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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노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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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8회 작성일 08-03-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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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춘기


고양이에게 고양이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녀는 밤 내도록 구부러져 있다가 늦은 아침 몇 번의 잔기침과 함께 등을 펴고 침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등장하자마자 내가 쓰던 수건으로 몸을 문지르고 내가 걷어찬 이불을 핥으며 내가 되었습니다 한 번 침대 위로 올라온 후 다시는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밤이 되었군요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은지 오래이지만 지금은 저 깊고 부드러운 털 속에 묻혀버린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고양이가 침대를 넓게 펼칩니다 고양이가 눈을 감아요 어쩔 수 없군요 나도 고양이의 꿈 속으로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잠깐 시간을 멈추겠습니다 소개를 마치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그녀를 소개하겠습니다 두 눈이 해바라기처럼 크고 털이 온통 하얀 고양이입니다 매일 짧은 시간 동안 당신을 만나게 해주세요 놀래키지 말고 바쁜 모습 보이지 말아요 잠시만이에요
고양이가 웃을 때가 있어요 가끔일 뿐이에요 그럴 때 그녀의 눈빛이 아주 길어집니다 침대에서 흘러내릴 만큼 길어집니다 고양이가 고양이인 동안 당신이 긴 웃음의 한 귀를 잡아 쥘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럼 진짜로 당신에게 이 소개를 마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그냥 발등 위의 고양이를 보고 있습니다 매일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틈을 보여주세요 소개를 받아주세요 그녀는 침대 밖의 인생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천천히 당신에게 도착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웃는 고양이에요
아 다시 고양이가 눈을 떠요 깊은 꿈으로부터 빠져나와 침대 끝에서 막 둥글게 펴지는 두 송이 해바라기 갸르릉





그의 우산


우산을 펼친 사람, 그의 보폭 아래로 온 들의 풍경이 죄 걸어 들어가네

무뚝뚝한 지팡이 밑으로 산이 몸을 기울이고, 종적을 잃은 길이 넘실거리네 지팡이 한 쪽 끝에서 별들이 소용돌이치네

가만히 보니 알듯도한 새벽인데, 거기 마당 가운데 움푹한 데 키 큰 나무들이 너울거리네 머리에 흰 잎 붉은 잎을 매달고 긴 팔을 흔드네

나와 흰 나무와 그 사이의 너와 오늘과 어제와 새털구름과 가을 바람이 모두 그의 우산 아래에 있네 짧게 한번 기침 소리가 들렸네



노춘기․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3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추천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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