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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황영철/흐뭇한 사과나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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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황영철/흐뭇한 사과나무 외 1편
황영철
흐뭇한 사과나무
예전부터 바라는 게 있거니와
사과나무 한 그루 키우고 싶네
햇볕이 나무로 집결할 것이니
초록은 곱게 눈부시고
사방 둘레는 얼마나 환하겠는가
대롱대롱 탐스럽게 익어가는 그림을
마당에 두었으니
당분간 외출은 삼가할 것이네
내 잘 익은 사과를 나눠주거든
달큼하게 한 입 깨물며
가을이 오기까지 시간을 기억해줬으면 싶네
여름을 울던 매미의 뜨거운 목청과
그리움 붉게 밝히던 밤들
그 뒤를 따라
나도 빨갛게 여물고자 하네
가을의 끝에서는 몇 알쯤 남겨
허기진 새들 배라도 든든히 채워주면
그간 사과가 머금은 햇볕을 먹는 것이기도 하여
곧 있을 추위도 얼마쯤 녹여줄 테니
예쁜 지저귐으로 답례도 있지 않을까
나 또한 흐뭇한 기분으로
봄을 기다리겠네
첫 시집
첫 시집 바람의 겨를에
시가 육십일 편
낱말이 오천백이십여 개다
발길 닿은 곳마다 청산유수
말로 지은 누각에서부터
너절한 세상을 향한
회피나 분함 따위
아물지 않은 흉터나
한 세월을 건너온 흔적까지도
내 안의 깊은 운韻과 율律을 입고
세상 떠돌았으리
누군가의
바람이 되었나
구름이 되었나
공염불 같은 시는 오간 데 없고
깎이고 부서지고
용케 뼈대만 남아 돌아온
나의 첫 시집 속에
무슨 염력이라도 가졌는지
홀로 남은 어머니
주름 깊은 얼굴로
다 큰 아들을 부르신다
생각보다 먼저 울컥하고 짠해지는
나의 모국어
*황형철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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