설정에 충실한 상태로 부조리극의 면모에 접근했다. 대사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서 비주얼한 측면이 다소 부족했지만, 오랜만에 부조리극 언어의 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순간도 간혹 있었다. 문제는 결말 부분의 4분의 1 가량이었다.
고선웅은 나그네와 여자의 만남을 영혼의 만남, 그러니까 현실의 만남이 아니라 불가시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 환몽으로 처리했다. 과거 마을의 순수성(이 순수성은 정신의 순수성과 생태의 순수성을 아우르려 했다)을 지키다가 죽어 간 여인의 혼백이 한 남자의 혼백을 만나는 이야기로 몰고 갔는데, 이로 인해 삶의 묘한 부조리성이나 인식의 혼돈은 파괴되었다. 대신,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하나 얻어 듣게 되었다는 허탈한 인식만 남았다. 관객들은 꿈처럼 환몽처럼 귀신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냥, 현실과는 무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결론에 멈추어야 했다. ‘현대판 전설의 고향’인 셈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이 공연의 장점도 상당하다. 우물 속 같은 거대한 토굴을 세워서 올려다보는 자(나그네, 여자, 그리고 관객)와 내려다보는 자(마을 이장)의 시선을 대비시킨 점, 그로테스크한 배치로 미학적 균형감마저 느끼게 한 세트를 제시한 점, 한국적으로 바뀐 대사와, 소설의 원 대사를 변형하여 만든 재치 있는 설정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결론이 주는 참담함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론의 패착은 아마도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국 연극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대본/희곡이다. 단순히 새롭기만 한 대본이라면 어디든지 있다. 대학로 어디에도 새로운 대본이 새로운 연극이라는 의상을 입고 활보 중이다. 문제는 그 중에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삶의 의미나 철학을 담보하며, 관객과 현실의 동시대성을 정확히 포착하여, 공연 대본으로서의 현장성을 획득한 새로운 대본이 드물다는 것이다.
고선웅에게는 탈출구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2003년 10월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 그의 작품 <성인용 황금박쥐>이다. 이 공연에서 고선웅은 1930년대의 이상李箱과 그의 소설 속 주인공 날개 없는 인간을, 2000년대의 새로운 감수성으로 재탄생시켰다. 1930년대의 경성 역과 몸을 파는 아내와 암담한 서울을 탈출해야 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고선웅은 암담한 지하굴(지하철)과 섹스에 굶주린 남녀들과 네온사인과 술로 범벅이 된 어두운 하늘로 탈출해야 하는 현대인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겉은 허리우드 영화 <베트맨>이나 만화 <황금박쥐>를 닮았지만, 그 내부는 이상의 기묘한 전언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텍스트 전환과 패러디는, 아베코보의 작품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어, 미래에 또다시 행할 수 있는 또다른 ‘고선웅 판 재창작’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8. 2006년 연극계가 기억해야 할 것들
이윤택과 오태석은 달라졌다. 이윤택은 올해에도 많은 작품을 공연했다. 2006년을 열면서 <바보각시>를 공연했고, 그토록 숙원이던 <우리에게는 또다른 정부가 있다>를 다시 공연했다. 부산 사람들만 볼 수 있었지만 <탈선춘향전>(이주홍 원작)을 무대에 올렸고,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일본 만화가가 쓴 연극대본을 가지고 <류의 노래>(일본 순회공연 후에 서울 공연 예정)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는 그에게 2006년도 매우 다양하고 또한 분주한 한 해였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서도 <억척어멈과 그(녀)의 자식들>에 집중했다. 이 연극이 특별한 것은 이윤택이 90년대 후반 이후 숱한 연극을 거의 동시에 작업했고 일 년에도 대여섯 편씩 무대에 올리는 기염을 과시했지만, 이 작품만큼 길게 공들여 만든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단이 겪고 있는 내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윤택은 이 작품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재창작과 재구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2000년대의 중요한 성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윤택 개인에게도 지금까지 연극 제작 관행과 공연에 대한 생각을 다소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태숙과 오태석과 박근형은 자신의 세계를 진일보시킨 연극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오태석은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행보를 택했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연극적 핵심, 연출가적 전언이 삭제되는 기미가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보다 편안해진 연극/관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예측도 가능해졌다.
반면 한태숙은 한 가지 문제에 천착해서 뚜렷한 성과를 남기고 있다. 불안(어둠)에 관한 천착이 그것이다. 한태숙의 최근 작품들은 물리적으로도 어둡고 심리적으로도 어두웠다. 그 어둠이 내면적 통로를 따라 회귀하면 본능이자 무의식이자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에 이를 터이고, 외형적 갈등을 따라 펼쳐지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피어나는 질투와 증오 혹은 비밀에 닿을 수 있을 터이다. 그녀의 무대를 뒷받침하는 차가운 느낌의 무대 장치(세트, 소품)와 함께, 이러한 어둠은 비정함을 구현하는 요소로 격상 될 전망이다.
젊은 연출가로 분류되곤 하던 박근형은 이제 연극계의 중견과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책임을 더욱 깊이 져야 할 입장에 놓였다. 특히 다른 극단과 하는 작업들이 늘어난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세간의 평처럼 ‘골목길’ 자체 연극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2007년에 기획되고 또 공연 중인 다른 작품에서도 그만의 색깔이 배어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부산 출신 연출가의 존재와 젊은 연출가들의 실패는 기억할 만한 화두가 아닌가 한다. 젊은 연출가들의 작품은 젊은 관객층의 적지 않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아직은 이야기를 꾸미고 전언을 만드는 데에 적지 않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연극은 보여주는 예술이지만, 또한 생각하고 기억되는 예술이기도 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산 출신 연출가 이성규는 다시 우리 연극사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의 연출가적 위상과 역할은, 우리 연극사의 중요한 맥락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기할 필요가 있겠다.
김남석
1973년 서울 출생.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비평의 교향악.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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