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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권두칼럼/장종권/로또에 열광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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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85회 작성일 20-01-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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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권두칼럼/장종권/로또에 열광하는 시대


장종권


로또에 열광하는 시대



로또복권을 산다. 딱 한 장 산다. 복권 한 장을 지갑 속에 소중하게 접어 넣으면서 행복해진다. 복권을 샀다. 꿈을 샀다. 횡재를 샀다. 기적을 샀다. 이 복권이 당첨 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집을 살까. 자동차를 살까. 아니면 사업자금으로 쓸까. 추첨이 있는 토요일까지는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내게도 기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푹 빠질 수 있으니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다.
토요일이 되면 복권을 꺼내기가 싫어진다. 당연히 기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며칠 간 설레던 마음을 접는다. 슬며시 당첨번호를 확인해 본다. 내 번호는 없다. 말석에도 없다. 참담해진다. 역시 로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평상심을 회복하려 애를 쓴다. 집은 무슨, 자동차는 무슨, 사업자금은 무슨,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꿈은 꿈이다.
로또에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적은 돈이라지만 이 역시 노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지금 로또의 꿈이, 로또 같은 황당한 꿈들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로또를 사라. 내일 당신은 기적을 만들 수 있고 꿈에 그리던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새 집도 장만할 수 있고, 새 자동차도 구할 수 있고, 얼마든지 사업자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로또를 사라. 로또만이 당신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 로또를 사라. 당첨만 되면 당신의 운명은 순식간에 바뀔 것이다.
누가 로또를 파는가. 악덕 사업주인가. 기가 막힌 조물주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인가. 누군가 로또를 팔고 있다. 누군가 로또를 사라 유혹하고 있다. 누군가 로또를 눈앞 당장의 아름다운 현실로 그리고 있다. 로또를 사라. 인생이 힘들다고 어깨 내리지 말고, 로또를 사라. 당첨만 되면 까짓 가난이 무어냐. 당신의 미래는 기적으로 가득하고 당신의 운명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풍요로운 꽃밭이 될 것이다.
나는 로또를 산다. 남들이 사니 따라서 산다. 이마저도 사지 않으면 내게 기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한 장이라도 사두어야 후회가 없다. 단 며칠 동안의 기대감이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 이제 로또는 하루 세끼 밥이다. 나에게 이제 로또는 언제나 마셔야 하는 물이다. 나에게 이제 로또는 생명을 이어가는 산소이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로또 없는 인생은 제대로 된 인생이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었고, 누군가 그렇게 보여주었고, 그래서 이제 로또는 꿈이 되고 생활이 되고, 목숨이 되어 버렸다. 안 사면 손해다.
사람이 앞일을 알 수는 없다. 앞일을 알면 사람이 아니다. 앞일은 귀신도 모른다. 다만 내일은 보다 나을 수 있다는, 혹은 현재 정도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우리에게 이 손톱만 한 가능성이라도 꿈을 꿀 수 없다면 이 복잡하고 지난한 인생을 누가 지속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확실한 판단이 선다면 누구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기사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해 왔으니 이런 식으로 계속 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바람이야말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북극성이 아닐까. 사실 여기까지는 로또가 아니었다.
만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확률에 나는 왜 매번 도전하는 것일까. 만의 하나라는 가정이 한 번도 실재하지 않았거늘, 그보다 몇 만 배 더 어려운 확률에는 왜 서슴없이 지갑을 여는 것일까. 누군가 로또를 팔고 있고, 누군가 로또를 사라 유혹하고 있고, 누군가 로또를 사기 때문에 나도 로또를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만의 하나는 거의 실현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십만 분의 하나는 더할 것이다. 백만 분의 하나는 어떨까.
십중팔구라는 말이 있다. 예상한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절반의 희망은 왜 보이지 않을까. 반의 반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왜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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