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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권두칼럼/임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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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57회 작성일 08-03-0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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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한국문학 100년, 새로운 창조를 꿈꾼다


지난 한 세기에 걸친 한국문학의 도정을 염두에 둘 때, 2007년 정해년의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소감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개항 이후 1900년을 전후하여 이 나라 땅에는 창가, 신소설, 신체시, 신파극 등의 새로운 글쓰기 형식이 대두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오늘날의 한국문학은 한 세기의 역사적 전통을 획득하게 되었다. 2007년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 볼 때 이인직의 '혈의 누'(1906)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가 씌어진 것은 100년 전의 일이다. 우리 문학이 100년의 전통을 수립하게 된 오늘의 시점은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땅에서 글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 문인들은 이 사건의 의미를 축제의 형식으로 즐기면서 기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축제의 불꽃 너머 아득하게 펼쳐져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한국문학이 직면한 현실과 그 미래를 떠올린다. 한국문학 100년이라는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한국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개항 이후의 이 나라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문학의 도정 또한 파란만장했다. 그렇다면 그 길고도 구불구불한 우리 문학사의 여정을 인도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국 문학사의 기원으로 되돌아갈 때 그것은 ‘계몽’을 의미하고 있다. 이인직과 최남선에 의해 본격화하는 개화기의 문학적 실험은 이광수의 '무정'(1917)에서 완결되었다. 이광수의 '무정'은 근대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이념형의 수립이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로 자리 잡고 있다. '무정'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이기보다는 인식의 도구이고자 했다. 이광수의 '무정'은 자신이 담지하고 있는 근대적인 가치들을 단순히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가르치고자 했다. 그것은 자신이 파악한 진리의 세계-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교사의 입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 계몽의 의지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 계몽 의지는 한국문학이 가진 특수성인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보편성을 뒷받침했다. 국가의 자주 독립과 개인의 자유 의지에 대한  '무정'의 역설은 근대적인 의미의 보편적 휴머니즘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특수성이자 보편성에 해당하는 이 계몽성은 우리 문학사의 전통을 이루고 있다.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문인 개인과 문학 집단에 따라 계몽 의지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가 달랐을 뿐이지 그 성격은 면면히 계승되어왔다. 한국문학 고유의 이와 같은 계몽성은 민족과 국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과 발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궁극적인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한국문학은 전통 단절의 국면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창조를 통한 극복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와 정신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학적 이념형의 수립이라는 지난한 과제가 그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 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그래서 더욱 착잡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기보다는 지금-여기에 대한 발본적인 사고이다. 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문학 정신은 무력한 것이고 그 미래 또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리토피아》2007년 봄호의 특집 주제는 ‘악마성’이다. 이 악마성이라는 주제의 기획은 한국문학의 의미를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 악마성의 표현을 문학의 영역을 초월하는 예술 전반의 문제로 설정했으며 이에 대한 논의들이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의 다양한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작업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총론에 해당하는 강경희의 「악마성, 고통에 대한 극단의 유희」는 악마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의 악마성은 “인간의 부조리성과 다중적이고 모순적인 욕망”의 표현이다. 강경희는 오늘의 한국시를 악마성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가학-피학의 심리와 추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읽어내고 있다.
정은경의 「악, 부정방정식의 X」는 김영하, 백민석, 편혜영 등의 문제작을 중심으로 오늘의 소설에서 악마성이 가지는 의미를 묻고 있는 경우이다. 이 글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근거는 ‘부정성’으로서의 악이다. 여기에서 필자의 정치한 분석이 드러내고 있는 이 악의 추구는 부정적 정신의 표현으로서 오늘날의 소설 미학이 가진 의미와 더불어 악마성의 사회적 의미를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강성률의 「악마나 괴물은 없다. 단지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는 영화에 나타난 악마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대중의 욕망과 공포영화가 맺고 있는 모종의 관계에서 악마성의 문제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악마적 존재 혹은 괴물이 가진 시대적․사회적 의미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화제작들, 봉준호의 <괴물>과 박찬욱의 ‘복수 3부작’, <살인의 추억>과 <그놈 목소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리토피아》2007년 봄호를 위해 글을 보내주신 모든 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성원과 날카로운 질책이 《리토피아》가 생존해나가는 근거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고자 한다.
―임영봉(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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