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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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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재난 문자 방송
화초에 물을 주다가 넘쳤다
오기로 되어 있었던 재난은
오늘 오지 않기로 하였다
갑자기 정전이 되면
우리는 침착해진다
한도를 넘긴 용기처럼
우리는 가만히 넘칠 것이다
눈에 비눗물이 들어간 사람처럼
수도꼭지를 더듬을 것이다
재난도 일상도 규칙적으로
회고도 예측도 규칙적으로
아침형 인간은 아침에
저녁형 인간은 저녁에
재난을 맞을 것이다
갑작스런 폭설로 도로가 마비되고
강풍이 불어 지붕이 날아가도,
벽에 걸린 시계가 떨어져
깨진 유리조각들은 흩어져도
침착하고 규칙적으로
타이어
비명을 내지르면서 타이어는 기억을 잃는다
겁에 질린 아이의 동그랗게 열린 눈
비명을 지르면서 여자들은 엄마가 되고
아이들은 아이가 된다
노인들은 몇 차례의 비명을 통해
저렇게 많은 주름을 갖게 된 것일까?
아이들은 떨어지는 꿈을 꾸며 뼈를 늘리고
두렵고 낯선 구름 위에서의 번지점프
마치 네 번째 보는 영화에서
네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처럼
진지하게 추락한다
오늘 노인들은 경쾌하고
웃음은 새털구름처럼 잔잔하다
귀가 어두운 노인들은
고함을 지르다가 멈춰 서 버린다
둥글게 둥글게 닳아간다
이현승․
전남 광양 출생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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