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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신작시/김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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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3회 작성일 08-03-0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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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산

이끼․1


어느 시인이 평생을 가꾸다 남기고 간
고려비단이끼
화분 한 귀퉁이 천년 가야 토기 파편을 꽂고
바위부스러기 마사를 깔고
그 속에 닭뼈를 묻어 지네 한 마리 꿈틀대고
건너편 외진 구석
실낱 같은 분홍기린초가 하늘거리며 공중으로 뻗어간다
무덤을 쓸 듯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까칠까칠한 머리를 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잔디를 스치는 감촉, 아 그러고보니
직사각형 청자빛 화분에 심어놓은 이끼가
잘 조성된 작은 무덤 같다
습기를 머금고 그늘에 사는 이끼다
화사하지도 누추하지도 않는 이끼다
듬성듬성 고비가 웃자라
손바닥을 대어보니 물기가 배어나온다 너는
죽은 것 같지만 안 죽고, 물기가 오면
또 살아나는 것, 어디 돌 속에 숨어 있다가도
나타난다 나타나 막 퍼져나간다
그가 허묘를 쓴 것인가
그가 묘혈을 방안에 만들었나
매장인지 화장인지 수장인지 모르게
왕족의 무덤 같기도 하고
평민의 무덤 같기도 하고
아니 평묘 같기도 한
고려비단이끼
누가 살다가 가버린 세상에 없는 무덤



이끼․2


죽음의 시간은 있어도
시간은 죽지 않는다
무덤에서 이끼가 올라오는
사막이 있는 지구에서는
사막의 이끼는 모래를 끌어안고
딴딴한 흙이 되기까지 오십 년이 걸린다
바위가 모래가 되고 흙이 되고
다시 바위가 되는 永劫이여
다시 보면 죽음의 시간도 없다

이끼는 어디나 있지만 또 없다
눈에 띌 듯 띄지 않는 죽음이여
그러나 죽은 바위 죽은 기왓장 무덤에서
너는 당당히 살아난다 살아나 바위를
무덤을 되살린다
살아있는 무덤의 이끼여
바위여

오 젊고 늙음이 없는
나이 없는 이끼여

어제 죽은 시인의 이끼를 보다가
오늘 임하댐 수문에 핀 이끼를 본다
주왕산 까마득한 절벽에 달라붙은
바위옷을 본다 바위가 되어 또
살아나 번성한다

지난날의 사랑에 묵은 이끼 끼고
돌 속에 숨었다
너는 불현듯 나타난다
돌 속의 돌
바늘 한 쌈을 분질러 심어놓은 것처럼
아프게 콕콕 찌르며 너는 온다
오 이끼를 맞이하는 나이여
隱者 같지만 아니지요?

변두리에 반지 끼듯
너는 온다



김영산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90년《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벽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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