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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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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93회 작성일 08-03-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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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경


초원과 초원 사이에 횡단보도가 있다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앞을 막아서는 도도한 물결
사나운 굉음들이 큰물져 흐른다

웅성거림이 모여들고
휩쓸려온 골목과 더딘 계절과
몸이 터져죽은 고양이, 고장난 시계들이 떠내려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건너편 초원을 바라보며
한 발짝 내디디려 하지만
악어는 물 속 도처에 있다

푸른 신호등이 반짝,
모세의 기적처럼 강물이 열리면
떨리는 발자국들이 보따리를 메고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악어의 이빨과 피라냐의 공포가 있는

길은 곧 지워질 것이고
배고픈 악어는 입을 벌릴 것이다
초원에 이르는 강둑은 왜 멀리 있는가

푸른 신호등이 위태롭게 파닥거린다



배고픈 가족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던
그해 겨울 아침

뜨거워지는 가마솥 안
비밀을 알아맞히기 위해
오남매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마솥이 점점 달궈질수록
부엌도 달궈지고
오남매의 허기도 내내 달궈지고 있었다

비등점이 높아갈수록
비밀의 온도는 올라가고
수수께끼를 맞히듯 암호를 대보면
자지러질듯 아파하는 어머니

가마솥은 끓고 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단단히 잠긴 자물통처럼
열릴 줄 모르던 솥뚜껑

그 해 겨울 한복판
맹물만 펄펄 끓이는
어머니의 비등점은 높아가고 있었다



고미경․
1965년 충남 보령 출생
․199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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