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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미령/참여자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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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김미령/참여자들 외 1편
김미령
참여자들 외 1편
모두 웃음에 동참했다 그들의 만족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손을 엑스자로 가슴에 모으고 웃었다 손날을 만들어 아래로 길게 뻗으면서도 웃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웃자 진격의 웃음이 주렁주렁 매달려 사방에 늘어졌다
아무도 방안을 가득 채운 기분을 깨뜨리지 않았다 번져가고 있었다 입구를 닫으면 그 방은 꽉 낀 비밀로 오갈 데가 없어질 것이다
야윈 달이 낮게 걸린 정원수 아래 거미줄에 감겨 빠져나올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단단하고 미끄러운 표면이 물질을 에워싸 빛을 하나씩 뱉어냈다
한 손은 풍선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비할 데 없는 무게로 늘어져 문 밖으로 흘렀다
풍선의 숨을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풍선에게 밤을 가르치는 동안 밖에는 마른 개들이 사슬에 묶여 형광빛 눈을 번뜩였다
누군가 어둔 복도 끝에서 풍선 속에 머리를 우겨넣으려 했고 잠시 후 상반신이 거의 삼켜지고 있었다
통통 튀어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식탁 아래 구슬을 하나씩 흘리며 아침을 기다렸다 옆에는 창문을 자르던 톱이 버려져 있고
어디서도 기록되지 않은 기근이 창밖을 서성였다
꽃과 나무는 시들고 바람엔 깨진 거울이 섞여 흘렀다 계획이 무산되었고 웃음소리가 줄어들었다
전등이 꺼지고 지하의 파이프가 방향을 바꿔 여러 갈래로 뻗어가고 옥외계단이 빙빙 돌며 건물을 옥죄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고 도처에 희미한 맥박 소리만 남았다
돌멩이를 하나씩 놓고 사라졌다 어금니를 뽑아 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멀리 큰 물가를 향해 한쪽 귀를 두드리며 걸어갔다
멍든 자두를 입에 물고 있었다
미해결의 장
등을 향해 던진 책더미가 몰려가면서 펼쳐지고 뒤집어지는 틈에서 퍼덕이며 빠져나오려는 새
멀어진 뒷모습이 찢고 들어간 공중은 오래 여며지지 않는다 안이 보이지 않는 열린 입구에는 얼음 한 조각이 손바닥 위에서 녹는 느린 시간이 있고
관자놀이를 맴도는 파문과
나무의 결을 지나 물 입자를 통과하여 충혈된 저 유리창의 표면을 향해 뻗어나가는 최초의 균열로부터 시작된 인식의 줄기
날아가던 책들의 형상은
공중에 뿌려진 얼룩으로 점점이 떠 있다
모공의 연못이 얼고 있다
오리의 침묵
물 아래 버둥거리던 갈퀴가 거의 멈춘다
높은 둥지에 꾸러미로 고여 있는 고막들이 바람에 말라간다
바닥에 널브러진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고
* 미해결의 장-손창섭 소설.
*김미령 2005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시집 『파도의 새로운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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