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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책·크리틱/문종필/당신은 여전히 아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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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3회 작성일 20-01-0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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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책·크리틱/문종필/당신은 여전히 아픈사람


문종필


당신은 여전히 아픈 사람1)



1.
박서영 시인은 “2018년 2월 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③:121) 그는 생전에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와 『좋은 구름』을 펴냈고, 유고시집으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와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를 간행했다.
네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사랑한 당신을 떠올리게 되었고, 당신과 함께한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와 이별 후 다가올 감정에 대해 헤아리게 되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나, 시인이 사랑한 당신을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남았는지 몽상하기도 했다.


2.
시인에게 있어서 당신에게 향하는 감정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더욱더 강렬하게 쏟아졌다. 그녀는 변하는 사랑의 속성을 온몸으로 깔아뭉갰다. 이 시집을 읽은 독자들은 오랜 시간 진리로 여겨졌던 사랑의 속성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강력한 관성을 회전해 보이는 것!


시가 읽히지 않는 이 시대에 시인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이자, 피를 쏟으며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다.  


3.
2006년에 출간된 첫 시집을 펼쳐보면 “사라지지 않은 죽음. 바람 소리에 문득 깨어나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①:2)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13년 후, 2019년에 간행된 마지막 유고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에 수록된 「들꽃·3」에서는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내 영혼에 구멍을 내고/밤새 개고기를 씹어라”(④:102-103)라고 적혀 있다.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과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는 말이 오묘하게 겹쳐진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것이다. 
그녀는 지독하게 자신의 몸을 혹사시켰다. “아름답게 치솟는”(①:48) 시인의 고집을 인정해야 마땅하나, 문학이 그녀의 살점을 힘 있게 뜯어 먹기도 했다. 자신 스스로 “내 상처로 누군가 감상적이 되거나/내 뿔에 치여 누군가 우는 것”(①:48)이 싫다고 고백했지만, 독자들은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감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울고 우는 연습을 경험해야만 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시집을 넘겨본다. 당신의 고향은 “눈 내리는/강원도 정선”(①:20) 이고, “아름다운 귀”(①:32)를 가졌다. “내가 비를 좋아한다는 걸”(④:107)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신은 그녀 곁에서 “긴 발들”(④:48)이 되고자 했다. 이별 후, “누군가를 찌르는 나쁜 기억이 되지 않으려고/밥 먹자 하면 꼬박꼬박 밥 먹으러 나와”(④:40) 준 착한 사람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영혼을 보여준 날부터/싸우기 시작”(④:88) 했지만 당신과 시인이 열렬히 사랑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당신을 잊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 미역을 삼켰다.  


4.
환상의 영역에 속하는 대상은 잡으면 잡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질량이 늘어나 들어 올리지 못한다. 더욱이 이 대상은 밖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만지기가 쉽지 않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잡을 수 없는 것을 이전 악력보다 더 힘차게 움켜쥐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에게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헛손질만 하게 된다.
그녀의 시집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쓰였다. 세상이 “기억을 왜곡”(④:20)하더라도 변하지 않도록 그녀는 잘 손질한다.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모든 것이 당신으로 채워진다. 그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가 지나치게 보일 수 있으나, 이 지나침이 무거운 시집 속에 차디찬 생명을 불어 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인의 의지는 가속화된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죽음과 직면한 탓도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더 고독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죽게 되면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당신을 향한 무게는 계속해서 무거워질 뿐이다. 시인은 “한 호흡만 더 건너가자, 생이여”(④:49)라며 ‘당신’을 통해 자신이 해왔던 작업을 완수한다.


물론 시인도 당신을 향한 집착이 과중하다는 것을 안다. 시인은 “난 따라갈 수 없고 당신은 언제나 떠날 수 있다”고 체념한다. “당신을 켜고 끄는 건 내 의지가 아니”(④:53)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궁극에는 “필사적으로 당신”(④:67)의 손을 거둬들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이 해왔던 습관을 평소처럼 밀고 나가야만 한다. 그녀는 충동의 영역에서 습관을 멈추지 못한다.
묵직하고 어두운 그녀의 세계관에서도 따뜻한 흔적이 발견된다. 시인의 몸 안에는 어두운 것만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조각들이 살아 숨쉬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이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길어다 시창작에 적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시집에서 확인되는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②“26)에 대한 단상이나, “불우한 기억을 뚫고”(②:41) 자라는 아름다운 꽃을 연상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을 끌어올리기에는 너무나 빨리 죽음이 찾아왔다.


5.
시인은 죽음을 친숙한 대상으로 여겼다. 그녀의 첫 시집에 수록된 ‘무덤 박물관’과 관련된 연작시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공동묘지 주변에”(④:59) 직접 살았다는 고백은 이를 증명한다. 
시인은 당신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탓에 억눌린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게 된다. 이 에너지는 지독하게 강력한 것이어서 그녀의 이름으로 출간된 네 권의 시집 모두 ‘당신’이 꿈틀거린다.
시인은 모든 추억을 손쉽게 당신으로 “변주”(④:51)한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시 쓰기를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는 새로워야 하고 새로운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박서영 시인은 하나의 방법론을 지독하게 운영해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 방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필요한데,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진정성을 획득했다. 그 방법은 계산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 것이다. 멋지게 사랑한 탓에, 그녀의 예술은 성공적으로 펼쳐졌다. 


당신 등에는 여전히 파먹을 게 많아
사랑도 슬픔도 당신 등에 다 쏟아진 것 같아
딱딱하게 감춰두었지만
난 그것을 알기에 당신을 떠나지 않아
당신 등에 피멍이 난다면 내가 구름으로 덮어줄거야.


─「거북이와 새」 전문


너의 피멍 난 등을 하얀 구름으로 덮어 준다는 것, 이것이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가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거짓 없이 제시한다는 데 있다.


  사랑이 변한다는 명제는 틀렸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문종필 2017년 《시작》으로 문학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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