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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최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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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녀
청구서
벽에 못을 박는다
이사 다니며 무던히도 많이 박은 못
이방 저방 못을 박는 일은 즐겁기만 했다
콘크리트 벽에 못을 대고 망치질을 한다
벽은 꿈쩍도 않고 못만 튕겨져 나간다
팔에 찌르르 쥐가 오르고
벽은 버팅겨 서서 나를 내려다 본다
안 되겠다
손가락 다칠까 사렸던 힘을 팔에 모아
못의 정수리를 쳤다
아뿔사,
버팅기던 벽이 노한듯
못을 내 눈 바로 위 이마에 홱 뿌려
마루에 나동그라진 못과 나,
둘 다 허리 구부러졌다
눈멀 뻔했다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는데
못을 걸고 넘어진 벽의 살점이
저만치서 내게 청구서를 내민다
벽에 꿈을 걸며
못도 나도 즐거웠던 때가 있었는데
슈바빙의 안개비
뮌헨의 삐걱이는 층계에 앉아
향수 씹었던 전혜린
유령의 너울
너울에 갇혀
카페 한 귀퉁이
칸데라 불빛 아래 그녀
마른 호밀빵을 씹었던
내 친구의 언니
오늘 너무 보고 싶어라
주홍색 커튼 사이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마다 울었다고
안개비의 속삭임이 행복하다고
일기에 적어놓고
안개비 속으로 사라진 그녀
슈바빙의 안개너울
잠시 지나는 내게
속삭이며 다가와
그녀의 안부 묻는다
사랑하는 그녀의 딸
지금 얼마나 자랐을까.
최금녀․
1998년《문예운동》으로 등단
․시집 저 분홍빛 손들 외 5권
․한국 문학비평가 협회상 수상
추천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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