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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신작시/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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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저녁의 개미들
브레이크댄스를 추면서 내려오고 있다
벤자민 가로수 우듬지만한 허공의 하루가 붉다
푸른 잎맥 길들 먼저 어두워지는데
허리 가는 개미들이
번개와 지진 없는 나무껍질
그 수직의 비포장 협곡을 타고
줄줄줄 줄지어 지상으로 내려온다
장배기 안테나로 앞 놈 궁둥이 툭툭 치면서
냄새나는 탬버린 좌우로 흔들어대면서
무수한 팔분음표들이 저마다 스텝 밟는다
엇박자인 어미와 딸들
무수한 아비와 그 새끼들
끊어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듯
스스로 하나씩의 마디가 되어 꿈틀거리는
검은 끈
벤자민 가로수 그늘 짙은데
허공의 위대한 하루가 문 닫히는데
이상하다 저녁의 개미들 언제나
돌아오는 길이 더 바쁜 놈들에게는
기필코 도달해야 할 지상의 댄스교습소가
있는 모양이다
자카르타 한국기원
인생에도 급수가 있다
축도 장문도 모르는 나라에서
평생을 아마추어로 살아왔어도
나름으로는 세월만큼 깊어져 있는 내공
벼르기만 하다가 다시없는
대마 사냥의 기회도 놓쳐버리고
허망한 자충수로
정력과 공력만 소진해 가는, 돌아보면 지난 날
온통 검흔 뿐인 눈물겨운 하수 인생에도
적수는 있다
복기 없는 단판 승부의 반면을 앞에 두고
모든 걸 정리해야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미생마 탈출에 고심하고 있는,
사부도 도반도
옳게 배운 초식도 없이
빼어든 칼 휘두르다 종종 저를 찌르는
얼치기 외인 용병
하릴없는 아마추어 자객들이
저녁내기로 오후를 다 탕진한다
기회가 아직 있다고
손님 실수를 기대하며 계가까지 간다
최준․
1984년《월간문학》신인상, 1990년《문학사상》신인상, 1995년〈중앙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 ․시집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등
추천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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