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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주민현/무서운 생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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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7회 작성일 20-01-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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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시/주민현/무서운 생각 외 1편


주민현


무서운 생각



아, 나는 너무 아름다운 조명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어요. 어둠 속에선 도무지 빛을 생각하지 않고는 못 배긴단 말이죠.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도 선한 마음이 있을 거라고 신부님은 말하셨어요.
밤 열한 시엔 토끼같이 빨간 눈의 판매원들이 마감 세일을 외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은 바로 그때부터죠.


당신이 선전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샀고, 그건 나의 선한 마음이었어요.
당신은 여전히 마트에 세워진 패널 속에서 웃고 있고… 밝고 환한 미소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건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니까요.


너무 어두운 생각 속에선 한 개의 촛불 같은 생각이 필요했어요. 성냥팔이 소녀라도 되었다는 뜻일까요?


조명가게 앞에서 유턴을 했고 가볍게 머리를 잘랐어요. 기분 전환을 하듯이 생각을 바꾸고 싶어요.
그러나 대로에 평범하게 늘어선 나무들은, 꼭 어떤 무서운 생각을 지닌 사람처럼 서 있었어요.





눈의 자세



눈은 문 닫은 식당 간판과 조화 위로
내리고
쓰레기봉투를 뜯는 새의 두 다리 사이로는
내리지 않는다


서로를 찌르는 중인 포도와 압정,
방패와 확성기 위로 내리고
유모차 바퀴 옆으로는 내리지 않는다


다 벗고 누운 연인의 침대 위나
뚜껑이 열린 채 팔려가는 피아노 위로는
한지나 부드러운 짐승의 털처럼도 내리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의 꿈속에 내리는 눈은
뾰족하고 흰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푼 위의 공기에는 무게가 없다
천국의 삶에는 무게가 없다


눈은 고래 뱃속에서 천사들의 합창을 듣는 기분으로도 내리고
오로라와 천사와 죄수의 마음을 합친 무게로도 내리고


도로 위의 차들이 경적을 울릴 때
확성기를 들고 걷던 사람들이 거꾸로 뒤집혀 걷기 시작하고
그 길 끝을 따르던 유모차는 날아오르고 그들의 긴 행렬은 내리는 눈이 되어


날고 있는 몇 개의 눈
내리는 눈의 소란스러움


행렬을 이룬 사람들 사이로 걷는 양쪽 보도블록 끝
너와 나의 입 속으로 내리고


쉼 없이 눈을 쓸고 있는 빌딩 경비원의 빗자루
위로는 내리지 않는다





*주민현 2017년 <한국경제신문>으로 등단.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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