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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인


세탁기의 꿈


별을 빨아 하늘에 널어요 달빛 흐린 날이면 어둠을 빨아 말려요 옥상에 주저앉아 눈비 맞는 운명을 탓하진 않겠어요 저에게 집을 지어주세요 강남의 집값 오를 때마다 때찌꺼기 거품을 하수도로 배설했어요 성탄절날 반짝이는 교회당 불빛이 싫었어요 차라리 고향의 별, 금성으로 돌아갈까요? 지물포에서 사온 비닐옷 입고 한뎃잠을 자는 것, 이골이 났지만 모터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제 일에 충실했어요 원통에 고인 눈물 쏟아내면서 입술이 마르도록 덜덜덜 허공에 집을 지어요 옥탑방 주인은 관심이 별로 없어요 가끔씩 속옷, 양말을 한꺼번에 돌려 저를 힘들게 만들어요
  
제 고향 별로 돌아가고 싶어요 샛별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요 보내 주세요 아니면 간이 공간이라도 마련해 주세요 추위에 제 심장이 얼고 있어요 물탱크 옆 민들레와 수다 떨던 봄날이 그리워요



꽃섬, 가다


오라는 말 없어도 달려갑니다 바다가 피우는 꽃, 뚝뚝 떨어지는 붉은 섬을 보러 갑니다 꽃소식에 놀란 종착역 기차가 바다로 도망칩니다 파도가 기적을 울립니다 꽃섬의 동백은 꽃으로만 피지 않습니다 횟집의 해삼, 멍게, 개불도 꽃으로 피어납니다 피고 지는 일이 어디 꽃뿐이겠습니까 저녁에 피어난 방파제 가로등도 아침에는 동백으로 떨어집니다 먼 바다 불빛 가물거릴 때 그대 입 속에 피어난 꽃 한 송이 제 아랫도리에서 떨어집니다 꽃섬 입구 여인숙은 온통 꽃비린내로 몸살을 앓습니다 밤새도록 뚝, 뚝, 떨어지는 비명소리에 서울행 첫차가 바다를 출항합니다


서동인․
전남 여수 출생
․2002년《리토피아》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