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74호/고전읽기/권순긍/금지된 사랑, 그 황홀한 고통, 『운영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88회 작성일 20-01-10 11:27

본문

74호/고전읽기/권순긍/금지된 사랑, 그 황홀한 고통, 『운영전』


권순긍


금지된 사랑, 그 황홀한 고통, 『운영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하여


이 세상의 사람 수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사랑이지만, 그 모두가 다 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것이 또한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하고 가슴 저미는 아픔을 겪기도 하고 슬퍼 눈물짓기도 하지만 때로는 광란의 불꽃으로 타오르기도 하는, 그야말로 만인만색萬人萬色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리라. 사회통념상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어쩌랴, 운명運命인 것을! 그러기에 가장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세계 명작에 등장하는 사랑치고 그런 금지된 사랑을 그리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를 보라. 서로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사랑을 향해 질주하며 타오른다. 그만큼 애절하기에 그 사랑의 진정성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리라.
1970년대, 그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지금은 수더분하고 펑퍼짐한 아줌마가 됐지만 그 때는 가녀린 소녀 가수 양희은이 불렀던 노래 중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곡이 있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당시 정치적 함의含意로도 읽혔지만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적인 몸부림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를테면 “빗줄기야 거세게 내 얼굴을 때려다오/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같은 식이다. 무엇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절망의 심연으로 몰고 갔을까? 거부할 수 없지만 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사랑’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더욱 찬연한 불꽃으로 타올랐으리라.
이런 금지된 사랑의 얘기가 고전에도 있으니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실려 있는 「심화요탑心火繞塔」이다. 지귀志鬼라는 역졸이 선덕여왕을 너무 사모해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여 슬피 우느라 몸이 야위어갔다. 그 애절한 사연을 들은 선덕여왕은 영묘사라는 절에 가서 향을 사를 때 한번 만나보겠다고 지귀를 불렀다. 그런데 지귀가 여왕을 만나기 위해 행차를 기다리다가 긴장한 탓인지 탑 아래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곤히 자는 역졸을 깨울 수 없어 여왕은 자신이 차고 있던 팔찌를 빼서 만남의 징표로 그 역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여왕이 떠나고 난 뒤에 잠이 깬 역졸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불이 되어 자신을 태우고 그 탑을 돌았다는 얘기다.
여왕과 역졸은 서로간의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반해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왕을 사랑하게 되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너무 사모한 나머지 이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여왕이 가슴에 얹어준 팔찌를 징표삼아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불꽃이 자신을 태워버린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 속 불이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됐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상징적이다. 실제 이야기에서 마음의 불心火이 나서 온 몸을 태웠다고 하는데 금지된 사랑의 열병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이승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이런 금지된 사랑 이야기의 대표작은 바로 수성궁壽聖宮의 궁녀와 젊은 선비의 사랑을 그린 『운영전雲英傳』이다. 장소를 따서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으로도 불린다. 이야기는 유영柳永이라는 젊은 선비가 봄날의 흥에 못 이겨 폐허가 된 안평대군의 거처인 수성궁에 놀러 갔다가 서로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두 남녀, 김진사와 운영雲英의 넋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는 것으로 짜여있다.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인 셈인데, 궁녀였던 운영이 “가슴에 쌓인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시험 삼아 말할 테니, 낭군께서 곁에 계시면서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충해 주십시오.”라며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운영전』의 속이야기는 펼쳐진다.
금지된 사랑은 남녀의 만남이 자유로워진 근대 이후에나 가능했을 법하지만 중세 봉건시대에도 남녀의 만남이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운영전』처럼 궁녀와 선비의 만남은 아주 드문 경우이다. 운영의 주인인 안평대군의 말처럼 “궁녀가 한번이라도 궁문을 나가는 일이 있으면 그 대가는 죽음이다. 또 외부인으로 궁녀의 이름을 아는 자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사랑은 죽음을 각오한 그런 애절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자, 애절하면서 아슬아슬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떻게 이들이 만나게 됐을까?


아슬아슬한 사랑의 행로行路와 비극적 종말


안평대군이 기거하는 수성궁으로 수려한 젊은 선비 김진사가 찾아와 시를 짓는 자리에 궁녀들이 불려나가고 운영은 그 옆에서 먹을 갈게 되면서 이들은 만난다. 김진사가 글씨를 쓰다가 먹물 한 방울이 운영의 손가락에 잘못 떨어져 이들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숙명적인 사랑이라고 할까. 서로는 무엇에 홀린 듯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상사병에 걸리게 된다. 김진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에 있었던 젊은 선비였지만 수성궁의 궁녀로 있는 운영이 문제였다. 궁녀는 죽기 전에는 절대로 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궁녀의 처지는 새장에 갇힌 새이며 화분에 심은 화초인 것이다. 주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지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풀려날 기약 없는 감옥에 갇힌 처지인 것이다. 운영과 그의 친구 자란, 은섬, 옥녀, 비취가 서궁西宮으로 거처를 옮기자 운영이 “산사람도 중도 아니면서 이렇게 깊은 궁에 갇혀 있으니 이야말로 장신궁(長信宮;한나라 태후가 과부가 되어 홀로 살던 궁궐)과 다를 바 없구나”라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을 정도다.
이런 운영에게 정말 벼락같이, 해서는 안 될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열일곱 살 처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궁녀의 처지를 자각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마음을 잡는 방법이 있겠지만, 운영은 그러지 않았다.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속으로 자신의 온 존재를 던져 불사른 것이다.
운영은 김진사가 올 때마다 문틈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았지만, 운영을 보지 못하는 김진사는 몸이 날로 여위어갔다. 서로를 그리워하다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어느날 운영은 사랑의 징표로 다음과 같은 시를 한편 써서 자신의 금비녀와 함께 싸 김진사에게 전해 줄 결심을 하게 된다.


베 옷 입고 가죽대 두른 성비
옥 같은 얼굴은 신선 같아라

날마다 주렴 사이 건너다보는데
어찌하여 월하의 인연 맺지 못 하는가
얼굴 씻으니 눈물은 물줄기 되고
거문고 타면 한은 줄이 되어 우네
끝없는 원망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머리 들어 홀로 하늘에 하소연 하네


이 사랑의 시는 사랑하는 님을 향한 애절한 하소연이다. 왜 사랑은 늘 확인받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를 시를 써서 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전할 지도 문제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저녁 안평대군은 술잔치를 크게 열어 손님들에게 김진사의 재주를 칭찬하고 그가 지은 시를 보여주는 자리가 있었다.
운영은 옆방으로 가 벽 하나를 마주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곤 밤이 깊어지자 벽을 헐어 김진사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무슨 첩보영화 같은 그 부분을 보자.


밤이 깊어지고 손님들은 저마다 한껏 취했습니다. 저는 벽을 헐어 구멍을 조금 내고 들여다보았지요. 진사님도 제 뜻을 알고 구석을 향해 앉더군요. 제가 편지를 구멍으로 던졌더니 얼른 주워 숨기고 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뜯어 시와 사연을 읽어보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도무지 편지를 손에서 놓지를 못하셨답니다. 그리운 마음은 전보다 더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답니다. 바로 답장을 쓴 다음 보내려고 했지만 전할 길이 없어 날마다 늘어가는 것은 슬픔과 탄식뿐이었답니다.


얼마나 기막히고도 당찬 행동인가! 사랑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무모하고 용감하게 만든다. 김진사 역시도 운영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무녀巫女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고, 그녀의 협조로 천신만고 끝에 사랑의 편지를 전한다.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누르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말 케케묵었지만 따뜻함이 전해지는 아날로그의 감동이다. 편지 한 장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고 목소리인 것이다. 옛날 흘러간 올드 팝송 중 「키스로 봉한 편지sealed with a kiss」가 바로 그런 사연이지 않은가. 그래서 김진사의 답장을 읽은 운영은 “갑자기 주변의 온갖 소리가 끊기었습니다. 기가 막혀 입으로는 말이 되질 않았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 눈물이 다하자 피가 뒤를 이어 흘러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병풍 뒤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고 한다. 바로 사랑을 젏정이자 전율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만 확인했을 뿐, 만날 수 없기에 더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의 극치다.
이제 서로의 사랑을 편지로 확인했으니, 그 다음은 서로가 만나는 일이 남아 있다. 이른바 ‘밀회密會’다. 금지된 사랑에서 밀회는 얼마나 황홀하고도 위험스러운가! 이런 사랑의 곡예를 다룬 영화를 보다보면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운 부분이 바로 이 밀회장면이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열중할 뿐이고 주변의 아무것도 보거나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다.
사랑의 편지를 전해주는데 무녀가 있었다면, 담장을 넘어 운영을 만나는 데는 김진사의 흉악한 하인 특特이 있었다. 특은 김진사의 재산과 운영을 차지할 욕심으로 김진사에게 담을 넘는 방법을 일러준다. 어쨌거나 김진사는 수성궁의 높은 담장을 넘어 운영의 단짝인 지란의 안내를 받아 그리운 사랑, 운영과 드디어 대면한다. 그 짜릿한 밀회의 즐거움이 어떻겠는가? 『운영전』은 그 부분을 이렇게 전한다.


등불을 끄고 우리는 곧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즐거움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밤은 금세 새벽이 되었습니다. 닭들이 날새기를 재촉하고 있을 때 진사는 일어나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날마다 어두울 때 담을 넘어와서 새벽에 돌아가시곤 했습니다. 나날이 사랑은 깊어지고 정은 두터워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자취가 남는 법. 눈이라도 온 날이라면 눈 위에 남는 발자국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겠지요. 진사의 출입을 알고 있는 궁녀들은 모두를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지요.

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사랑의 행로行路인가. 마치 줄타기 곡예를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작품에서도 얘기하고 있듯이 이들의 불붙은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처럼 제한된 사랑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서로를 불태우면서 비극적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 김진사의 시 중에서 “담장을 따라가며 몰래 풍류의 곡조를 훔치네”라는 구절이 안평대군의 의심을 사게 되고, 운영 또한 “운영의 시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뚜렷하구나, 전에 지은 시에서도 그런 자취가 보이더니, 도대체 네가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지난번 김진사의 시에도 의심스러운 구절이 있었는데, 너 혹시 김진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고 대군의 의심을 받게 되어 이들의 사랑이 위기에 닥친다.
둘이 밤에 도망할 것도 생각했지만 차마 결행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김진사의 하인 특이 도망가려고 맡겨둔 운영의 보물을 차지할 욕심으로 서궁에 사람이 드나든다는 소문을 내어 화가 난 대군이 5명의 궁녀들을 죽일 작정으로 문초를 하기에 이른다. 이를 5명의 궁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지어 올렸지만 모든 비밀이 드러나 운영은 결국 비단수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김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르니 이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렇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어찌할 것인가, 이들의 사랑을!.


봉건제도의 억압과 자유를 향한 절규


『운영전』은 이런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폭압적인 봉건윤리와 사회제도의 비인간적 측면을 문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왜 이들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아무 잘못도 없이 사랑한 죄로 죽어야 되는가? 운영이 궁녀라는 신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운영전』은 『이생규장전』이나 『주생전』, 『위경천전』 등과 비극적 사랑은 일맥상통하지만 애정이 파탄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는 차이를 보인다. 『이생규장전』, 『주생전』, 『위경천전』은 애정의 파탄이 전란戰亂에 기인하지만 『운영전』은 외부의 전란이 아니라 궁녀라는 신분과 안평대군의 완고한 태도에 의해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운영은 사랑할 자유마저 빼앗긴 궁녀의 신분이다. 하지만 가혹한 봉건적 제도에 굴복하지 않고 참된 사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침으로써 인간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고귀한 자유의지를 수호한 것이다. 김진사 역시 봉건 윤리에 저항하는 이단자의 형상으로 진정한 사랑을 위해 담을 넘고 생명까지 바치는 비극적 인물이다. 김진사는 젊은 나이에 재주가 뛰어나 안평대군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출세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과거에 급제하고 이름을 날려 부모님을 복되게 하는 것보다 참된 사랑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바쳤던 인물이다.
『운영전』은 운영과 김진사의 금지된 사랑, 그 비극적 결말을 통해 봉건윤리와 제도의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청춘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긍정한 작품이다. 그런 진정한 사랑을 수호하기 위해 운영과 김진사는 희생제물이 된 것이리라. 아마도 이들의 사랑이 행복하게 이루어졌다면 봉건윤리와 제도에 대한 절규의 의미는 상당히 삭감됐을 것이다.

뭉크E. Munch(1863~1944)의 저 유명한 「절규」라는 그림을 보면 다리 한 가운데 어떤 여자가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변은 온통 불안한 붉은 색으로, 내지르는 소리의 파장처럼 겹겹이 테를 두르고 있다. 운영의 심정도 그런 것이리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불합리한 윤리와 제도로 옥죄는 사회에 대하여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작품에서는 그런 항변의 목소리가 서궁에 있는 5명의 궁녀들을 통해 드러난다. 안평대군이 이들을 문초할 때 그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우선 은섬銀蟾의 얘기를 들어 보자.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귀하거나 천하거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옵니다. …… 한 번이라도 궁궐 담장을 넘어가면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겠지만 저희들은 오래도록 궁궐 속에 갇혀 한 번도 궁궐 밖에 나가보지 못했사옵니다. 이는 참으로 참기 힘든 일이오나 대군의 위엄이 두려워 불같은 마음을 억누른 채 시들어 죽어갈 뿐이옵니다.
궁궐의 법도를 벗어난 죄를 지은 일이 없사온데도 저희를 죽이고자 하시니 참으로 원통할 뿐이옵니다. 저희들은 죽어서 저승에 가서도 눈을 감을 수 없겠나이다.


다음 운영의 단짝인 자란紫鸞은 목숨을 걸고 이렇게 하소연 한다.


하늘나라의 선녀도 아니온데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저희들이라고 없을 수 있겠사옵니까? 옛날의 성스러운 임금도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도 다 여인을 그리워하였고 대군께서도 운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온데 어찌 운영이라고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자를 안아보고 싶은 정욕이 없을 수 있사오리이까? …….
오랫동안 깊은 궁궐에 갇혀 달 밝은 가을, 꽃 피는 봄이면 늘 마음이 아프던 운영이, 밤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애를 끓이던 운영이 준수하고 단아한 진사를 보고 목석처럼 그냥 앉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셨나이까?
한 번 보고는 넋을 잃고 그리움의 병이 뼛속에 사무쳐 아무리 좋은 약도 소용이 없게 되었사옵니다. 불쌍한 운영이 아침이슬처럼 죽어 버리면 대군께서 비록 측은한 마음이 있어 돌보려고 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대군께서 김진사를 불러 운영과 한번 만나게 해 주신다면, 그리하여 운영의 한을 풀어주신다면 대군의 선행은 하늘에 닿을 것이며 저는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이들 궁녀들이 주장하는 것은 젊은 남녀사이의 사랑의 감정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윤리와 제도로 억누르려고 하니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계가 아니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임에랴 어찌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그래서 젊은 궁녀들은 남자를 그리워하고 남자를 안아보고 싶은 정욕은 당연한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은 일찍이 “하늘은 나에게 인간의 정욕을 주었고, 성인은 나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쳐 주었다. 하늘이 더 높으니 마땅히 인간의 정욕을 따르겠다.”고 역설했다 한다. 그렇다.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중세 봉건시대에는 이처럼 윤리와 제도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이고, 남에게 구속된 궁녀의 신분에서랴. 그런 점에서 『운영전』은 인간의 개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봉건윤리와 제도에 의해 죽어야만 했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통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말처럼 “바닷물이 마르고 돌이 녹아 없어져도 우리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의 원한은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라 했으니, 아, 처절한 사랑이여, 사랑이여!


『운영전』의 통속적 영화화와 ‘정사情死’


금지된 사랑이야기인 『운영전』은 그 스토리텔링이 탁월해 한국영화 초창기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1925년 통속소설을 많이 썼던 윤백남尹白南(1888~1954) 감독에 의해 『총희寵姬의 연戀』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단성사에서 상영되었다. 현재 필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안종화가 『한국영화측면비사』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면 운영과 김진사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앞부분은 원작과 큰 차이가 없지만 뒷부분에서는 김진사의 교활한 종인 특 대신에 수성궁의 늙은 노복에게 운영과 김진사의 밀애 현장이 발각되고, 이를 빌미로 노복이 많은 돈을 요구하게 되어 부득이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게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도 둘이 도피를 감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결국 특의 간계로 운영의 재물만 뺏기고 도피는 무산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도피가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을 잡기 위해 안평대군은 사람들을 풀고 현상금까지 걸어 결국 김진사와 운영은 살아남기 어려울 줄 알고 비상을 먹고 동반 음독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목을 매어 죽은 것이 아니라 둘이 음독자살로 사랑의 도피를 마감한 것이다. 이른바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음을 같이 하는 ‘정사情死’다.
왜 영화에서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중요하게 다루고 그 결과 동반 음독자살하는 ‘정사’로 바꾸었을까? 당시 문화사적 맥락을 살펴보자. 『운영전』에 앞서 1924년에 조선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가 바로 하야가와朝川 감독이 만든 『비련의 곡悲戀의 曲』으로 이는 1923년 당시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평양기생 강명화姜明花의 음독 자살사건을 다룬 것이다. 이 자살사건은 강명화가 대구 부호의 아들 장병천과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끊은 일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반대하는 가족들과 동료들을 피해 동경으로 서울로 도피행각을 이어갔고 결국 온양온천에서 음독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사랑의 도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뒤 장병천도 강명화의 뒤를 따르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정사’가 유행처럼 번졌으며 하나의 풍조가 되었다. 바로 1926년에는 저 유명한 『사死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과 목포 부호의 아들인 극작가 김우진의 현해탄에서의 ‘정사’가 있지 않았던가.
영화가 상영되고 있던 1925년에만도 이해조의 『강명화실기姜明花實記』(회동서관)와 최찬식의 『강명화전姜明花傳』(신구서림)을 비롯하여 작자 미상의 『강명화전姜明花傳』(박문서관), 『강명화 설움』(영창서관) 같은 작품들이 대거 출판돼 ‘강명화 붐’을 이루었다. 이런 사랑의 도피와 음독자살이라는 당시 유행하는 연애풍조를 『운영전』에 반영하여 뒷부분을 변개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통속적인 재미를 추구하여 운영을 사이에 두고 안평대군과 김진사의 사랑싸움으로 내용을 전개시켰다. 당시 신문에서도 『운영전』을 “4백 년 전 세종조 시대에 권세가 일국에 떨치던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하고 불붙는 듯 하는 연애의 싸움을 그려낸 웅편”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작품의 내러티브를 삼각관계에 근거한 근대 신파조 사랑의 비극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금지된 사랑은 왜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야 하는지, 어쩌면 이를 통하여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권순긍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